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 빛의 불변성 발견
상대성 이론, 중력파 발견에 영향

출처: 픽사베이

[문화뉴스 MHN 권성준기자] 인류의 과학이 발달하면서 과학의 모든 분야가 급격한 변화를 겪은 사건은 역사적으로 2번 일어났다. 두 사건을 과학 혁명이라 부르며 첫 번째 과학 혁명은 16~17세기 천문학을 시작으로 이루어졌다.

1543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태양 중심설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과학 혁명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이 고전 역학을 정립시키면서 종결되었으며 미신을 벗어나 과학적인 지식을 얻는 방법론이 정립되었고 근대 과학과 18세기 계몽주의의 시작이 되었다.

이후 과학자들은 뉴턴이 정립한 고전 역학의 아래서 모든 과학을 설명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믿음은 19세기가 되면서 금이 가기 시작하였고 뉴턴 역학이 수정되면서 모든 과학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 사건을 19세기 과학 혁명이라고 부른다.

출처: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코페르니쿠스 모형

17세기 과학 혁명은 지동설이 시발점이 되었다. 그렇다면 19세기 과학 혁명의 시발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1887년 실행된 마이컬슨-몰리 실험이다.

마이컬슨-몰리 실험은 물리학의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실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현대에는 기술이 발달해 누구나 원리만 안다면 비교적 쉽게 재현할 수 있는데 왜 이 실험이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가질까? 더욱이 이 실험은 실패했기 때문에 가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이컬슨-몰리 실험은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실행한 실험이었다.

출처: 픽사베이

19세기 고전적인 전자기학이 제임스 맥스웰(James Maxwell, 1831~1879)에 의해 4개의 방정식으로 모두 기술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방정식을 '맥스웰 방정식'이라고 하는데 맥스웰은 자신이 만든 방정식들을 통해 빛이 파동이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파동은 그 떨림을 전달해 주는 매질이 있어야 한다. 파도는 물이 매질이며 소리는 공기, 지진파는 지각이 매질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빛이 파동이라면 무언가 떨리는 매질이 존재해야 하고 과학자들은 매질에 에테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알버트 마이컬슨(Albert Michelson, 1852~1931)도 에테르의 존재를 신봉하는 물리학자였다. 그는 오랜 고민 끝에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실험 방법을 고안했는데 이를 마이컬슨 간섭계라고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에테르 바람

마이컬슨 간섭계를 알아보기 전에 어떻게 마이컬슨이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는지 알아보자.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으며 태양계 또한 은하 중심 주위를 움직이고 있다. 만약 에테르가 가만히 정지해있는 매질이라 하더라도 태양계 또는 지구의 움직임으로 인해 지구 표면의 관측자에게는 에테르가 움직이는 것처럼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이를 에테르 바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에테르 바람의 방향은 지구 표면을 기준으로 바라보면 계속해서 그 방향이 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구가 계속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는 매질의 속도에 영향을 받을 것이므로 여러 날짜 동안 빛의 속도의 차이를 계산하여 그 값이 이론적인 양과 동일하다면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마이컬신 간섭계

따라서 마이컬슨은 위 그림과 같은 장치를 고안하여 빛의 속도 차이를 측정하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빛의 속도는 터무니없이 빨라 직접 측정할 수 없어 대신 빛의 속도에 차이가 있다면 빛이 1초 동안 간 거리가 변할 것이고 그렇다면 같은 위치에서 빛의 위상의 모양 또한 달라질 것이다.

첫 번째 실험에서 마이컬슨 간섭계에서 동일한 광원에서 나온 빛은 위상이 같을 것이고 준반사 거울에 의해 2갈래로 나뉜 뒤 거울에 의해 반사되어 다시 한 지점으로 뭉친다. 반사 거울들의 위치를 잘 조정해 검출기가 있는 위치에서 동일한 위상을 가지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가로, 세로 방향으로 같은 거리를 갔다 오게 할 수 있다.

두 번째 실험은 가로 방향으로 에테르 바람이 분다고 생각해보자. 빛뿐만 아니라 매질도 움직이므로 빛은 더 빨라지거나 느려질 것이고 변화된 빛의 속도로 인해 검출기에 도달한 시간이 첫 번째 실험과 달라질 것이다.

출처: 픽사베이, 간섭 현상

그러나 세로 방향으로 갔다 온 빛은 첫 번째 실험과 같은 시간에 올 것이고 따라서 빛이 합쳐지는 순간에 가로로 갔다 온 빛의 위상은 첫 번째 실험과 다른 위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빛은 파동이므로 빛이 합쳐지면 서로 간섭 현상을 일으킬 것이고 첫 번째 실험과 두 번째 실험은 서로 다른 위상의 빛이 합쳐졌으므로 간섭무늬가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마이컬슨은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1881년 간섭계를 제작하여 실험을 하였으나 해당 실험에서 제작된 간섭계는 정밀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이컬슨은 에드워드 몰리(Edward Morley, 1838~1923)와 협력하여 1887년 에테르 바람에 의한 효과를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간섭계를 제작하는데 성공하였다.

출처: Nobelprize, 알버트 마이컬슨

1887년 마이컬슨과 몰리는 미국의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에서 역사적인 실험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결과는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였다. 빛의 속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 변한 값은 실험 장치의 정밀도가 떨어져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에테르의 바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만약 에테르 바람이 한 방향으로 불고 있다고 가정하고 간섭계를 회전시켜 본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빛의 위상 차이는 360도 회전하면서 더 큰 변화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마이컬슨-몰리 실험에서 여러 각도로 회전시켜도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마이컬슨과 몰리는 에테르를 증명하려고 실행한 실험에서 오히려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과를 얻게 되었고 되레 빛의 속도는 불변하다는 결과마저 얻게 되었다.

심지어 몰리는 자신의 실험 결과를 납득하지 못했고 물리학자 데이톤 밀러(Dayton Miller, 1866~1941)와 협력해 윌슨 산 천문대에서 더 대규모로 정밀한 장치를 만들어 실험하였으나 결과는 동일했다.

출처: Nobelprize, 알버트 아인슈타인

이 실험의 결과는 뜬금없는 곳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마이컬슨과 몰리에 의해 얻어진 광속 불변의 원리는 아인슈타인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이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물리학자 조지 피츠제럴드(George FitzGerald, 1851~1901)는 마이컬슨-몰리 실험에서 간섭무늬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의 길이가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고 이를 '로런츠-피츠제럴드 수축'이라 부른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통해 '로런츠-피츠제럴드 수축'을 정확하게 계산하였고 상대성 이론은 마이컬슨-몰리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이론이 되었다.

출처: 픽사베이

하지만 생각보다 에테르 이론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1920년대에도 에테르를 '무게를 잴 수 없는 매질아 아닌 실체를 지닌 무엇'이라고 언급하는 등 많은 물리학자에게 빛의 성질은 난해하게 다가왔다.

이후 양자역학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빛은 입자의 성질도 가진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매질을 가지고 전파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고 결국 빛은 현대에도 매질 없이 진행하는 파동으로 받아들여진다.

출처: LIGO Caltech, 중력파

마이컬슨-몰리 실험은 역사적으로 한 가지 더 큰 업적을 남겼다. 바로 중력파 검출이다.

중력파 검출에 사용된 LIGO는 마이컬슨 간섭계를 엄청나게 거대한 규모로 확장시킨 실험 장치이며 마이컬슨 간섭계와 동일한 원리를 이용해 빛의 간섭무늬 차이를 발견하였고 이는 에테르의 바람이 아닌 중력파에 의한 교란이었다.

이렇게 물리학의 역사에 수많은 영향을 끼친 마이컬슨은 실험의 공로를 인정받아 190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

[MHN 과학] 19세기 과학 혁명의 시작, 1907 노벨 물리학상 : 마이컬슨-몰리 실험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 빛의 불변성 발견
상대성 이론, 중력파 발견에 영향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