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젠베르크, 최초로 양자역학 기술 성공, 행렬역학으로 불림
불확정성 원리 창시자인 하이젠베르크도 잘못 이해

출처: 픽사베이

[문화뉴스 MHN 권성준기자] 원자 정도 크기의 영역에서 적용되는 물리학인 양자역학은 심오하고 아주 난해한 대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 전문가들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양자역학의 모호함과 난해성을 유발하는 원인은 1927년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1976)가 발표한 '불확정성 원리'를 잘못 이해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재밌게도 불확정성 원리는 이론의 제안자인 하이젠베르크마저 자신의 이론을 잘못 이해했을 정도로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직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론이다. 하지만 억울하게도 최소 현대까지는 우주가 불확정성 원리를 따른다는 것이 사실이다.

출처: Nobelprize,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을 만든 독일의 천재 물리학자로 유명하며 양자역학의 개발과 강력을 나타내는 아이소스핀의 개념의 도입으로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외에도 초전도체, 강자성체에 대해서도 많은 기여를 했다.

하이젠베르크는 1924년부터 닐스 보어(Niels Bohr, 1885~1962)의 제자로 양자역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는 보어의 수소 원자모형은 계산하기에 너무 복잡하다 생각하여 마찰이 없는 이상적인 진자를 기술하는 조화진동자를 통해 양자역학을 만들어내었다.

하이젠베르크가 만든 양자역학은 에너지 보존법칙도 만족하고 보어의 수소 원자모형도 잘 설명하였으나 한 가지 특이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출처: 픽사베이

양자 현상을 기술하는 방정식에는 물리량과 연관된 수학식이 있다. 그런데 어떤 물리량 식 두 개를 곱해 새로운 물리량을 만드는데 곱하는 순서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경우가 나타났다. 다시 말해 AB=BA인 곱셈의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았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은 다른 물리학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으며 하이젠베르크도 몹시 당황하였고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1925년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에 의해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대상이 행렬임이 밝혀졌다.

이후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은 '행렬역학'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에 의해 '슈뢰딩거 방정식'을 통한 양자역학과 '행렬역학'을 통한 양자역학이 같음이 밝혀졌다.

출처: 픽사베이, 불확정성 원리 공식

'행렬역학'은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하이젠베르크는 행렬이 교환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해 위와 같은 식을 유도해냈으며 이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라고 부른다.

불확정성 원리는 위치의 불확정도와 운동량의 불확정도의 곱은 디랙 상수의 절반보다 작아질 수 없는 부등식으로 기술되며 다시 말해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출처: Wikipedia, 하이젠베르크의 현미경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를 위의 사진과 같이 설명하였다.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선 짧은 파장을 가진 감마선을 이용하면 된다. 파장이 짧으므로 입자의 위치에 따른 오차는 매우 작아진다. 하지만 충돌하는 순간에 입자는 어디론가 날아가게 되며 운동량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를 하이젠베르크의 현미경이라 부르는데 이 설명은 불확정성원리를 완전히 잘못 이해해서 나온 틀린 설명이다. 불확정성 원리는 관측 장비의 한계로 인한 불확정성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위치와 운동량이 동시에 관측할 수 없는 성질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현대에는 동전의 비유가 종종 쓰이는데 동전의 앞면을 바라보면 뒷면을 바라볼 수 없듯이 이 세상은 위치를 보면 운동량을 볼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고전역학의 직관처럼 위치와 운동량은 각각이 독립되어서 기술될 수 있는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가 있는 물리량들이며 이 관계가 바로 불확정성 원리 공식이다.

위치와 운동량 외에도 특수한 경우에 에너지와 시간이 위와 같은 불확정성 원리의 부등식을 따른다. 양자역학에서는 어떤 물리량이 있다면 그 물리량과 교환법칙이 성립되지 않는 다른 물리량을 찾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출처: 픽사베이, 보어와 아인슈타인

현미경의 예시는 이론의 창시자인 하이젠베르크마저 불확정성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증거이며 불확정성 원리의 난해함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당대 많은 물리학자들의 반대를 받아왔으며 대표적인 물리학자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과 슈뢰딩거가 있다.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불확정성 원리와 보른의 확률 해석으로 대표되는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5차, 6차 솔베이 회의로 대표되는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세기의 논쟁이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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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N 과학] 양자역학과 불확정성, 1932 노벨물리학상: 양자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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