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A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유명우와 안래기(우측)

 

[문화뉴스 MHN 조영섭] 

필자는 한국복싱의 원년(元年)을 미국인 선교사였던  길레트가  복싱 용구를 가지고 이땅에 복싱을 전파한 1916년 보다는 충남 예산출신의 성의경이 종로구에 최초로 조선권투 구락부를 창설한  1927년 9월17일을 한국복싱이 태동한 원년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조선권투 구락부를 설립한 그이듬해인 1928년 YMCA 주최로 제1회 전 조선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는등 초창기 한국복싱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도약하는 시발점(始發點)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조권은 한국복싱의 희망이자 횃불이었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 어느덧 한국복싱사도 어느덧 1백년을 향해 달리고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속에 한세기가 흘러가면서  프로복싱에서  세계챔피언이 43명이 탄생하면서 국제무대에서 가장많은 타이틀을  획득한 효자종목임에 꼬리표를 다는사람은 별로없을 정도로 온국민과 희노애락 을 함께하는 스포츠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공(功)이 있으면 과(過) 가있고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듯이 하지만 정상급 실력을 보유했지만 챔피언 타이틀과는 과는 인연이 없는 혜성처럼 나타났다 유성처럼 사라진  복싱계의 숨은 별들을 이번주 스포츠 산책 코너에서 소개해 볼까한다    

WBA 플라이급 세계 1위 안래기

 

지난 7월4일 필자는  KBC 홍수환 회장 타이틀 획득 46주년 기념식이 개최된 세검정 하림각에서  현재 부천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전 WBA, 플라이급 1위 안래기 관장과 성남에서 역시 체육관을 운영하는 전 WBA 라이트 플라이급 6위 임하식 관장과 자리를 함께했다 이두사람은 85년 2월23일 문화체육관 에서  한차례 맞대결 박진감 넘치는 명승부를 펼친 끝에 안래기의 7회KO승으로 종결되었던 인연이 있는 복서였다 하지만 패자 임하식(성남제일)도 82년5월 프로에 대뷔하여  돌석 이재연 김용채 한영현 등 중견복서 들을 차례로 잡은 만만치않은 저력과 실력을 보유한 베테랑복서 였고  83년 12월1일에는  포스트 김태식으로 불리던 차세대 유망주인 9전전승(5KO승)의 원진 체육관의 국순일을 10회 전원일치 판정승 주목을 받은 퀄리티 높은 복서였다  임하식에  패한 국순일도 동양챔피언을 지낸 정병권(보라매)과 신인왕 출신 김석봉(한화)을 잡으며 주목을 받았던  중견복서로  적어도 동양권에서는 당시  한국복싱의  수준이 최고봉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 임하식은 안래기에게 패한후 전열을 정비 86년 5월 IBF 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하는 최창호를 한수위의 기량으로 압도 판정승을 거둔후 그해 10월 이번엔  WBA 미니멈급 챔피언에 등극하는 김봉준과 치열한 타격전 끝에 판정으로  잡고 국내 jr 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 기염을 토했다  

임하식과 치열한 타격전을 펼치는 안래기 (우측)

 

7년3개월 동안 36전 23승 2무11패(6KO승)을 기록한 잡초복서 임하식은 최점환과 2연전을 비롯해 유명우 김용강 장경재 임정근 등 내노라 하는 톱 복서들과  일전도 불사한 특급 파이터였으며  87년 7월 이후에는 3차례 연속 해외 원정에 나서 3연승(2KO승)을 거둔 실력파였다 임하식은  큰거한방은 없어도 강철체력을 앞세워 섬세한 테크닉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전형적인 소총수(小銃手) 로 중화기(重火器)로 무장한  안래기가 84년 3월 극적으로 8회 무승부를 기록한 김용채(동아)를 임하식은 다채로운 연타를 앞세워 83년 8월 판정승으로 제압한 기록을 유추해보면 세계랭커 임하식의 실력도 만만히 볼 실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까지마 슈이찌와의 한일전에서 레프트훅을 가격하는 안래기 (좌측)

 

복싱은 기록경기가 아니기에 전적을 보고 상대를 평가하는 것은 금물(禁物)이다 어느 레벨의 선수와  어떻게 싸웠느냐에 따라 복싱의 평가등급이 결정된다 미국과 중남미 복싱이 강한 이유는 선수층이 두터운 그 지역 챔피언이 곧 세계챔피언이라 할만큼 수많은 퀄리티 높은 강자들과 맞대결하며 치열한 경쟁 끝에 한명의 진정한 무림(武林)의 왕자가  탄생하기에 그들의 실력을 자타가 인정하듯이 당시 군웅할거 (群雄割據)하던 선수층이 두터운 국내 복싱계 에서도 진정한 고수는  동남아의 속칭 허접 복서들을 불러다가 KO 행진을 펼치는 복서들이 아닌  수준높은 국내의 수준급 복서들과 진검승부에서 등급(?)이 결정된다  예를 들면 79년 10월 프로에 대뷔한 국가대표 출신 유흥석은 대뷔초에 김종호 .박태훈에 에 판정승 .이동복에 판정패 .김용대에 무승부.를 기록 진땀을 흘리다가 이후 17차례 연속 동남아 선수들을 상대로 경기를 치뤄 철만난 메뚜기떼처럼 17전15승(14KO승) 2무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탔다  

후에 WBA 미니 멈급 세계챔피언 에 등극하는 김봉준과 맞대결 하는 임하식(우측)

 

 

또다른 사례를 살펴보면 1983년 제주에서 벌어진 WBA 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21살의 28전 26승(11KO승) 1무1패를 기록한  신희섭은 국제전에선 11전승(7KO승)을 거뒀지만 장정구와 한영현에게 1패 1무를 기록한 복서다 챔피언은  70전54승(20KO승)10무6패 를 기록한 알젠틴 의  산토스 라시아르 였다 하지만 신희섭은  공이 울린지  단 79초만에 KO패 당한다  그 경기는  산토스 라시아르가 길베르토 로만과 3연전을 비롯해  피터 마테블라 루이스 이바라 환 에레라 등 세계적인 복서들과 벌인 승부보다는 그가 기록한 10무 6패에 포커스를 맞추고 잘만하면 타이틀 하나 건지겠구나 하는 다소 안일한 생각에 검증이 안된 그를 성급히 맞대결을 시켜 참혹한 결과로 나타났다  

 

1981년 5월 대뷔한 안래기는 83년 3월5일 유명우와 맞대결 살얼음판을 걷는듯한  박빙의 승부 끝에 8회 판정패를 당했지만 만만치않은 실력을 과시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통산 39전38승(14KO승)1패를 기록하며 세계타이틀 17차방어의 대업을 이룩한 유명우가 가장 힘들었던 상대가 국내에선 안래기를 국외에선 조이 올리버를  꼽을정도로 유명우에겐 안래기와의 일전은 식겁(食怯)한 경기였다 당시 12전8승(4KO승)2패 2무를 기록한 안래기와 11전 전승의 유명우의 대결은 용호상박(龍虎相搏) 난형난제(難兄難弟)의 대접전 그자체였다

 

 필자도 당시 그무렵에 영등포 88체육관에서 유명우 안래기와 비슷한 시기에 스파링을 치뤘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유명우에게 특유의 소나기 펀치에 정신없이 얻어 맞았지만 파괴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안래기는 유명우처럼 매서운 연타 능력은 떨어졌지만 송곳처럼 날카로운 펀치에 곤욕을 치뤘던 지난날이 스쳐간다. 이후 안래기는 흡사 김봉준처럼 터프한 양회열과 85년 4월 국내 플라이급 타이틀 결정전을 치뤄 4회 레프트 보디샷으로 경기를 종결시켰는데 양회열은 당시 전주도 장태일 조규찬 등과  18전 싸우면서도 단한차례도 KO패 당한적이 없는 <인간 방파제>라 불릴 정도로  내구력이 견고한 복서였지만 안래기에게 첫 KO패를 당한후  복싱을 접고만다   1차방어전은 아마츄어 전국체전 은메달 리스트인  이재연(불티나)을 상대로 송곳같은 잽과 창처럼 날카로운 스트레이트로  9회 KO승을 펼치는 경기를  직관했는데 이경기 또한 한마디로 감탄사가 절로나오는 원맨쇼 였다  

 

그후 안래기는 1985년 9월 수방사에 입대한후 처음 치러진 2차방어전인 김석봉에 판정승을 거둔후 이후 WBC 세계랭킹 1위로  카오사이 갤럭시와 타이틀전을 벌였던 난적 나까지마 슈이찌에 10회 판정승을 거두면서 WBA 플라이급 랭킹1위에 등극 1987년 9월5일 태국에 원정 챔피언  태국의 소트 치탈라타와 일전을 벌였지만 최악의 컨디션으로 맞대결 4회KO패  30전 23승(13KO승) 4무3패를 기록하고 사실상 복싱을 접는다 한편  보름후인 9월 20일 수경사 동료 복서이자  동갑내기  라이벌 유명우는 WBA jr 플라이급  6차방어전에서 로돌프 블랑코를 8회 KO로 잡고 6차방어에 성공 롱런가도로 진입하며 극명하게 대비되는 결과를 창출했는데  안래기는 유명우에 비해 종합적으로 멘탈이 딱 1% 부족했다 물이 수증기가 되어 자유로이 날아가려면  100℃가 되어야 한다 1%가 부족해 날지못한 비운의 작은새 ...그이름 안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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