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다방 주인 '성호' 역의 정성호와 손님 '상호' 역의 윤상호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다방은 사람과 사람이 얘기하는 데야"

여기 한 다방이 있다. 한가운데엔 네모난 테이블과 두 개의 의자가 있다. 뒤편 장식장엔 LP판, 책, 카메라, 찻잔 등의 장식품이 놓여 있다. 턴테이블 역시 자리 잡고 있다. 오른쪽엔 보라색 천으로 가려진 캔버스가 보인다. 그리고 왼쪽 벽에 걸린 작은 거울,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커피포트와 찻잔 두 개. 줄이 달린 전화기. 모두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것들이다.

흰 와이셔츠와 검은 정장 바지를 입은 남자가 걸어 들어온다. 그는 캔버스 위에 덮인 천을 조금 들춰낸다. 다방 곳곳을 살펴보다 LP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린다. 그림을 그리기도 거울을 보기도 한다. 평범한 다방 주인의 일상이다. 그러다 전화벨이 울린다. 남자는 전화를 받는다. "네, 다방입니다"

   
▲ 손님 '상호' 역을 맡은 윤상호

이 다방의 이름은 '흑백다방'이다. 주인인 '성호'가 카운슬링을 해주는 다방으로 유명하다. 그가 쉬는 날은 1년에 단 하루, 바로 아내의 기일이다. 그런데 비가 오는 아내의 기일 날, 서울에서 손님이 찾아와 카운슬링을 부탁한다. 천둥소리와 함께 들어온 남자 손님. 무언가 조금 이상하다. 그리고 손님은 '성호'에게 잊고 있던 기억까지 상기시킨다.

연극 '흑백다방'은 화해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흑백'은 말 그대로 흑색과 백색을 의미한다. 정 반대의 색이다. 이에 대해 연출자 차현석은 "자기가 백색이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이 세월이 지나면서 흑색이라고 생각하는 무언가와 섞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작품의 주제 의식은 "다방은 사람과 사람이 얘기하는 데야"란 대사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방'이란 공간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 대립하고 충돌한다. 하지만 이 역시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두 주인공은 '상처 준 자'와 '상처받은 자'의 경계를 허물어간다.

   
▲ 다방 주인 '성호' 역을 맡은 정성호

한편, '흑백다방'은 2인극의 형식을 취한다. 무대엔 단 두 명의 배우만이 등장한다. 그런데도 두 배우가 주고받는 대사와 행동은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한다. 무대 역시 작다.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를 통해 관객은 실제 다방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최소한의 무대 장치가 오히려 작품에의 몰입도를 높인다.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지난해 '제 14회 2인극 페스티벌'에서 작품상과 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사실 화해나 소통은 그동안 많은 작품을 통해 다뤄졌다. 하지만 연극은 자칫 지루하거나 어려울 수 있는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상담을 가장해 두 남자가 벌이는 대화는 마치 심리 게임과 같이 이어진다. 둘의 대화와 행동을 따라가며 숨겨진 이야기를 추측하는 묘미가 있다. 이어 화해와 공존에 이르는 과정 또한 간결하고 경쾌하게 풀어낸다.

검은 커피의 씁쓸함과 흰 설탕의 달콤함이 공존하는 연극, '흑백다방'은 오는 11일까지 대학로 스튜디오76에서 공연한다.

문화뉴스 오수진 기자 sj@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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