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PRADA)의 시작과 지금, 창립자 '마리오 프라다(Mario Prada)'
프라다 가방, 신발, 의류, 크로스백, 카드지갑, 호보백
프라다의 역사, 디렉터와 CEO
세컨드 브랜드 미우미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통한 제 2의 전성기

사진출처=프라다 인스타그램

 

[문화뉴스 MHN 윤승한 기자] 프라다(Prada)는 가죽 가방을 비롯해 액세서리, 신발, 의류 등을 제조 · 판매하는 이탈리아의 하이엔드 명품 패션 브랜드이다.

 

마리오 프라다(Mario Prada)/사진출처=프라다

 

프라다'PRADA'의 시작

창립자인 마리오 프라다(Mario Prada)는 유럽과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패션에 대한 안목을 넓혔고, 세계 각국에서 라인석(모조 다이아몬드), 거북이 껍질과 같은 진귀한 소재를 이탈리아에 들여와 패션 상품에 응용했다.

1913년 마리오 프라다는 동생인 마티노 프라다(Martino Prada)와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 갤러리아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II 아케이드에 고품질의 가죽 제품 전문 매장인 프라텔리 프라다를 열었는데, 이것이 '프라다'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마리오 프라다(왼쪽 위), 루이자 프라다(오른쪽 위), 미우치아 프라다(아래)/사진출처='what_to_wear'인스타그램

 

마리오 프라다 ~ 미우치아 프라다

프라다 초기, 마리오 프라다는 화장품 케이스·가죽 핸드백·가죽 장갑 등을 수공으로 제작했다.

또한 프라다의 제품 중에는 영국에서 수입한 바다 코끼리 가죽, 악어 가죽 등의 특이한 소재로 만든 방수 핸드백, 여행용 가방 등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진귀한 제품들은 유럽 왕가와 상류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19년에 프라다는 이탈리아 왕실의 가죽 및 의류 제품의 공식 공급 업체로 지정되었고, 이후 프라다 로고에는 사보이 왕실의 문장과 매듭이 포함되었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경기가 침체되면서 프라다 역시 힘든시기로 접어 들었다. 마리오 프라다는 그의 아들인 알베르토 프라다(Alberto Prada)에게 가업을 물려주려 했으나 오히려 알베르토 프라다는 가업을 잇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결국 1958년 마리오 프라다가 사망하자 그의 딸인 루이자 프라다(Luisa Prada)가 가업을 물려 받았다.

1977년,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이자 루이자 프라다의 딸인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가 프라다를 이어받았다.

1949년에 이탈리아밀라노에서 태어난 미우치아 프라다는 패션 디자인을 전혀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디자인 팀을 꾸려 나갔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스타일을 디자인 팀에 전한 다음 소재와 재단법을 함께 찾는 방식으로 디자인 팀을 운영했다.

 

나일론 백팩/사진출처=프라다

 

나일론 소재와 부티크 론칭

1979년, 미우치아 프라다는 군용 물품 공장에서 낙하산이나 텐트용으로 사용되던 방수천의 일종인 포코노 나일론을 이용하여 심플한 디자인의 가방을 완성했다.

당시 대부분의 가방은 가죽 소재를 사용해 만드는 것이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데, 패션을 전공하지 않은 미우치아 프라다는 기존의 고정 관념을 깨고 검정 색상의 나일론 소재를 사용했다.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가볍고 실용적이었던 프라다 가방은 정장이나 캐주얼에도 잘 어울려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로 인해 미우치아 프라다는 파산 직전의 위기에서도 가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1983년, 프라다는 밀라노 부티크의 성공적인 론칭을 계기로 1984년 프랑스 파리, 스페인 마드리드, 미국 플로리다와 뉴욕에 추가로 부티크 샵을 오픈했고, 같은 해 신발 라인을 선보였다.

 

나일론 천을 소재로 사용한 프라다 클래식 핸드백(1985)/사진출처=프라다

 

1985년에는 나일론 천을 소재로 '프라다 클래식 핸드백'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높은 실용성으로 출시 첫날부터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하며, 이 제품의 인기로 인해 프라다는 명품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87년에 프라다는 여성용 기성복 컬렉션을 출시하면서 길게 늘어뜨린 허리선과 가는 벨트, 원색이 강조된 깔끔한 원단 등을 선보였는데, 이것들이 프라다 의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사진출처=미우미우

 

세컨드 브랜드 미우미우 출시

프라다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자, 프라다는 이를 활용하여 1993년에 세컨드 브랜드로 10~20대 여성들을 겨냥한 '미우미우(Miu Miu)'를 출시했다. 이 브랜드 이름은 미우치아 프라다의 애칭을 딴 것이라고 한다.

1995년, 프라다는 젊은 남성을 위한 '프라다 워모(Prada Uomo)'를 출시했고, 1997년에는 언더웨어라인 '프라다 인티모(Prada Intimo)'와 스포츠라인 '프라다 스포츠(Prada Sports)'를 내놓았다. 프라다는 1998년 프라다 스포츠 패션쇼에서 최초로 정장을 입은 남성 모델에게 운동화를 신겼는데, 이때 선보인 프라다 스니커즈는 패션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아제딘 알라이아/사진출처='아제딘알라이아' 인스타그램

 

2000년, 프라다는 튀니지 출신의 디자이너인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ia)를 영입했다. 2001년에는 파트리치오 베르텔리가 프라다 지분의 25.5%를 패션 그룹인 펜디(Fendi)와 LVMH그룹에 매각했다.

 

사진출처=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홈페이지

 

2003년에 출간된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이를 2006년에 영화로 만든 작품이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으면서 프라다는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2007년, 프라다는 전자제품 회사인 LG와 손잡고 프라다폰을 선보였으며 2008년에는 프라다폰 II를 출시했다.

 

1913년 처음 출시된 프라다의 사피아노 백/사진출처=프라다

 

사피아노 가죽(Saffiano Leather)

마리오 프라다는 1913년에 프라다를 설립함과 동시에 사피아노 가죽을 개발했다. 사피아노는 이탈리아어로 '철망'을 뜻하는데, 사피아노 가죽은 소가죽의 부드러운 부분을 선택하여 그 위에 빗살무늬 또는 철망무늬 스탬프로 패턴을 넣은 후 다시 광택을 내서 만든 것이다. 사피아노 가죽 소재를 활용한 제품으로는 1913년에 출시된 '사피아노 럭스백(Saffiano Lux Bag)'이 대표적이다. 

 

프라다 고프레 토트백/사진출처=프라다 홈페이지

 

나파 고프레 백(Nappa Gaufre Bag)

프라다가 2006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첫 선을 보인 나파 고프레 백은 마돈나가 백을 든 모습이 파파라치에게 노출되면서 일명 '마돈나 백'으로 불려졌다. 나파 고프레 백은 프라다의 고프레 주름 패턴이 잘 드러나는 디자인으로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 백을 애용하면서 2006년 하반기를 장식한 '잇 백'이 되었다고 한다. 나파 고프레 백은 프라다의 스테디 셀러 아이템으로 매 시즌마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출시되고 있다.

 

미우치아 프라다(좌)와 라프 시몬스(우)/사진출처=라프시몬스 인스타그램

 

프라다'PRADA'의 지금

크리스찬 디올, 캘빈 클라인 등에서 명성을 쌓아온 중견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Raf Simons)가 프라다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됐다. 

지난 4월 2일부터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와 손잡고 듀오 디자이너로 그룹을 이끌게 됐으며 2021 S/S 공동 콜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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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스토리]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프라다(PRADA)의 시작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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