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남궁 은] 팔공산 유원지는 여기가 끝인데 산속에 맛 집이라도 있는걸까 순진한 처자는 남자친구가 가자는 데로 삐딱 구두를 신고 혹시 뒤처질 세라 열심히 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목하 열애 중이었던 시인은 서울역 경부선 화장실에 들렀다. 열차를 타기 전 거울을 보기 위해서다. 빨간 치마에 흰 블라우스가 제법 잘 어울리는 것을 확인하고 빨간 립스틱으로 마무리 이내 부산행 열차가 떠난다는 장내 방송을 듣고 대구행 티켓을 움켜쥐고 기차에 몸을 싣는다 몇 개월만인가 당일 다녀왔어야 했기에 한 시간이라도 더 같이 있으려면 아침도 굶고 새벽기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대구역에 도착 남자친구를 만나자 마자 서둘러 버스를 태웠다. 어디 가는걸까 ? 뭐 좋은데 가겠지 하고 그저 남자친구가 가자는 데로 몸을 맡겼다. 버스는 팔공산 도립공원에 우리를 내려놓고 떠났다. 팔공산 입구에 수많은 음식점들 닭백숙부터 파전, 막걸리 온갖 산해진미가 등산객과 관광객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뭘 먹자고 하지 아침도 굶은 처자는 음식을 보는 순간 무엇이라도 그가 먹자면 무엇이든 다 먹을 판이다. 그러나 그는 거의 백여 미터나 되는 음식점 마지막 집을 지나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아닌데 설마 하면서도 무슨 계획이 있겠지 싶어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은채로 죽을 힘을 다해 그를 따라갔다. 물 한 모금도 먹지 않고 그는 무슨 약속이라도 있는 듯 나를 재촉했고 나 역시 그가 하자는 데로 큰 기대를 안고 오르기 한 시간정도 지나니 갓 바위 정상이 나오고 그는 뛰어 들어가듯이 대웅전을 지나 절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뒤따라온 내게 그가 한마디 한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점심 공양시간을 놓칠 뻔했다고...,

난 이 에피소드를 권미강 시인에게 직접 들었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시인의 과거사를 들으며 도저히 참을 수 가 없었다. 아니 바보 같아도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있을까? 

권미강 시인의 지고 이 지순은 여기서 끝나지 않지만 시인으로 직장인으로 엄마로 딸로 열심히 살아가는 권미강 시인을 보면서 나는 이 살벌한 세상에 이리 바보같이 순수한 사람이 있을까? 

드디어 그 바보 같은 늦깍이 시인의 시집이 나왔다. 
      

소리다방/제공=노마드북스

 

권미강의 '소리다방'은 시 옆에 있는 QR코드를 찍어 유튜브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 출생으로 추계예술대 문예창작학과와 영남대 조형대학원 예술행정학과를 나왔다. 1989년 동인지 ‘시나라’에 ‘백마의 안개’ 외 1편 발표했다. 2011년 ‘유년의 장날’로 <시와 에세이> 신인상을 받은 그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권미강의 소리시집 『소리다방』 을 첫 시집으로 출간한 것이다. 서천군 한산면 소리바다는 생전에 아버님이 운영하시던 전파사의 이름이고 지금은 어머님이 추억을 간직하고 살고 계신 곳이다. 그 사연은 책 추천사에 오롯이 기록되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권미강 시인의 경부고속도로의 미친 베르나 에피소드를 소개 할날을 기대하며 권미강 시인 흥해라.

 

남궁은 다큐멘터리 감독 (現 강원대 아트엔테크놀로지 연구초빙교수)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권미강의 소리시집 '소리다방'

권미강 시인의 첫 시집 『소리다방』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소리시집이다. 
노마드시선에서 펴낸 10권 째 시집인 『소리다방』은 대학원시절부터 낭송을 연구해온 시인이 시의 대중화를 위한 새로운 콘텐츠로 기획했다. 총 64편의 시 중에 28편을 낭송으로 들을 수 있다. 

음악작업은 영화 ‘워낭소리’ 타이틀곡을 작곡하고 음악감독을 했던 작곡가 허훈씨가 맡았다. 시인의 시를 읽고 작곡한 9편의 음악들은 소리의 색깔을 맛깔스럽게 입혀서 시의 맛을 배가시킨다. 녹음은 시인의 고향인 충남 서천의 서천군미디어문화센터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  

시집을 펼치다보면 보물상자처럼 큐알코드가 새겨져 있다. 스마트폰은 보물상자를 여는 열쇠가 되어 시인의 목소리로 낭송되는 시를 들려준다.   

대학원에서 ‘시낭송의 공연예술화 방안’을 연구했던 시인은 시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고 소리시집은 또 하나의 결과물이다. 

시집 제목인 '소리다방'은 시인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전파사인 ‘미음사’를 일컫는 단어다. 한적한 마을을 정겨운 노래 가락으로 채우며 시장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미음사’ 주인인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향수가 짙게 깔려 있다.   

시단의 평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황정산은 “권미강 시인의 많은 시들은 소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소리의 기억들을 추적하여 청각이 불러내는 감성을 소환하여 과거의 경험과 현실을 구체적 감각으로 재배치한다”고 해설을 통해 『소리다방』이 소리시집인 또 다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의 분석대로 『소리다방』 1부에 실린 시편들은 시인이 유년의 기억들을 청각적으로 담아낸 시편들이다. 

“어머니, 아버지가 부르던 “백치 아다다”라는 노래의 기억으로 만들어졌고. 아버지가 운영하던 라디오 수리점은 “미음사”였다.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상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지금의 기억 안에서까지 그곳에서 불리었던 노래는 시인에게 아직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먼지바람 휘돌아가는 충청도 한산면 삼거리 
라디오통 소리 아름답게 들려주고 싶다던 아버지는 
전파사 이름도 아름다운 소리 ‘미음사’로 짓고
가게 양쪽에 별표 전축 스피커로 소리공양 하신다. 
하루 종일 배호며 이미자며 은방울자매를 불러대는 미음사는 
노랫소리 흘러나오는 시장통 사람들의 소리다방 
부산스러운 오전 장사 끝내고 
늦은 점심 뒤 미음사로 몰려드는 읍내 사람들
제재소 현순네 아버지가 ‘안개 낀 장충단공원’을 멋들어지게 따라 부르면 
삼거리정육점 아저씨는 ‘돌아가는 삼각지’로 화답한다. 
저고리 색만큼 홍조 띤 엄마는 
‘동백아가씨’ 나오면 진열장 물건 챙기며 흥얼흥얼 콧소리 섞는다.
 - 미음사 1 ‘소리다방’ 중에서 

 
시인의 시에는 충청도 작은 읍내 풍경과 소박하게 살았던 시장통 사람들의 일상이 트로트와 어울려 묘사돼 있다. 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영사기를 통해 빛바랜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하다.     

“그것은 한 젊은 부부의 “달달한 금슬”을 소환하고 그 안에서 자란 자신의 안온한 어린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시인의 이런 일련의 정서적 반응에 좀 더 분명한 감각적 구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 당시 불렸을 노랫가락을 지금 기억나는 대로 발음해서 표기하는 시적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으로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그 노래의 구성진 음정과 박자를 느끼게 만든다. 시를 읽으면 입속에서 절로 흘러나오는 이 노래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라는 해설의 대목처럼 시를 읽다보면 어느새 추억의 트로트 한 자락이 이내 목젖 위를 타고 오르는 듯하다.

공광규 시인은 “권미강의 시집 『소리다방』은 개인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수십 년 전 시골 공동체의 문화사와 풍속사를 회고하고 복원하는 의미 있는 역작”이라며 ‘소리다방’에서 시작된 통속가요를 수십 년 몸에 묵고 묵혀 숙성된 목소리로 진술한다”고 평했다. 

김명리 시인은 “유행가를 들으면서 커 온 세대에게 유행가의 노랫말만큼 심중을 울리는 시구(詩句)는 다시없을 터”라며 “『소리다방』은 소리로 듣고 눈으로 읽는 시집답게, 시적 수사(修辭)를 야무지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세월의 광대함과 생명에의 외경을 의뭉스럽게 멋들어지게 표현”이라고 평했다. 

총 64 시편이 1부~5부로 나눠져 실린 『소리다방』은 소리를 통한 청각 뿐 아니라 시각과 미각, 촉각 등 감각을 시어를 통해 살려낸다. 황정산 시인은 해설 말미에서 이러한 감각적 구체성에 대해 이렇게 정의 내린다. 

“권미강 시인의 시는 감각적 구체성을 통해 인간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서정시의 한 전범을 보여 준다. 이런 감각적 구체성의 회복은 과잉된 정서의 감상적 토로나 시대착오적 음풍농월에 머무르기 쉬운 서정시의 약점을 극복하고 삶의 튼튼한 기반 위에서 때로는 사회적 상상력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독자로 하여금 언어를 통한 감각적 구체성을 체험하게 하고 그것이 불러온 정서적 반응을 실감 있게 느끼게 하며 그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돌아보게 하는 그의 시는 지금의 서정시가 나아가야 할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까지 하다.”

묵은 김치를 꺼내듯 오랜 세월 가슴 속에 묻어둔 시를 지천명을 넘기고 나서야 꺼내 놓은 시인은 5부에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개인적인 경험과 인연을 통해 풀어놓기도 했다. 3.1운동과 관련된 「딜쿠샤 궁전」, 평화의 소녀상을 그린 「평화로 돌아온 누이」, 4.3항쟁의 아픔을 담은 「동백으로 우는 섬」, 6.25전쟁과 분단이 준 개인적 비극 「간첩을 사랑한 여자」, 「그의 이름은 박근식」, 세월호의 슬픔을 담은 「4월은 꽃들이 우리를 기억하는 달」, 「엄마의 무게」 남북정상회담의 감동을 담아낸 「정상의 악수」 등은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우리의 길을 찾기 위한 표식이기도 하다.    
 
이산하 시인은 “권미강의 이 시집은 사무치는 대상 없이도 사무친다. 시의 숨결이 비에 젖어 곱게 쌓여가는 부석사 은행잎 같기도 하고, 잔설에 덮여 애틋하게 잦아드는 미황사 동백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시의 행간에는 여전히 비오는 소리가 들리고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면 눈 내리는 소리도 들린다. 시집을 덮으면 봄이 기어이 다가와 꽃필수록 아프다”라는 표사로 시인의 아픈 표식을 쓰다듬어 주는 듯하다. 

 

권미강 시인은 
충남 서천군 한산면 출생으로 추계예술대 문예창작학과와 영남대 조형대학원 예술행정학과를 나왔다. 1989년 동인지 ‘시나라’에 ‘백마의 안개’ 외 1편 발표했다. 2011년 ‘유년의 장날’로 <시와 에세이> 신인상을 받았다. 칠곡군청과 구미시청,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대전문화재단 등에서 근무했으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불교방송 구성작가 등 언론사에서 활동했다. 현재 여주시청 홍보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구매일신문에 ‘권미강의 생각의 숲’을 연재 중이며 동인 ‘목련구락부’,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다. 공저로 <예술밥 먹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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