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세 카레라스가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문화뉴스] "나는 알고 있다. 무대로 걸어나가고, 노래를 부르고,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듣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더는 노래를 부를 수 없는 그 날이 오기 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끽하고 싶다."

 
'상식 퀴즈' 등을 통해 사람들은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출신의 루치아노 파바로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플라시도 도밍고, 그리고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난 호세 카레라스를 '세계 3대 테너'라고 불렀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 전야제부터 본격적으로 콘서트 활동을 한 '세계 3대 테너'는 2001년 한·일 월드컵 기념 서울 내한 공연을 포함해 2005년까지 24회의 공연을 펼친 바 있다.
 
'세계 3대 테너' 중 한 명인 호세 카레라스(71)가 마지막 월드 투어의 일환으로 3월 한국을 찾았다. 그의 47년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무대가 4일 오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공연 타이틀은 '음악과 함께한 인생(A Life in Music)'이다. 호세 카레라스는 1970년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에게 발탁되어 카바예의 상대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1971년 베르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위에 오르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데뷔 4년만인 28살에 24개 오페라의 주역을 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1987년 느닷없이 찾아온 백혈병으로 그의 힘든 투병 생활이 시작되고, 골수를 채취 할 때조차 성대를 다칠까 봐 부분 마취를 해가며 치료를 받는다. 생존 확률이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음에도 기적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고 일여 년 만에 돌아온 그는 이후 오페라 무대뿐 아니라 리사이틀, 쓰리 테너와 같은 갈라 콘서트, 크로스오버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 살로메 지치아(왼쪽)와 호세 카레라스(오른쪽)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호세 카레라스는 오페라 음반 50장을 포함해 총 160장의 음반을 발매했고, 총 판매량은 무려 8500만 장에 이른다. 그래미상과 에미상을 포함해 수많은 음악상을 받았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독일에서 국가가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 
 
호세 카레라스의 이번 공연엔 조지아 출신의 소프라노 살로메 지치아도 함께한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고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이며, 2011년 조지아의 나이트 세레나데 페스티벌에서 공식 데뷔했다. 2012년 터키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뮤직 페스티벌과 아르메니아의 인터내셔널 성악 콩쿠르에서 모두 대상을 받았으며, 라도 아타넬리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는 1위에 올랐다. 2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 서울 6층 누리볼룸에서 '호세 카레라스 마지막 월드 투어'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테너 호세 카레라스와 소프라노 살로메 지치아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한국에 온 소감을 들려 달라.
ㄴ 살로메 지치아 :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데, 호세 카레라스와 같은 거장과 함께해 대단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호세 카레라스 :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해주시고, 저를 사랑해주시는 한국에 와서 기분이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한국 관객들은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응원해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 음악가의 역량이 세계적으로 급성장 중이다. 미국, 유럽에서 굉장히 명성 있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도 있고, 오페라하우스 유수의 장소에서 공연하는 한국 성악가도 많다. 한국에 1976년에 온 적이 있다. 오페라 '토스카'를 위해 한국에 왔고, 이후 여러 번 한국에 와서 공연할 때마다 한국 관객의 열정과 성원에 감탄했다. 또다시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 호세 카레라스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마지막 월드 투어'라고 한 의미는 무엇인가?
ㄴ 호세 카레라스 : 나는 모든 공연이 다 중요하고 의미가 깊다. 내 생각으로 이 투어가 2~3년 정도 지속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주안점으로 둔 것이 있다. 전 세계 모든 곳을 가보지 않았는데, 최대한 안 가본 곳에서 하는 것이 목적이다. 전 세계의 모든 곳을 다닐 수 없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거나, 30여 년 전에 간 곳에서 공연하는 것이 목표다. 이 투어가 정말 언제 끝날지는 두고 봐야겠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인터뷰를 같이 한 적이 있다. 언제까지 노래하겠냐는 질문에 도밍고는 신께서 노래하실 수 정도의 목소리를 남겨주는 한 계속해서 하겠다고 답했는데, 그 답변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무대가 본인에게 주는 의미는?
ㄴ 호세 카레라스 : 사실 예전에 가졌던 느낌과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뻔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데뷔 때부터 항상 내가 느낀 감정을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했다. 표현하는 성숙도는 다를 수 있다. 사람으로 성숙하는 만큼,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나 역시 성숙하기 때문이다. 그 성숙도가 표현을 통해 깊은 것을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무대에 대한 열정은 항상 같다. 관객과 최대한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 월드 투어'는 은퇴를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ㄴ 호세 카레라스 : 은퇴는 언젠가 당연히 할 것이다. 이 투어가 2~3년 정도면 끝날 것이다. 그때면 진짜 은퇴할 시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생각을 하면 우수에 젖게 된다. 인생의 법칙이 아닌가 싶다. 때가 되면 은퇴하는 게 바르다고 생각한다. 그 전에 월드투어를 하면서 관객과 소통할 기회가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프로로 은퇴하면서 절대 다시 공연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 할 것이고,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위한 재단 콘서트는 꾸준히 할 것이다.
 
   
▲ 살로메 지치아(오른쪽)가 호세 카레라스(왼쪽)를 촬영하고 있다.
2014년 내한 공연 당시, 후두염으로 공연이 취소된 바 있다. 컨디션 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나?
ㄴ 호세 카레라스 :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유감으로 생각한다. 두 번의 공연이 당시 계획 중이었다. 하루는 공연했고, 하루는 심한 독감으로 취소를 해야했다. 나는 운이 좋은 아티스트인데, 20년간 아파서 취소한 것은 3~4번뿐이었다. 관리를 철저히 했다기보단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시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요즘도 연습을 꾸준히 하는 편인가?
ㄴ 호세 카레라스 : 연습량에 관해 말하자면, 당연히 연습한다. 이탈리아어로 목소리의 의미인 보체(vóce)는 여성명사로,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다뤄져야 한다. 경험과 세월이 지나면서 목소리에 많은 것이 요구되는데, 적절히 쉬면서 연습하려고 한다. 공연할 때마다 새로운 레퍼토리를 추가하려 한다. 구체적인 것은 아니어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노래를 추가하려 한다.

앞으로 2~3년가량의 월드투어 중 또다시 한국에 올 가능성은 있나?
ㄴ 호세 카레라스 : 솔직히 나도 그렇기를 바란다.

이번 공연엔 어떤 것을 선보일 것인가?
ㄴ 호세 카레라스 :  이번 프로그램은 나에게 영향을 미친 여러 곡들의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줄 기회다. 오페라, 뮤지컬, 샹송, 오페레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중에는 레너드 번스타인과 함께 연주한 곡도 있고, 카라얀과 함께 한 곡도 있다. 하나하나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추억이 있으므로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겠다. 오페라 가수로 데뷔했기 때문에, 오페라가 근원이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음악을 소개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중 그리그의 '그대를 사랑해'를 카탈루냐 언어로 노래할 예정이다.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 등 무대에서 다양한 언어와 스타일로 노래를 불러 드리겠지만, 이 곡은 모국어로 부르기 때문에 더 깊이 있는 감정 전달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 호세 카레라스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FC 바르셀로나 팬으로 알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ㄴ 호세 카레라스 : 말씀하신 대로 나는 FC 바르셀로나의 대단한 팬이다. 바르셀로나는 훌륭한 운동단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우리 국민에게는 단지 그 축구단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국가 정체성을 확인하고 국민성과 뿌리를 지지하며 이로써 더 뭉치게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시오(Socio,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바르셀로나의 시민주주)가 16만 명 정도가 된다. 지금은 꽉 차서 더 들여보낼 수 없는 수준이다.
 
여기에, 캄프 누(Camp Nou, 바르셀로나의 홈 경기장)의 관객석을 또 늘리려고 계획 중이다. 3년 후에 완성이 될 것 같은데, 12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증설계획이 있다. 바르셀로나에는 리오넬 메시 등 훌륭한 스타 플레이어가 있고, 성적도 좋지만, 소시오의 하나로 뭉쳐 응원하는 힘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호세 카레라스와 같이 공연하는 소감은?
ㄴ 살로메 지치아 : 어린 시절, 호세 카레라스는 나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다. 처음 만난 조지아 콘서트 당시 이런 분과 노래한 것에 믿을 수 없었다. 기쁘고 영광이었다. 이후로 혼자서는 서지 못할 무대에 너무나 많이 설 기회를 제공해줬다. 프로로 성장하는데 감사한 인물이다. 저희가 벌써 세 번 콘서트를 같이했다. 둘이서 같이 이중창을 할 때, 두 사람이 아니라 마치 한 명의 영혼이 노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건 아무나 주는 감정이 아니다.
 
호세 카레라스 : 무대 위에서는 음악과 노래에 대해서 같은 이해와 느낌을 갖는 파트너만큼 좋은 것이 없다. 옆에 있는 살로메 지치아가 그 케이스다. 살로메 지치아는 음악을 이해하는 수준이 매우 높아 감사하게 생각하고, 한국 관객들도 그것을 함께 느끼면 좋겠다.

다른 아티스트와 많이 무대에 섰을 것이다. 호세 카레라스의 특별한 점은?
ㄴ 살로메 지치아 : 무대에서 온 마음으로, 영혼과 감정을 다 쏟아부어 노래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배울 점이 많다.
 
   
▲ 살로메 지치아가 공연 소감을 남기고 있다.
 
살로메 지치아라는 이름이 오페라 주인공처럼 보인다. 본명인가?
ㄴ 살로메 지치아 : 그렇다. 부모님께서 주신 이름인데, 조지아에선 많이 가지고 있는 흔한 이름 중 하나다.

공식적인 은퇴 공연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어떤 분위기에서 마지막 공연을 하고 싶나?
ㄴ 호세 카레라스 : 앞서 말씀드렸지만, 언젠가는 그 날이 올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벌써 마음이 차분해지고 감성적으로 변한다. 프로로 47년간 노래할 수 있어서 굉장히 감사하고, 나는 행운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감사를 전 세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고, 응원해주고, 성원해준 것에 보답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은퇴하는 그 날이 행복한 날이지, 슬픈 날은 아닐 것 같다.

수많은 공연을 진행했는데, 가장 인상 깊은 공연은?
ㄴ 호세 카레라스 : 아티스트에게 내가 정말 잘했다는 것을 뽑긴 어려운 일이다. 고향 바르셀로나에서 데뷔할 때나, 런던, 뉴욕 등 유수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노래한 것도 의미가 깊다. 뭐 하나를 뽑기엔 힘이 든다. 이 생각을 하면 감성적으로 변할 건데, 고향 바르셀로나에서 공연한 후 2년여간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그 이후 재기 공연에 올랐을 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공연했고,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카르멘'을 했었는데, 관객들이 어마어마한 박수로 응원해주시고 환영해주셔서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그 무대를 잊을 수 없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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