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서양화전공 교수로 재직 중인 정영한 작가의 25회 개인전이 열린다. 2020년 7월 30일부터 8월 9일 까지 사간동 지역의 대표전시장 중 한 곳인 금호미술관 2층 2개 전시실에서 <이미지-時代의 斷想 (Image-Fragment of the time)>라는 제목으로 근작과 변용된 시리즈(드로잉 및 설치형태의 평면 작품 등)를 중심으로 50여점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미디어 채집과 복합콜라주의 다중 변주 

글|안현정 (미술평론가․예술철학박사)

   정영한 작가는 밀레니얼 이후 초현실적 포토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중견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작품 속 언어와 동시대 사진 이미지를 활용한 구상회화는 개념미술과 결합된 ‘복합콜라주(composite collage)’의 형태를 띤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 1931-2020)가 추구해온 문자와 사진의 결합, 언어와 시각성의 상관관계를 계승하면서도 신화 상실(MYTH/LOST)의 시대가 추구해온 ‘즉각적 채집성’을 작품의 주요 코드로 삼았다는 점에서 장르를 가로지르는 21세기의 동시대 양식을 창출했다고 평해야 한다. 

LOST의 이중전략, Mythos의 회복 언어

  금호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이미지-時代의 斷想> 근작과 변용된 시리즈는 잡지 혹은 미디어의 세련된 단면을 사진 찍듯 기억해내는 작가의 평소 습관과 연계돼 있다. 현대 미디어가 추구해온 텍스트의 힘은 우리의 사고를 대중화된 스테레오 타입으로 고정시키고, 과거의 영웅이나 신화가 내포해온 다양한 해석가능성을 마비시킨다. 미디어 산업이 만든 상품미학의 가치 속에서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획일화된 눈’을 조장하는 것이다. 바다, 인형, 인물들이 펼쳐진 세련된 포스터 이미지 속에는 잃어버린(LOST) 원본의 가치들이 MYTH, HISTORY, BASICS, HUMOR, LIFE, YOUTH, HONOR, FANTASY, LOVE, DREAM, ROMANCE 등의 인문학적 감성언어와 함께 2차원의 평면언어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재현적 이미지가 주는 대표성은 실제 사진 이미지가 아닌 작가가 중성 색채로 표백화한 탈재현적 리얼리티의 표상이다. 말 그대로 정영한은 미디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산 및 소비되는 이미지들의 기호학적 의미체계를 전복시키면서 이미지가 가진 인위성(혹은 허구성) 위에 잃어버린 가치를 새롭게 재편(Re-recognition) 하는 이중전략을 사용한다. 감상자로 하여금 능동적인 작품해석을 유도하면서 수동적 관람방식을 성찰케 하여 잃어버린 ‘뮈토스(Mythos)’의 감성을 회복하려는 취지이다. 뮈토스는 신화원형이 전달해주는 본래의 언어(뿌리)를 의미하는데, 넓은 의미에서는 시(詩)를 비롯한 문학과 예술의 진정한 알레고리(참뜻)와 맞닿아 있다. 

  작가의 20대 시절부터 등장해온 미디어의 차용과 다중언어를 재조합하는 방식은 대중적 성격을 가짐과 동시에 회화의 아카데미즘이 간절히 지켜온 ‘그린다(paint)’는 구상성과도 연결돼 있다. 이것은 소비문화가 만든 미디어의 속성을 직관하면서도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으려는 정영한 작가의 탁월한 통찰성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발데사리 이후 대중매체 이미지들을 차용한 많은 작가들은 개념미술의 전략 속에서 미디어와 소비문화의 만연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았으나, 정영한은 “21세기 회화성을 틀이 규정되지 않은 긍정의 다층언어”로 해석한다. 그에게 MYTH와 LOST라는 상반된 내용언어는 개념을 뛰어넘은 차이/반복, 비교/대조, 전통/현대라는 상반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변증법의 추구인 것이다.   

이미지-時代의 斷想, 112.1×162.1cm, acrylic & oil on canvas, 2020
이미지-時代의 斷想, 112.1×162.1cm, acrylic & oil on canvas, 2020

 현대미술에서 소통(Communication strategy)을 이야기하려면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를 빼놓을 수 없듯이, 구조냐 탈구조냐를 규정짓는 자체가 이젠 무의미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를 반영하듯 <이미지-시대의 斷想 : Trans the Myth>에서는 <우리時代 神話>(2005~2015) 연작에서 등장하던 시대의 아이콘(앤디 워홀·마릴린 몬로·스티브 잡스 등)이 배제되고 배경으로 등장하던 바다와 오브제로서의 꽃이 전면에 등장하는 컨텍스트의 역전을 보여준다. MYTH라는 기호 뒤에 3차원 공간으로 확대된 컨텍스트의 외연화는 고급/저급 혹은 대중성/예술성을 나누는 이분법을 뒤흔드는 작가의 노동집약적 결과물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작품 안에서 더 이상 무엇이 신화냐는 질문은 필요 없어 보인다. 작가는 사진과 미디어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인터넷·잡지·영상매체에 남겨진 변화를 감각적으로 채집하고, 단계별로 조직한 자신만의 구조위에서 평면성·색면성·형상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린다는 행위성에 중점을 두고 함축적인 의미 속에서 본래의 진실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러한 뮈토스의 구조와 함께 등장한 언어는 일상적인 의미와 다른 ‘비유 언어’이자 통상적 사물체계에서 벗어나려는 낯선 창의성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Myth와 Time으로 구성된 텍스트 연작들 속에서도 ‘해체-재생-복귀’의 변증법은 ‘흐른다(Flow)’는 순환의 개념 속에서 동시대 문화를 극명하게 꿰뚫는다. 동일해 보이지만 다른 뉘앙스 속에서 반복과 차이를 드러낸 작품들은 고정된 가치를 가로지른 맥락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미지와 해석 그 자체를 관조하고 있다. 이렇듯 ‘이미지와 시대의 간극’을 동시대 언어로 통찰하려는 태도는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미디어 이미지들(텔레비전·영화·잡지·광고)의 홍수 가운데 성장한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이자 ‘새로운 차원의 재현(New dimension of representation)’을 탐구하려는 회화작가로서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를 선택하는 방식 역시 20세기 팝아트의 차용·복제·혼성모방을 전략적으로 뒤집으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중성과 아방가르드 신화를 모두 수용하는 관망적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이 획득한 시간성(temporality), 이른바 “지속된 시간의 경과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람객들의 참여와 경험”(Douglas Crimp, 1944-2019), 앞에 철저히 계획된 구성을 선보임으로써 자신의 구상미술을 팝과 개념미술, 포토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을 종합한 ‘복합콜라주의 다중변주’로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미술은 표현이 아니라 탐구이고, 우리시대의 아이콘(영웅)이나 신화를 발굴해냄으로써 이미지가 제작되는 총체적 모험”이라고 언급한다. 이질적인 이미지의 절충 속에서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회화의 본질을 철저하게 지켜나가되, 이 시대가 탑재한 다양한 시각언어들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렇듯 “충분한 정보를 알려주되 보는 이로 하여금 자세히 바라보게 만들고, 현대의 무비판적 수용에 대해 스스로 성찰해보도록 만드는 세련된 화화언어”, “대상이나 사건, 심지어 영웅들까지도 소비 가능한 이미지들로 매혹시키는 동시대 회화의 새로운 아카데미즘” 이것이 정영한 작가가 추구해온 21세기의 회화미학이 아닐까. 

installation view

- 전 시 명 : <이미지-時代의 斷想> 정영한 25회 개인전

- 전시기간 : 2020년 7월 30일(목) ~ 8월 9일(일)

- 참여작가 : 정영한 (鄭暎翰, CHUNG, YOUNG-HAN)

- 전시작품 : 회화, 드로잉 및 설치형태의 평면 작품 50여점

- 장 소 : 금호미술관 2F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8

- 관람시간 : 10:00~18:00 (월요일 휴관)

- 오 프 닝 : 2020년 7월 30일(목) 오후 5시-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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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정영한 개인전, Image-Fragment of the time 이미지-時代의 斷想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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