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의장, 한일협정을 밀어붙이다 28일 밤 10시 1TV 방송
1965년 6월 22일, 14년에 걸친 협상 끝에 '굴욕 외교' '졸속 협정' 한일협정 체결
"독도를 아예 폭파하자" 국민의 지지, 동의없이 이뤄진 외교가 낳은 참극 그 뒷이야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출처= KBS 역사저널

[문화뉴스 MHN 전은실 기자] 1965년 6월 22일, 14년에 걸친 협상 끝에 한일협정이 체결된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나 반성 없이 이뤄진 한일 국교 정상화는 5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일 관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굴욕 외교’, ‘졸속 협정’이라 불리는 한일협정은 어떻게 체결되었을까.

 

▶ 박정희와 만주

10여 년간 지지부진하던 한일 회담은 박정희 소장의 등장과 함께 새 국면을 맞는다.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 출신이었던 박정희 의장을 반가워한 일본은 “이제야 대화 상대가 나타났다!”고 평한다. 

박정희 의장, 한일협정을 밀어붙이다 14일 밤 10시 1TV 방송 / 사진출처= KBS 역사저널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의장은 일본에 전격 방문해 한일 국교 정상화를 요구한다. 회담 후 열린 만찬회에서 박 의장은 만주군관학교 시절의 오랜 인연인 교장 선생님을 만나 갑작스럽게 큰절을 하게 된다. 은사를 만나 예의를 표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공식 외교 석상에서 고개를 숙이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 그날, 만찬회 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논란의 3억 달러

5·16쿠데타의 브레인이자,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특사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다. 당시 30대 중반에 불과했던 김종필 부장은 오히라 외무상을 만나 두 차례 밀실 회담을 갖고, 청구권의 액수와 지급 방식 등을 논의한다. 이 자리에서 청구권 금액을 무상 3억 달러로 확정짓는다. 그러나 이는 이승만 정부가 요구한 대일청구자금, 약 20억 달러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였다. ‘매국 협상’, ‘굴욕 외교’라는 전 국민적인 반대 시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부가 밀어붙인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1965년 6월 22일, 14년에 걸친 협상 끝에 '굴욕외교' '졸속 협정' 한일협정 체결
사진출처= KBS 역사저널

▶독도를 폭파하자? 굴욕의 한일 협정

비공식 라인이 동원된 한일 회담에서 군사정권의 미숙한 외교력이 버젓이 드러났다. 김종필 부장은 일본에게 “회담을 방해하는 독도를 아예 폭파하자!”라고 말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독도를 폭파하고 싶다고 공식 외교 석상에서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국민의 지지나 동의 없이 이뤄진 외교가 낳은 참극. 한일협정의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1965년 6월 22일, 14년에 걸친 협상 끝에 '굴욕 외교' '졸속 협정'한일협정 체결
사진출처= KBS 역사저널

한편, 박정희 정권 지지 기반이자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한 일본의 경제 협력 자금, 여전히 논란 가득한 한일 협정의 진실은 28일 밤 10시 KBS 1TV '역사저널 그날- 박정희 의장, 한일협정을 밀어붙이다'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KBS역사저널] 굴욕 외교, 박정희 의장이 밀어붙인 '한일협정'의 내막은? 55년 전 그날..

박정희 의장, 한일협정을 밀어붙이다 28일 밤 10시 1TV 방송
1965년 6월 22일, 14년에 걸친 협상 끝에 '굴욕 외교' '졸속 협정' 한일협정 체결
"독도를 아예 폭파하자" 국민의 지지, 동의없이 이뤄진 외교가 낳은 참극 그 뒷이야기는?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