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철 챔프 김정인(주) 금륭건설 대표 탄다타 안상수 사장(좌측부터)

 

[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지루한 장마와 폭염이 교차하는 지난주말 전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백인철 챔프가 지난 5월 자신의 타이틀 획득 41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뤄준 강동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탄다다 대표> 안상우사장과 복서출신의 사업가 김정인 후배와 동석 오찬을 함께하며 담화를 나눴다 일찍 복싱을 접고 사업가로 변신한 김정인은 현재 역삼동 과 부산해운대구에 <주>금륭건설 대표로 재직중인 사업가인데 40대 중반에 부산과학 기술대학 의무 행정과에 입학 만학도<晩學徒>의 길을 걷는 복서출신의 성공한 사업가중 한명이다 백인철 챔프 는 올해 3월 환갑을 맞이했지만 치루지 못해 찜찜했는데 안상우 사장이 겸사겸사하여 지난 5월에 전격적으로 타이틀 획득 기념행사를 치뤄준대 대해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백인철은 전 WBC 슈퍼 라이트급 챔피언 김상현 선배에게 전화를 건다 백인철이 지금의 아내와 함께 연애하던 시절 부산에 들렸을때 그곳에 거주하는 김상현 선배에게 대접을 잘 받았던 모양이다 이에 백인철은 한잔술 에 감성에 젖어 감사의 전화를 걸었다

박종팔과 대결하는 백인철(우측)

이장면을 지켜본 필자는 순간적으로 두복서의 공통점이 뇌리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듯이 불쑥 떠올랐다 두복서는 10년동안 프로복서로 활동하면서 50전을 싸웠던 역전의 용사였다 또한 힘겹게 탈취한 세계타이틀을 3차방어에서 마감한 공통점이 있었다 더욱더 중요한 사실은 이두복서는 국내에서 라이벌 전에 가장 강한 세계챔프 출신 였다는 사실이다 김상현은 국내복서와 도합 23전을 싸웠고 백인철은 18전을 싸웠지만 단 한차례도 패하지 않고 복싱을 접은 진정한 실력파 였다 한국 프로복싱은 80년대 초반 동양타이틀 12체급중 11체급을 석권한 명실상부한 아시아복싱 최강이었다 당시 동양챔피언 명단은 .라이트 플라이급 <김성남>. 플라이급 <신희섭>. 밴텀급<무라다.에이지로>. 주니어 페더급 <정순현> .페더급<오민근>. 주니어 라이트급 <문태진>.라이트급<김득구>. 주니어 웰터급 <김응식> .웰터급 <황준석> .쥬니어 미들급<백인철>.미들급 <박종팔>.라이트 헤비급<이수항>.이 주인공이었다 이두복서는 또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복싱전략에 드로잉<drawing>란 단어가 있다 특히 이들은 다소 허술한 커버링으로 인해 얼굴의 일부분을 노출함으로써 상대를 유인<誘引> 상대가 만만히게 들어올 때 몸통을 뚫어질 정도로 정확하게 가격하는 강공 드라이브<drive>란 카운터 펀치를 보유하고 있어 정상급 복서로 활약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김상현관장 김용강챔프 김철호 대표(좌측부터)

핵주먹 타이슨과 중학생이 맞붙어 싸우면 타이슨이 이기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중학생 손에 권총을 쥐고 있다면 상황은 반전 된다 마찬가지로 두복서는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필살기<必殺技> 가 있었던 것이다 복싱의 기본기술은 아마츄어나 프로의 경우나 대동소이 <大同小異> 하다 다만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연습정도의 차이가 있을뿐이다 같은 기술을 가지고 반복해서 갈고 닦은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차이가 야구로 말하면 메이져리그와 마이너리그로 우열이 가려진 것이다 야구는 10번중 3번만 성공해도 훌륭한 선수로 평가받는 유일한 종목이라고 메이져리고 최후의 4할타자 테드 월리엄즈는 명언을 남겼지만 복싱은 최소 10번의 대결중 최소 7번을 성공해야 인정받는 종목이다 그중 수준급의 국내복서와의 라이벌전은 복서들의 순도<純度>를 측정하는 중요한 잣대라 할수 있겠다 축구에서도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황선홍은 볼리비아 전에서 결정적인 순간 단 한골도 성공시키지 못해 <헛발질의 명수>란 달갑지않은 닉네임을 얻었지만 그해 벌어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네팔 전에선 무려 8골을 작렬시켰던 전력이 오버랩<overlap> 된다

89년 5월 wba 슈퍼 미들급 타이틀전을 치루는 백인철(좌측)과 오벨 메히야스

80년 5월 복싱에 입문 90년 3월 복싱을 접은 백인철은 50전 47승<43ko>3패를 기록했는데 국내선수와 18전을 싸워 전승에 16ko승을 기록했다 특히 85년 4월 24승21ko승3패를 기록한 유제형과 86년10월 34승23ko2패를 기록한 황준석 88년 12월 46승39ko승5패2무를 기록한 박종팔과 치룬 3경기는 그중 압권이었다 백인철은 한방에 경기를 종결시키는 슬러거가 아니다 작은 모션으로 데미지를 누적시켜 서서히 침몰시키는 컨택형 슬러거다 클린히트가 작렬 상대가 쓰러져도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는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는 백인철은 침묵의 도살자다 73년 9월 프로에 데뷔하여 83년4월 까지 역시 10년의 현역생활중 한차례 시범경기를 포함 50전43승<25ko승>3무 4패를 기록한 전 WBC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김상현도 선수층이 두터운 그때 그시절 국내 라이트급 1인자인 숙적 김광민을 두차례 잡은 경기를 비롯해 국내타이틀 3체급을 석권한 최만성. 허버트강을 잡은 파이터 김광선(한국화장품).아시아 선수권과 아시안게임 금메달 리스트인 정영근. 국내챔피언을 지낸 김갑수와 채경환.을 비롯해 주호와 무승부를 기록한 박동안등 소위 일당백<一當百>하는 국내복서와 도합23차례 맞대결 치열한 타격전을 전개 21승<9ko승>2무를 기록했다

특히 17승 <11KO>1무를 기록한 아마복싱 대표선수 구상모를 1회 2분43초 만에 KO승을 거둔 저돌적인 파이터 김광민 과의 라이벌전에서 마치 투우사가 성난황소를 자유자재로 유린하듯이 주도권을 잡고 창처럼 날카로운 스트레이트와 묵직한 어퍼컷으로 주도권을 잡고 일타를 가한 1차전 경기는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진수를 짜릿하게 느끼게 하는 일전이었다 김상현에 2연패를 당한 김광민은 숙적 오영호에 3연승을 하면서 분풀이를 하였고 3연패당한 오영호는 이이다노란 유망주를 2차례 KO로 잡으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어쩌면 백인철 김상현 이들은 막강한 경쟁자가 나타나 그를과 경쟁하면서 잠재력을 끌어올려 일종의 <메기효과>의 수혜를 입은 복서들이란 생각이든다 필자와 89년부터 3년간 88프로모션에서 트레이너 생활을 함께했던 인연이 있는 김상현 챔프는 지방에서 무명복서로 할동하며 싹을 틔우기가 쉽지않던 험난한 그때 그시절 국내복서들과 대결에서 무패의 기록을 보유한 사실을 가슴에 훈장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78년 12월 wbc 슈퍼 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하는 김상현

80년 7월20일 WBA 페더급 타이틀에 도전한 김사왕이란 복서가 있었다 당시 13전 전승10ko승을 기록한 인기절정의 복서였고 당시 일본과 동남아복서들을 상대로 7연승(6ko)를 기록중이었다 하지만 정작 챔피언 페드로사와의 WBA 페더급 타이틀전에서는 8회ko패 침몰하고 말았다 이후 중요한 사실은 83년 7월 김성렬 전을 시작으로 우동구 이양기등 국내복서와 3연전을 치러 1승2패를 기록하며 복싱을 접었는데 그중 우동구 와의 대결은 일방적으로 난타당한 끝에 8회ko패 였다 이처럼 당시 국내에 원정 온 일본을 비롯한 약체들이 주류를 이룬 동남아 출신 복서들과 국내복서들과는 현격한 수준차이가 있었다 한편 김상현은 두차례 인도네시아에 원정 윙소 수세노와 팡가리부안 에게 다운을 빼앗고도 지독한 텃세에 밀려 판정패한 복서다 그런 이력 때문인지 김상현은 한국 최고의 복서는 단연 홍수환을 꼽았다 두차례 모두 적지에서 쟁취해 왔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한 멘트였다 김상현은 76년 7월 페리 그리노를 맹공 5회KO로 제압 했는데 그선수는 후에 18전승 <12KO> 를 기록한 권철과 맞대결 무승부를 기록한 복서였다

반짝거린다고 다 금은 아니다란 서양속담이 있다 이 금빛이 도금한 빛깔인지 진짜 황금빛인지는 진검승부<眞劍勝負>가 끝나면 옥석<玉石>이 가려진다 복서의 레벨은 전적으로 평가받지 않고 누구와 어떻게 싸웠느냐로 평가받는다 한국복싱사 에서 진검승부에서 살아남은 백인철 김상현 두복서는 적어도 현재보다는 후대에 더높이 평가 되어야할 전직복서라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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