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복서 김학명(좌측)과 돌주먹 문성길

 

[조영섭의 복싱스토리] 제2차 코로나 광풍이 몰아치던 지난 주말 필자는 이번주 행선지를 안산으로 정하고 목적지로 향했다.

안산은 조선 영조.정조 시대에 활동한 국보급 화가 단원 김홍도의 탄생지로 유명한 고장이다. 이곳은 1987년부터 1994년까지 플라이급과 밴텀급에서 활동 승패를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 쉼없이 도전한 <집념의 복서>인 현 안산복싱 협회 실무부회장과 안산제일체육관 대표직을 겸직하고 있는 김학명 관장이 30년 넘는 세월을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면서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며 복싱 외길을 걷고 있는 고장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안산시 단원구 에서 <주>성림유화 경영지원부에 근무하는 88년 서울 올림픽<라이트 헤비급>대표 출신의 박병진 부장과 동행 역시 안산시 단원구 라성로에 있는 김학명 관장이 운영하는 안산제일 체육관을 찾았다. 용인대 출신 아마복서로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박병진은 용인대 복싱의 개척자로 불리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가 복싱 볼모지 용인대<당시 유도대>를 졸업 상무에 입대 명장 이흥수 감독의 지도아래 용인대 출신으로 사상 첫 올림픽에 출전을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최초이자 최고이고 싶어한다.

 

이중 우열을 가리자면 대부분 최초에 방점을 찍는다. 최초는 지워지지 않지만 최고는 언제든 뒤집어 질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슴을 걸고 북극점에 가장 먼저 도달한 피어리나 남극점을 처음으로 정복한 아문센처럼 최초라는 이름을 남기고 싶어한다. 또한 최초라는 기록은 최고에 도달할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가 험난한 비탈길을 걷어내고 실크로드<Silk Road>를 반듯하게 펼쳐놓자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과 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동문인 이승배<용인대>가 대한민국 올림픽 복싱 역사에서 사상 최초로 2회 연속 메달을 획득하는 불멸의 금자탑을 쌓으면서 화답을 했다. 박병진은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이수남 관장이 운영하는 대전 한밭체육관 소속이다. 한밭체육관은 WBC 슈퍼밴텀급 챔피언 염동균을 위시해서 김옥태 김수원 오영세 김사왕  강민구 이형신 김사왕 송광식 신우영등 을 베출한 명망높은 체육관이다. 박병진은 81년 고등학교 2학년 10월에 뒤늦게 복싱을 시작 82년 미들급으로 전국신인대회와 김명복 박사 배에서 결승에 올라 황인도(남원농고)에 거푸 패했지만 소중한 은메달을 획득 이듬해 용인대에 진학한다.

제자 강정훈과 김학명 관장

 

 84년 2학년때 부터 대통령배를 석권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특기자 혜택을 받지 못하자 복싱을 잠정 중단한다. 이때 그를 채근<採根>하며 지도편달한 지도자가 당시 용인대 조교인 조종득 선생이다. 결국 졸업반인 86년 박병진은 대학선수권을 포함 4관왕에 오르며 주목을 받으면서 그해 아시안게임 선발전<라이트 헤비급>에서 박순일(한국체대)에 패한 아쉬움을 달랬다. 87년 상무에 입대한 박병진은 88년 서울올림픽 3차 선발전에서  최주성(동아대)에 RSC승을 거두고 우승한후 민병용<경남대>과 88년 6월 최종선발전에서 맞대결 한다. 87년9월 한차례 맞대결 2회 1분35초만에 민병용의 철퇴주먹에 RSC로 패한 전력이 있는 박병진은 85.87년 아시아선수권 2연패와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컵 대회등 라이트 헤비급에서 4관왕을 차지한 민병용과는 전력면 에서 큰 편차가 있었다. 하지만 박병진은 9개월만에 치러진 민병용과 맞대결에서 예상을 뒤엎고 치열한 타격전을 전개 전세를 역전시키며 판정승 올림픽 승선에 성공했다. 성경에 보면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이는 시기와 우연이 모든자 에게 임함이라는 구절처럼 불확실성의 스포츠세계에 대이변을 창출한 주역으로 등장한다.

박병진 KBC 홍수환회장 올림픽 금메달 박시헌 (좌측부터)

 

복서 박병진은 거만하지 않은 당당함과 비굴하지 않은 겸손함으로 무장한 올곧은 복싱인이다.  복싱을 접고 30년 세월동안 그는 충실하게 직장 생할을 하면서 두차녀를 모두 경희대 체육학과를 졸업 시켰는데 첫재 며느리도 동덕여대 체육학과 출신으로 경희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장인어른과 캠퍼스 커플인 아내<용인대 체육학과>와 함께 가족 구성원이 온통 체육학과 출신인 이색 집안이다.  특히 장인 어른인 김병기옹 은 1979년 홍순모에 의해 기록이 깨질때까지 15년간 한국 투원반 기록을 보유했던 국가대표 투원반 선수로 후에 아시아의 마녀 백옥자 를 발굴 지도 육성시킨 지도자로도 명성을 날렸다.

 

 

 박병진과 동감내기인 안산제일 체육관 김학명 관장은 필자가 88체육관에서 사범으로 근무하던 시절 가끔씩 세계타이틀전을 앞둔 문성길의 스파링 파트너로 여러차례 왕림하면서 인연을 맺은 선이 굵은 복싱인이다. 김학명은 당시 강서구에 위치한 태평양체육관<관장 김수철) 소속의 국내 플라이급 1위에 동양4위에 랭크된 유망복서 였는데 문성길의 맹공에도 굴치 않고 과감하게 치고받는 근성을 보여 필자의 이미지에 선명하게 각인된 복서였다.  김학명은 8차례의 원정경기등 27차례의 경기를 치러 반타작에 불과한 승률을 기록했지만. 파이팅 넘치는 경기력으로 갈채를 받았던 복서로  승리에 겸손하며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 하지않는 당당하고 베짱좋은 복서였다. WBA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최희용과 타이틀전을  벌였던 야마구치 게이치(일본)를 비롯해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 가와시마 히로시(일본), WBA 플라이급 챔피언 김용강과 일전을 벌였던 조나단 페날로사 (필리핀) 등 세계적인 복서들과 맞대결을 치뤘고 국내에서는 국가대표 출신의 플라이급 세계랭커 박제석과의 일전도 불사한 싸우는 투사였다

김학명 관장과 올림픽 대표 박병진(좌측부터)

 

 1996년 2월24일 말년의 김학명은 김정태를 상대로 한국 밴텀급 타이틀전을 치러 근소란 차의 판정패 타이틀획득에 실패 복싱을 접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 33살이었다. 어느 순간 보여지는 결과가 실패인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 그 결과로 인해 더 나은 결과로 만들어 질때가 있는 것을 본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은 현역시절 뼈아픈 패배 속에서 얻어낸  자산이라 말하는 김학명 관장을 보면서 승리에서 한줄 을 배울수 있다면 패배에서는 책 한권 분량을 배울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필자가 느낀 생각이다. 1990년부터 안산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선수생활을 병행한 그는 선수생활을 접은후 선수양성에 몰입했는데 체육관 수입으로는 선수들 뒷바라지에 견디기 힘겹자 주점 등을 운영하면서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면서 선수를 육성에 매진 한때 연속 KO퍼레이드를 펼치며 세계타이틀에 도전한 34전 27승<21ko승>1무6패를 기록한 미스테리 한 복서 유명구선수를 비롯 고순익 소정석 강정훈 등 중견복서들을 꾸준히 배출하다 최근에 비밀병기인 <장민혁>이라는 미완의 대기를 선보여 지도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6전 전승(5KO승)을 기록한 올24세의 군필자인 슈퍼 라이트급의 장선수는 근래에 선보인 복서중 WBO 페더급  15위 에 랭크된 강종선과 더불어 유망주 투톱을 형성하고 있는데 대다수 전문가들은 기울어진 한국복싱 이라는 석탑에 받침대 역할을 할 선수로 주목을 하고 있다.

88 서울 올림픽에 출전한 박병진의 경기장면(우측)

 

무엇이든 이루려고 하면 장애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장애물이 있다고 중단할 이유는 없다. 벽에 부딪친다고 돌아서서 포기하지 말라 그것을 어떻게 올라갈 것인지 뚫고 갈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를 알아내면 된다. 좋은 선수와 최고 선수의 차이라면 최고의 선수들은 아무도 안 볼때도 아주 평범하고 지루한 훈련을 지속적으로 반복훈련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웅<英雄>과 성웅<聖雄>차이를 스타<Star>와 슈퍼<Super Star> 스타를 판가름하는 주요한 잣대 역활을 한다. 거듭 말하지만 승자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포기하는자는 절대 승리하지 못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위대한 복서란 장정구, 홍수환의 경우처럼 결정적인 순간 혼자 힘으로 경기의 흐름을 바꿀줄 아는 강한 멘탈로 무장해야한다. 왜냐면 <사각의링> 위에서 변화를 일으킬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안산에 거주하는 김학명 박병진 두 전직복서가 안산복싱 발전을 위해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할 필요성이 절실한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이인동심 기리단금<二人同心 . 其利斷金> 이란 말이있다 두사람이 합심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라도 끊을수 있다는 말이다. 두복서의 건승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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