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GUCCI'의 시작과 지금, 창립자 '구찌오 구찌(Guccio Cucci)'
뱀부 백(BAMBOO BAG), 더 웹(THE WEB)...구찌의 패션
구찌 가족경영의 시작과 위기...이후 디렉터 영입
구찌 가방, 크로스백, 지갑, 스니커즈, 'GUCCI'의 시작과 지금, 창립자 '구찌오 구찌(Guccio Cucci)'
뱀부 백(BAMBOO BAG)...구찌의 패션
구찌 가족경영의 시작과 위기...이후 디렉터 영입
더 웹(THE WEB)을 활용한 구찌 가방, 크로스백, 지갑, 스니커즈, 반지

사진출처='GUCCI' 인스타그램

 

[문화뉴스 MHN 윤승한 기자] 구찌(GUCCI)는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중 하나이며, 이탈리아의 장인정신과 럭셔리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세계적인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구찌오 구찌(Guccio Cucci)

 

구찌'GUCCI'의 시작

구찌(Gucci)는 구찌오 구찌(Guccio Cucci)가 이탈리아 피렌체에 설립한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이다. 구찌오 구찌는 1897년 당시 전 세계의 부호들이 모이는 런던의 사보이 호텔에서 벨보이로 일하던 중 호텔 손님들의 최고급 가방에 깊은 인상을 받은 구찌오 구찌는 1902년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가 가죽 제조업체에서 가죽 공방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1921년 구찌오 구찌는 피렌체에 있는 비냐 누오바 거리에 ‘구찌’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첫 번째 가죽제품 전문매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구찌 초창기, 구찌오 구찌는 사보이 호텔에서 근무하며 눈여겨 봤던 귀족들의 스타일을 가미한 가죽 제품을 선보였고 이는 '구찌'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1930년대 구찌오 구찌는 작업장을 확장하여 핸드백, 트렁크, 벨트 등 생산 제품을 좀 더 다양화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매장 확장에 힘을 쏟았으며 1938년 당시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지이자 전 세계 부호들이 자주 찾는 쇼핑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로마 콘도티 거리에 새로운 구찌 매장을 열었다.

1947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패전국인 이탈리아의 물자 상황은 좋지 않아 수많은 이탈리아의 가죽 업체가 도산했다. 첫째 아들, 알도 구찌는 유일하게 수입 가능했던 일본산 대나무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처럼 전쟁 후의 위기는 오히려 구찌의 뱀부 백(Bamboo Bag)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구찌 짐가방(1935)위, 뱀부 백(1947)아래

 

뱀부 백(BAMBOO BAG)

세계 2차 대전 이후 구찌는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가죽이 부족하여 대안으로 대나무 손잡이를 만들었는데 이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구찌는 1947년에 처음으로 뱀부 백을 선보였다. 이때 선보인 뱀부 백은 일본산 대나무 손잡이를 부착한 작은 백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이 된 이탈리아의 열악한 상황에서 구찌가 내놓은 대안이었고 자연 소재를 디자인에 적용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호평을 받는다. 뱀부는 구찌의 상징이 되어 우산 손잡이, 시계, 벨트 등 여러 구찌 제품에 활용되었다. 톰 포드가 구찌에 와서 가장 처음으로 재해석한 것도 뱀부 백이었다. 2010년에는 프리다 지아니니가 뱀부 백을 재해석하여 ‘뉴 뱀부 백’을 출시했다.

 

 

스몰 GG 토트백/사진출처=구찌 홈페이지

더 웹(THE WEB)

1951년, 세 가지 컬러가 조화된 구찌의 더 웹은 말 등에 있는 안장 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그린-레드-그린’컬러 조합으로 크게 성공을 하여 오랜 세월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다. 신발, 벨트, 열쇠고리에도 이르는 다양한 액서서리에 적용되며 현재에도 특유의 스포티한 분위기로 구찌의 젊고 세련된 감각을 상징하는 마크가 되었다.

 

 

창립자의 첫째 아들인 알도 구찌(우)와 영화배우 클라크 게이블(좌)

 

구찌 가족경영의 시작과 위기

구찌오 구찌는 구찌를 직접 경영하는 한편 세 아들 알도 구찌, 바스코 구찌, 로돌프 구찌를 회사의 주주로서 경영에 참여시켰다. 

1953년 창립자인 구찌오 구찌가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첫째 아들인 알도 구찌와 셋째 아들인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나눴다. 알도 구찌는 비즈니스 감각을 발휘하며 구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알도 구찌는 1961년 창립자이자 아버지인 구찌오 구찌의 이름을 딴 GG 로고를 만들고 이를 캔버스 소재로 만들어 가방, 액세서리, 옷에 사용했으며 구찌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1982년, 구찌는 가족 경영진의 결정을 통해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까지 전 과정을 맡아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가지게 되었다. 1년 뒤, 로돌프 구찌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마우리초 구찌가 경영권을 승계했다. 이에 알도 구찌의 아들인 파울로 구찌는 크게 반발하며 파울로 구찌라는 이름으로 핸드백, 액세서리, 와인 등을 판매하는 저렴한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는 구찌 이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이탈리아 전통의 가족 경영에 위기를 불러왔고 그 사이 구찌의 재정난도 심화되었다.

 

TOMFORD/사진출처=TOMFORD 인스타그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영입

◇ 톰 포드

1994년 톰 포드는 컬렉션은 물론 선글라스, 향수, 광고, 매장 등 구찌의 모든 외양을 책임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톰 포드가 1995년에 선보인 구찌의 젯셋 글래머 테마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로고, 호스빗 등 구찌의 옛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며 전통과 새로움을 동시에 부각했다. 무엇보다 톰 포드가 매장과 광고 이미지까지 일괄적으로 감독하면서 새로워진 구찌를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구찌의 변화는 성공적이었다. 1998년 유럽 언론협회는 구찌를 ‘올해의 유럽 기업’에 선정했다. 톰 포드 이후 패션계에서는 단순히 옷을 디자인하는 수석 디자이너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 매장 구성과 광고까지 진두지휘하며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를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포지션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구찌의 변화를 주도했던 톰 포드와 도메니코 데 솔레가 재계약에 대한 PPR 그룹과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구찌를 떠났다.

 

프리다 지아니니/사진출처=GUCCI 인스타그램

◇ 프리다 지아니니

프리다 지아니니는 2002년 구찌 그룹에 합류했다. 그녀가 맡은 액세서리 라인이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 2006년 그녀는 구찌 전체를 단독으로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프리다 지아니니가 브랜드를 맡은 후 4년간 구찌의 매출은 46% 신장했고, 구찌는 2007년 시장조사전문회사인 닐슨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럭셔리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사진출처=GUCCI 인스타그램

◇ 알레산드로 미켈레

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2015 F/W 패션쇼로 데뷔한 알레산드로 미켈레이다.

 

구찌'GUCCI'의 지금

구찌는 2019년 매출 96억 3000만 유로를 달성했다. 2014년 매출 35억 유로수입을 생각해보면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구찌는 매출 절반가량을 35세 이하 소비자가 차지하여 젊은 브랜드로 인정받기에 손색이 없다. 100년 전통의 기업이 젊은 층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명품패션 업계는 중장년층 시장의 한계 속에서 성장이 정체되는 위기를 겪게 됐다. 구찌는 젊은 소비자에게 눈을 돌려 그들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고 성공을 이룬 것이다. 지금도 구찌는 변화의 움직임에 가장 민감하고 빠르게 적용하여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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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100년 전통의 명품 '구찌(GUCCI)', 패션계 대표주자의 시작과 지금

구찌'GUCCI'의 시작과 지금, 창립자 '구찌오 구찌(Guccio C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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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가족경영의 시작과 위기...이후 디렉터 영입
구찌 가방, 크로스백, 지갑, 스니커즈, 'GUCCI'의 시작과 지금, 창립자 '구찌오 구찌(Guccio C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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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가족경영의 시작과 위기...이후 디렉터 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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