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쿠오카 (2020년 8월 27일 개봉)
감독/배우ㅣ장률/권해효, 윤제문, 박소담, 야마모토 유키

사진제공=인디스토리, 률필름
'후쿠오카'

[문화뉴스 MHN 배상현 기자] 어째 가면 갈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과 유대, 주변의 인간관계가 점점 삭막해지는 것 같다. 서로를 질투하고, 미워하고, 혐오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오늘날에 이제는 단순히 입을 여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일이 돼 버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오해가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고, 거짓과 무의미한 단어들 속에서 너와 나의 관계는 애초에 존재했던 적도 없었던 것처럼 휙 사라져 버린다.

영화 '후쿠오카'에서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이런저런 사소한 대화와 유유히 흘러가는 일본의 소박한 풍경은 마치 영화가 아니라 한 편의 연극 무대를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기묘하면서도 따뜻한 영화는 러닝 타임 동안 당신의 지치고 공허한 마음을 천천히 어루만져줄 것이다.

 

사진제공=인디스토리, 률필름
'후쿠오카'

"여기 왜 오자고 했어?"

어두운 지하에서 헌책방을 홀로 운영하는 주인 '제문'. 어느 날 가게의 유일한 단골 손님인 '소담'이 불쑥 찾아와 함께 일본 여행을 가자고 조른다. 엉겁결에 일본 후쿠오카로 가게 된 두 사람은 인적 드문 거리에 위치한 한 작은 술집 '들국화'를 찾고, 그곳에서 28년 전 첫사랑 '순이'를 동시에 사랑했던 제문의 선배 '해효'를 만난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순이를 잊지 못하는 두 명의 중년 남성과 정체불명의 스물한 살 아가씨는 3일 밤낮으로 마치 귀신에 홀린듯 일본 후쿠오카에서 기묘한 여행을 시작한다.

 

사진제공=인디스토리, 률필름
'후쿠오카'

영화 '후쿠오카'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핵심 소재는 바로 제문과 해효가 동시에 좋아했던 여자 '순이'다. 순이라는 한 여성 때문에 서로 앙숙으로 남게 된 두 남자는 여전히 80년대 첫사랑의 기억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28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제문은 순이가 과거에 좋아했던 오래된 헌책방의 주인으로, 해효는 순이의 고향 후쿠오카에서 작은 술집의 주인으로 남아있다. 두 남자 모두 마음 한 구석에서 첫사랑 순이의 기억을 희미하게 나마 어렴풋이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담은 한 여자 때문에 오랫동안 쌓여온 두 남자 사이의 앙금을 자근자근 풀어헤치며 둘 다 결국 똑같다고 핀잔을 준다.

 

사진제공=인디스토리, 률필름
'후쿠오카'

세월이 흘러 뱃살이 툭 튀어나오고 머리는 희끗희끗하게 센 두 명의 순정파 아저씨와 다르게 스물한 살의 소담은 한 여자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 무엇이길래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두 남자를 한 순간에 원수로 만들어 버리는 것일까? 도대체 그 감정이 정말 무엇이길래 한 인간의 입을 10년 동안이나 꾹 다물게 만드는 것일까?

어쩌면 영화 '후쿠오카'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우리가 단순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인관계에 있어서의 사랑이 아니라 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을 뜻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제문과 해효가 말하는 사랑과 소담이 말하는 사랑 둘 모두 정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니면 사랑이란 것에 처음부터 정답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사진제공=인디스토리, 률필름
'후쿠오카'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사랑은 결국 너와 나 사이의 진솔한 대화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대화로 시작해 대화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간의 진심이 담긴 대화가 계속해서 쭉 이어진다. 일본어나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소담이 외국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진심을 가지고 대화에 임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같은 한국사람끼리 같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눠도 닫힌 마음으로 들으면 상대방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진심을 담아서 나누는 대화는 너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러나 굳이 대화의 주제가 심오하거나 진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쉴 새 없이 계속해서 떠든다고 해서 그 말에 진심이 담겨있다고도 할 수 없다. 진솔한 대화는 일상생활 속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정말 사소한 인연들과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알고 지냈건, 얼마나 많은 말을 하건, 심지어 어떤 언어로 말을 하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극 중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문과 해효를 보면서 소담은 "너무 긴장하고 살아서 그래요"라고 말한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 사람과 진심이 담긴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담이 말한 것처럼 스스로를 잠시 내려놓고 긴장을 푸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제공=인디스토리, 률필름
'후쿠오카'

이 영화는 평화로운 주말 오후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로움을 풍기는 그런 작품이다. 따라서 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이나 깊이 있는 분석도 좋지만, 그냥 영화 자체를 그대로 음미해보는 것도 '후쿠오카'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긴장하지 말고 그냥 85분간 주인공들과 함께 기묘한 일본 여행을 짧게 떠난다고 생각해보시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나누는 진솔한 대화는 오늘날 차가워진 사회 속 당신의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하게 다시 녹여줄 것이다.

사랑과 대화를 그려낸 영화 '후쿠오카'는 의사소통의 부재가 찾아온 오늘날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모습을 그려낸 영화이고 연극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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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기묘한 영화 '후쿠오카'

영화 후쿠오카 (2020년 8월 27일 개봉)
감독/배우ㅣ장률/권해효, 윤제문, 박소담, 야마모토 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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