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웅의 마지막을 보내는 팬들의 자세…최장기간, 최다 편수라는 역사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최근, 한 영화관에서 거대한 포스터 하나를 봤다. '로건'의 홍보 포스터였는데, 그 포스터에 한 발씩 다가갈수록 먹먹한 감정도 한 걸음씩 다가오는 걸 느꼈다.
 
포스터엔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와 휴 잭맨이라는 배우에게 보내는 수많은 말들이 있었고, 거기엔 고마움과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그걸 읽으며, 한 명의 캐릭터와 시리즈가 만든 '하나의 시대'가 퇴장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 [양기자의 씨네픽업] '로건'에 관한 10가지 잡지식 ⓒ 시네마피아
 
최장 기간, 최다 편수라는 역사
'엑스맨'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는 2000년에 시작했다. '로건'은 그로부터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휴 잭맨의 울버린은 아홉 편의 영화에 등장했다. 휴 잭맨은 최장 기간 한 명의 캐릭터로 가장 많은 영화에 등장했고, 이 기록은 대대적으로 보도가 될 정도로 엄청난 기록이다. 그러니 17년간 함께한 울버린을 보낸다는 건, 휴 잭맨 본인에게나 팬들에게나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로건'은 이미 '이별'을 예고하고 있는 영화였고, 관객은 즐거우나 괴로우나 영화가 끝을 향해 갈수록 슬픔을 맛볼 것이다.
 
이번 영화의 제목 '로건'은 '초월적 존재' 울버린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조명하겠다는 의미이자 의지다. 인간적인 로건의 모습이라는 건, 인간적 고민을 하는 영웅의 모습일수도 있고, 인간처럼 늙어가는 육체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혹은 둘 다 이거나. 이번 영화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건, 로건의 얼굴에 보이는 '역사'이다. 노쇠한 영웅의 모습이 나이든 휴 잭맨의 얼굴과 겹치며,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캐릭터와 배우가 하나인 느낌, 그리고 함께 시간을 공유한 느낌. '로건'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이미지는 울버린, 혹은 휴 잭맨의 주름이다.
 
   
 
힘을 잃은 영웅의 초상
'로건'엔 울버린이 등장하지만, 관객이 '마블'의 콘텐츠에 기대하는 그런 영웅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이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건 초인적인 힘을 잃어가는 울버린이고, 그가 보여주는 액션은 간혹 예전을 오버랩하게 하긴 하지만, 영 시원스럽지 못하다. 힘을 잃어 도피하고, 버티는 삶을 보여주는 울버린의 모습은 관객과 오랜 시간 함께했던 영웅과 간극이 크다. 무적의 영웅에서 약자의 위치로 내려온 울버린 이전의 시리즈와 다른 고민을 보여주기에 신선한 면이 있다. 다만, 막연히 '마블'의 가볍고 화려한 액션, 스펙터클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영화의 건조한 톤이 낯설고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내에서 '서부극'이 언급되기에, 이에 대해 살짝 말을 하고 넘어가야겠다. 서부극의 무법자, 총잡이들은 현상금을 위해 움직이거나, 자신만의 정의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추구하는 인물들이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있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속성이 하나 있는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자‧떠도는 자‧그리고 집이 없는 고독한 방랑자란 점이다. 울버린은 영웅으로서 살았지만, '로건'으로 돌아온 그는 어디에도 속할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과거의 악몽에 시달리며 고통 받는 중이다. '로건'엔 갈 곳 잃은 한 남자가 있었고, 그의 마지막은 서부극의 주인공처럼 한없이 고독해 보였다.
 
   
 
지금, 가장 파괴적인 영화가 될 '로건'
'로건'에 관한 평 중 허남웅 평론가의 말이 흥미롭다. 그는 '트럼프 시대에 슈퍼히어로가 사는 법'이라는 멘트를 남겼다. 트럼프는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최근 인종 차별적인 정책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를 향한 영화인들의 비판도 상당한데, 최근 있었던 골든 글로브 및 아카데미 시상식은 트럼프의 정책을 꼬집고, 비판하는 축제처럼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로건'과 트럼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엑스맨'은 '돌연변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시리즈엔 차별받고 소외당하며, 폭력에 노출된 소수자들에 관한 주제가 늘 함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로건'에도 당연히 그런 테마가 있다. 갈 곳을 잃어 숨고, 심지어 달아나기도 해야 하는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돌연변이들이 국경을 넘으려는 시도가 트럼프의 정책과 현재의 미국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아 기이한 기시감을 준다.
 
   
 
'로건'은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마블'의 영웅을 중심에 두고서, 동시에 가장 시의성 있는 정치 문제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기에 파괴적인 영화가 된다. 이 시리즈를 통틀어, '로건'만이 그런 역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유독 이번 영화는 건조하고 분위기 속에 묵직한 힘이 있다. 그리고 '서부극'이라는 전통적인 미국의 장르를 가져오면서 현재의 '미국'을 보여준다는 점도 흥미롭다. 더불어, 오랜 시간 함께한 휴 잭맨을 향한 헌사, 리스펙트가 더해져 영화 그 이상의 강렬함까지 있다. 휴 잭맨이 노쇠했고, 퇴장함에도, 그가 출연한 모든 시리즈를 통틀어 '로건'이 가장 강력한 영화로 보이는 이유다.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