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irl wears a face mask during a Black Lives Matter rally in Parliament Square, in London, Saturday, June 6, 2020, as they protest against the killing of George Floyd by police officers in Minneapolis, USA. Just like the coronavirus, racism has no borders. Across the world, disgruntled people, representing a broad spectrum of society, marched this weekend as one to protest against racial injustices at home and abroad. (AP Photo/Frank Augstein)

 

I CANNOT BREATHE.
이것은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의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지금 미국은 코로나19로 인한 몸살은 물론 인종차별 시위와 공권력 남용에 대한 시위대의 분노로 미국 전역이 시끄럽다. 흑인 시위단체와 이들을 옹호하는 많은 단체들은 함께 힘을 모아 억울하게 사망한 플로이드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현재 그들의 마음은 플로이드처럼WE CANNOT BREATHE TOO인 심정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끊이지 않고 있는 흑인에 대한 공권력의 과잉대응이 원인인데 멀게는 92년 L.A폭동을 불러온 로드니 킹 사건부터, 2014년에는 비무장었던 흑인 마이클 브라운이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도 있다. 역시 2014년 스태튼아일랜드에서는 흑인 청년 에릭 가너가 역시 경찰들의 체포과정에서 목이 졸려 사망했다. 2015년에는  시카고에서 백인 경관 제이슨 반 다이크가 흑인 청년 라콴 맥도날드에게 16발의 총격을 가해 사망한 사건도 큰 충격이었다.

 이처럼 백인 우월주의와 공권력에 유난히 관대한 미국의 풍토가 이번 미니애폴리스 폭동을 불러온 원인이라는 점이 흑인들의 분노를 자극하는데 충분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평화롭게 시작된 시위대가 점점 극단적인 폭동으로 번지게 되었고 약탈,방화,경찰에 대한 폭력으로 변질되어 안깝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폭동에 대해서는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지만 비폭력적으로 정의를 외치며 운동을 해야하는 것이 맞다. 

Photo: News Magazine Chicago

 

 사실 흑인들의 억울함과 극단적 불평등을 외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면 그들이 백인보다 불안정한 노동현장에서 저임금 노동을 해왔고 아프더라도 굶을 순 없으니 일을 해야만 했다. 또한 저소득층 흑인들은 의료보험이 없어서 병원에 편하게 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실업률과 사망률이 높을 수 밖에 없는 사회적으로 구조화 된 불평등의 문제가 이번 폭동과 겹치며 큰 불로 번진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경찰의 강경 진압과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한 연방군 투입으로 인해 성난 시위대에 기름을 부었다. 트럼트의 명령으로 시위대를 향한 연방군 투입이나 블랙호크헬기의 위협비행은 해결책이 아니란 건 누구나  알 것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폭력과 약탈하는 시위대를 인간쓰레기라고 언급하며 그들에게 총격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발언을 해 많은 흑인 시위대에게 더 큰 분노의 기름을 부은 것은 상황을 되레 악화시켰다.

 거기에 네오나치,파시즘,백인 우월주의 ,인종주의에 강력히 반대하는 안티파(안티 파시스트 액션)가 함께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이  또 다른 단체들을 부추기고 있는 폭력은 테러리즘이며  그에 따라 그들도 처벌을 받아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듯 폭동을 통해 흑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들이 강화될까봐 걱정이 앞서고 자유와 평화를 외치는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현실과 그 민낯이 암울하기만 하다.

 고질적인 인종주의를 부추기고 여과없는 강경발언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깊은 각성이 필요하다. 또한 재선에 빨간 불이 켜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층인 백인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전략을 이 폭동사건을 이용하는 잔인함도 버려야 한다. 그래서 정부와 함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단 한걸음이라도 다가가 비통하게 정의를 외치는 시위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함께 재발방지 대책도 시급히 내놔야 한다.

 

Photo: News Magazine Chicago

 

경찰관의 무릎이 아니었다면, 숨을 쉴 수만 있었다면 살았을 흑인 플로이드를 애도한다. 이 애도는 미완으로 남겨져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을 단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매듭지어 기억화하는 수준에 멈추어서는 안된다. 이제껏 구조화되어 자행된 죽임의 고리를 단절하기 위해서는 애도의 중심에서 호명하는 망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의 애도는 미완형이며 이 비극적인 울림에서 공명하는 생명과 정의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사람을 노예화하고 비인간화하는방식에 저항하며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지속적인 연대의 추구는 진실을 열망하는 시민적 용기를 자극할 수 있는 살림(救)을 향한 가능성을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인종차별과 편견으로 인한 불평등, 빈부격차, 실업률에 대한 처방적 수준의 해결책이 아닌 미국 사회 중심에 나타난 균열과 결핍의 실재에서 호명하는 사회적 윤리적 물음에 귀를 기울인다면 아마도 미국 전체가 공생(共生)의 숨을 다시 쉴 수 있지 않을까

조희영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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