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60주년 기획...60년대 부정선거, 독재정권 밝힌다

출처: KBS

[문화뉴스 MHN 정지윤 기자]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고, 경찰의 무차별 발포가 이뤄졌다. 무자비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항거는 들불처럼 번졌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한다. 12년의 독재정권을 끌어내린 4·19혁명, 정의와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이 땅에 시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17세 김주열의 사망 미스터리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 한 구가 떠올랐다.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주검은 마산상고 진학을 앞둔, 17살 김주열이었다.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시위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지 한 달여 만이었다. 김주열의 눈에 박힌 포탄은 군사용으로 당시 경찰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최루탄과는 모양이나 기능이 달라 의혹이 더욱 증폭되는데, 1960년 마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자세히 밝힌다.

3·15 부정선거의 노림수
1960년 3월 15일 대통령 선거 당시 투표소 곳곳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깡패를 동원해서 회유와 협박을 하고, 사람들을 3명, 5명씩 짝짓게 하여 공개투표를 지시한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조병옥 후보가 급사하면서 대통령 선거는 자유당 이승만 단독 후보로 진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최악의 부정선거가 치러진 이유가 무엇인지, 자유당의 노림수는 어떤 것이였는지 알아본다.

학생을 정치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4·19혁명이 시작되기 직전 가장 앞서 시위에 나선 건 10대 청소년, 학생들이었다. 특히 2월 28일 대구에선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해 고등학생들이 시위에 나선다. 마산에서 이어진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여한 이들도 17살 김주열을 포함한 학생들이었다. 투표권 없는 학생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를 알아본다.

한편, '역사저널 그날-피의 일주일, 4.19부터 하야까지'는 4월 14일 화요일 밤 10시 10분에 KBS 1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

[KBS 역사저널] 4.19혁명 60주년 기획 '피의 일주일, 4.19부터 하야까지'
4.19혁명 60주년 기획...60년대 부정선거, 독재정권 밝힌다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