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종영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연출을 맡은 신원호 PD와의 서면 인터뷰

[문화뉴스 MHN 한진리 기자] 대중의 입장에서 믿고 볼 수 있는 연출자의 작품이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만기일을 앞둔 적금을 기다리는 마음에 비유한다면 적절할까. 

과거와 달리 드라마를 접할 수 있는 시·공간적 제약이 줄어들면서 대중이 드라마를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 중심에 있는 모바일과 OTT 플랫폼의 확장은 온 가족이 TV 앞에 둘러앉아 드라마를 시청하는 풍경이 오히려 생경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고된 하루의 끝, 가장 사적이고 편안한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강하다. 누군가는 고된 하루를 드라마와 함께 마무리하고,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들과 드라마를 보며 소중한 시간을 공유한다. 이렇듯 드라마는 가장 공적인 매체를 통해 가장 사적인 순간 대중을 만난다. 

출처=CJ ENM

해서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흥미로운 영상을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드라마에는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은 다양한 삶의 군상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공감이 있다.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 주인공을 통해 해결되며 오는 카타르시스와 내일을 살아갈 새로운 동력을 안겨준다. 이런 지점은 우리가 가장 사적이고 소중한 시간을 드라마와 함께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지난 3월 방송을 시작해 두 달 반가량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성원을 받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바로 그런 요소를 고루 갖춘 작품이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삶을 끝내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병원에서 평범한 듯 특별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20년지기 친구들의 케미스토리를 담은 드라마다.

연출을 맡은 신원호 감독은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통해 작품성과 시청률을 모두 잡으며 '믿고 보는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작품을 하면서 공감에 대한 가치를 가장 중시한다는 신원호 감독과의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출처=CJ ENM

Q.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은 병원을 배경으로 평범한 우리네 삶의 군상을 그려낸다는 기획의도와 조금 동떨어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흔한 '빌런' 한 명 등장하지 않는 착하디착한 드라마다. 의대 동기 5명이 한 직장에서 매일 얼굴을 보며 희로애락을 나누는 모습은 cg와 가상세계로 점철된 장르보다 더욱 판타지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지점들이 시청자들에게 '슬의'만의 매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드라마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작품을 하면서 늘 목표했던 건 공감이었는데 이번 온∙오프라인 반응들은 모두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따뜻했다. 시청한 후 ‘좋았다’, ‘힐링 됐다’, ‘보는 내내 너무 따뜻했다’라는 후한 댓글들이 많았고, 오프라인에서도 정말 생전 드라마 안 볼 것 같던 분들에게 오는 감동의 반응들도 많았다. 그런 리액션들이 피디라는 직업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뜻한 온기가 공유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전하고 싶은 건 모두 전해진 셈이다.

'특출한' 악역이 없는 이유는 스스로가 불편한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 있어서 인 것 같다. 또한 요즘 시청자분들 성향도 갈등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갈등을 던져주고 빨리 전개하고 빨리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Q. 송화를 향한 치홍의 감정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온 것에 비해 익준의 감정은 상대적으로 갑작스럽다는 반응이 있다. 

사실 감정선을 다 깔아두긴 했다. 99즈 다섯 명의 첫 만남 사진에서 익준이 송화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송화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깔렸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멜로만의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알아차리시면 좋지만, 아니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멜로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고 시간을 배분하는 순간 작품 전체의 정체성이 모호해질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안정원과 장겨울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마흔살의 사랑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한다. 스무살 시절로부터 20년이 지났다. 그사이 수많은 사람과 인연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고, 그 기억들로 매일 뜨겁고 절절하게 살아가진 않는 나이다. 더 이상 첫눈에 뜨겁게 반할 나이도 아니고 사랑의 감정만으로 일상을 어그러뜨릴 수 있는 어린 나이도 아니다. 기존의 멜로와 작법이나 속도가 달랐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출처=CJ ENM

Q. '자기복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전작부터 이어져 왔던 '누군가의 남편찾기'가 슬의에서는 결국 '송화 남편찾기'로 귀결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러브라인만의 드라마가 아니다. 저희의 마음 속 가이드라인은 70퍼센트의 병원이야기에 각자의 30퍼센트가 더해지는 구조였다. 그 30퍼센트엔 가족이야기며 친구이야기, 꿈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사랑 이야기 등이 포함되어있다. 소소한 여러 이야기 하나 하나에 집중하다보면 결국은 모여 큰 그림이 되는 방식으로 극을 꾸려갔다. 그래야만 병원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하루하루를 편안히 관찰하듯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통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이 아닌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재미있게 봐주셔서 다행이다. 

 

Q. 주 1회 편성이라는 의미있는 시도를 했고,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기존 제작 시스템과 비교했을때 어떤 점이 특히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했는지 궁금하다.

주 1회 방송이라는 편성도, 명확한 기승전결이 아닌 소소한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구성적인 면도 저희에게는 큰 도전이었는데, 많이 좋아해주셔서 다행이다. 보통 많이 활용되는 드라마 형식(16부작, 20부작 등)이 아닌 주 1회나 시즌제로 갈 수 있는 드라마가 성공해서, ‘뉴 노멀’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모든 제작사나 방송사가 주 1회 방송이나 시즌제, 사전제작 등의 풍토가 자리잡기엔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다. 결국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앞으로 5분물, 30분물, 120분물 등 런닝타임의 변화나 3부작, 6부작 등 제작편수의 변화 같이 드라마 형식이 다양화 되고, 이와 함께 플랫폼들이 확장되면서 정말 수많은 형태의 개성넘치는 작품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출처=CJ ENM

Q. OST가 공개될 때마다 음원 차트 상위에 오르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해당 에피소드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극의 감정선을 극대화했던 OST 선곡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선곡에 있어서는 대본 단계에서 이우정 작가가 결정한다. 대본을 쓰면서 대본 흐름에 맞게 어울릴법한 곡들을 선곡한다. 대본 흐름에 따른 선곡이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 나올 곡을 미리 생각해두기는 쉽지 않다. 다만 저작권 문제가 있어 외국의 메탈, 록 등 유명한 고전 밴드들의 곡의 못쓰는 경우가 더러 있어 아쉽다.

Q. 배우들이 직접 연주를 하고 노래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뭉클함과 따듯함을 가져왔다. 연주 씬을 찍으며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개인적으로 애착이라기 보다 너무 고생시켜서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곡은 '캐논'과 '어쩌다 마주친 그대'이다. 두 곡은 이게 될까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다섯 배우들이 기어이 해냈다. 촬영장에서도 악기를 들고다니며 신 틈마다 연습하고 합주하고 레슨도 받고 하더라. 그 결과 연습 시간도, 찍는 시간도, 편집하는 시간도 가장 오래 걸린, 공을 가장 많이 들인 곡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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