'할렐루야' 기립... 언제부터 시작이지?
병마 딛고 작곡하던 의지의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

[문화뉴스 MHN 박한나 기자] 기독교는 이번 한 주를 '종려주일'로 맞이한다. 이는 예수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한 것을 환영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향한 사람들의 환대는 며칠 버티지 못하였다. 이후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형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후 사흘 만에 예수는 부활하고 하늘로 승천한다. 곧 종려주일의 시작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다리는 기간인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낸 이가 있다. 바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이다. 우리에게 이미 '음악의 어머니'라는 별칭으로 익숙한 헨델은 23개의 오라토리오 작품을 작곡하는 등 교회음악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던 작곡가이다.

 출처 국립초상화박물관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클래식, 기억하다] '할렐루야' 기립 만들어낸 오라토리오 '메시아'... 음악의 어머니 헨델 기억하다.

헨델은 1685년 프로이센의 할레(현재는 독일 영토)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나타냈던 헨델이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법률가의 길을 준비하였다. 이후, 11살의 헨델은 아버지의 손을 떠났지만,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할레 대학에 입학, 법률을 배웠다. 아버지의 유지를 따르긴 했으나, 헨델은 교회 오르가니스트의 견습을 지내면서 음악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헨델은 할레를 떠나 오페라'알미라(Almira)'를 성공적으로 연주하며 이탈리아로 떠났다. 헨델은 함부르크에서 이탈리아로 그리고 하노버까지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넓이기 시작한다. 당시 영국 귀족 사회에 건반악기의 즉흥연주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 헨델은 1712년 이후 앤 여왕의 비호를 받아 런던에 정착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1726년에는 영국에 귀화하여, 죽을 때까지 영국에 살면서 수많은 작품을 남기게 된다.

한편, ‘아카데미’ 자체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이탈리아에서 초청한 두 프리마돈나의 싸움 등도 얽혀 청중은 권태를 느끼기 시작해 1728년에는 마침내 해산하게 된다. 그럼에도 작품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헨델은 1736년 오라토리오 '알렉산더의 향연'을 대 성공으로 이끌지만 중풍에 걸린다. 

온천 요법에 의해 기적적으로 병을 회복한 헨델의 관심은 오페라를 떠나 오라토리오로 쏠리게 된다. 1741년에 착수된 '메시아'는 불과 24일 만에 완성하고, 더블린에서의 초연으로 헨델은 생애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예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그려낸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연주시간이 약 2시간 30분이 넘는 헨델의 수 많은 오라토리오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불린다. 총 3부인 이 곡은 제 1부 '예언과 탄생', 제 2부 '예수의 고난', 제3부 '부활과 영원한 생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할렐루야'는 제 2부의 메시아인 예수를 찬양하는 곡이다. 이곡이 연주될 때, 말하지 않아도 듣는 모든 관중이 하게 되는 행동이 있다. 바로 '기립'이다. 1743년 런던에서 ‘메시아’가 연주되었을 때 황제 조지 2세가 이 곡을 듣고 2부 중 코러스 합창곡인 ‘할렐루야(Hallelujah)’를 듣고 감동하여 기립했던 일화 이후, 지금도 ‘할렐루야’가 합창되면 청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듣는 전통이 지키고 있다.

출처 사랑의 교회 유투브 캡처
[클래식, 기억하다] '할렐루야' 기립 만들어낸 오라토리오 '메시아'... 음악의 어머니 헨델 기억하다.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할렐루야' 한 곡으로만 기억되기에는 아쉬움이 큰 작품이다. 화려한 기교와 교차되는 합창 선율의 조화. 그리고 4명의 솔리스트로 하여금 느껴지는 장엄한 곡의 분위기 그리고 슬픔과 기쁨까지 느껴지는 헨델의 대 곡이다.

그럼에도 런던의 청중은 처음에 오라토리오 '메시아'에 냉담했다. 뒤늦은 1750년 말에 이르러 주목을 받게 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비로소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헨델도 차츰 육체의 쇠약을 느꼈으며, 특히 시력은 거의 절망적으로 나빠졌다. 연주 활동은 그래도 필사적으로 전개되어 1759년 4월 코벤트가든 극장에서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연주에도 입회했으나, 그로부터 8일 후인 14일 헨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헨델의 음악은 직접적이고 인간적이다. 단순 명쾌한 어법의 노래와 솔직한 표현이 그의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그러나 헨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라토리오 '메시아'에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듯 탄탄한 스토리로 그 깊이를 살려낸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들렸던 '할렐루야'가 아닌, 헨델의 견고한 음악적 설계를 기억하며 이 곡을 다시 듣는다면 그의 철두철미하지만 부드러운 음악관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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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기억하다] '할렐루야' 기립 만들어낸 오라토리오 '메시아'... 음악의 어머니 헨델 기억하다.

'할렐루야' 기립... 언제부터 시작이지?

병마 딛고 작곡하던 의지의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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