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에도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살았다-하편
  • 윤자현 기자
  • 승인 2020.06.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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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ttachment of Luther's 95 Theses, Julius Hübner, 1878. René / Flickr
The attachment of Luther's 95 Theses, Julius Hübner, 1878. René / Flickr

[문화뉴스 MHN 윤자현 기자] 음악은 사람을 떠나지 못한다. 르네상스가 인문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전개되었지만 종교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였다.

1517년 마틴 루터는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의 부당함을 포함한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트 성당의 대문에 붙인 뒤 가톨릭 교회의 부패함이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파급되면서 종교 개혁이 일어났다. 이후 1555년에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립을 수습하기 위해 열린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회의에서 루터파의 신앙을 승인하면서 가톨릭과 구분되는 개신교(프로테스탄트교)가 탄생했다.

루터는 음악을 하나님의 선물이자 축복으로 생각했으며 신도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16세기 루터교 교회에서 음악의 위치는 윤리적인 힘을 가진 교육 수단이었다. 루터교 음악의 핵심인 코랄은 일반 신도들이 직접 부르면서 예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형식이었고 많은 양의 코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미 있던 선율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는 콘트라팍툼 형태로 코랄이 만들어졌다.

John Calvin in a 16th-century French portrait
John Calvin in a 16th-century French portrait

독일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유럽 전역으로 퍼졌으며 스위스의 종교 개혁은 제네바에서 활동한 칼뱅에 의해 수행되었다. 칼뱅은 금욕주의와 개인의 도덕성을 강조하였다. 이에 칼뱅은 단성 시편을 반주 없이 부르는 것만 허용했고, 시편의 선율은 단순하며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16세기에 들어선 후 음악의 주요한 후원가는 여전히 교회였기 때문에 음악의 주된 형식 또한 미사곡과 모테트였으나 각 지역마다 독자적인 음악어법이 발달하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세속노래인 프로톨라가 궁정에서부터 싹트기 시작했고 이후 로마와 나폴리 같은 남부 도시로 전파되어 세속 음악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프로톨라는 귀족들이 궁정 여흥을 위해 즐기던 세속노래였다.

출처: Stone Music Entertainment, 헤이즈 작사가
출처: Stone Music Entertainment, 헤이즈 작사가

르네상스에서 가장 주요한 음악 장르인 16세기의 마드리갈은 가사와 음악이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마드리갈은 궁정 사교 모임이나 문예 학술 아카데미에서 본인들이 직접 부르며 즐기는 노래였다. 베네치아의 시인이자 문학 이론가였던 추기경 벰보는 페트라르카 시의 리듬, 압운 등 여러 요소들이 유쾌함과 엄숙함의 상반된 성향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작곡가들 또한 시가 가진 다양한 요소를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초기 마드리갈은 호모포니와 약간의 모방이 섞여있는 양식으로 되어있으며 가사 그리기를 통해 가사의 의미를 살렸다. 16세기 중반부터 마드리갈의 중심지는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옮겨졌으며 작곡가 빌라르트 이후에도 진지한 시를 가사로 택하고 가사에 대해 섬세하게 배려하는 경향이 중기 마드리갈에서 계속 이어졌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1767), 캔버스에 오일, 83 x 66 cm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1767), 캔버스에 오일, 83 x 66 cm

프랑스의 세속음악은 1520년 파리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양식의 샹송이 나타나면서 샹송은 네덜란드 샹송과 파리 샹송으로 구별된다. 파리 샹송이 선호하는 주제는 사랑이었고 대체로 주선율이 최상성부에 있는 호모포니 양식의 4성부곡이다.

정률 음악은 1570년에 파리에서 그리스 시대의 시와 음악과의 일치가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이상을 재현하고자 장단원칙을 프랑스어에 적용하여 유절 형식의 프랑스어 시를 창작하고 이를 가사로 활용한 음악을 만들었다.

출처: 블루바이닐, 백예린 콘서트
출처: 블루바이닐, 백예린 콘서트

영국의 세속음악은 장미 전쟁이 끝난 뒤 국가가 안정기에 들어설 무렵에 발전되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의 마드리갈은 1560년대부터 영국에 알려졌다. 가사가 강조된 아탈리아 곡들에 비해 영국 마드리갈은 음악 형식 및 기법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영국 특유의 장르는 콘소트인데 콘소트는 2명에서 8명이 연주하는 기악 앙상블이었다.

가사와 음악의 관계를 강조하는 성악곡이 주를 이루었지만 르네상스 시기에 중세에 비하면 많은 양의 가악곡이 악보로 제작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관악기의 종류가 많았고 한 종류의 악기가 다양한 크기로 제작되어 음색은 같으나 음역이 다른 악기들이 한 조를 이루었으며 가장 낮은 음역에서 높은 음역까지 하나의 음색으로 통일된 음향이 가능했다.

출처: 주호민 유튜브 채널, '할아버지의 11개월' 리코더 연주
출처: 주호민 유튜브 채널, '할아버지의 11개월' 리코더 연주

르네상스 시대에 사용된 주요한 관악기는 리코더, 크럼호른, 숌, 트럼펫 등의 악기였으며 리코더는 앙상블에 사용된 악기로 3~4명의 연주자가 함께 연주했다. 주요한 현악기는 비올과 류트이며 류트는 가장 인기있는 가정악기였다. 류트는 음을 유지하지 못하는 특성 때문에 분산화음으로 빠르게 연주하는 스틸 브리제가 도입되었다. 16세기의 오르간은 현대의 오르간과 비슷한 외형 및 기능을 갖추었으며 전 음역을 동일한 음향으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오르간은 중세 시대부터 대중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악기인 만큼 류트와 함께 대중에게 인기있는 악기였다. 대중적인 류트와 오르간은 현대의 기타와 피아노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악기의 사용이 다양해져 즉흥 연주, 프렐류드, 변주곡, 토카타, 소나타 등 다양한 기악음악이 제작되었으며 기악음악은 궁정에서 연주되거나 춤곡으로 사용되는 등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화려하게 만들어졌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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