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기억하다
클래식, 기억하다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문화뉴스 MHN 박한나 기자] 머릿속에 쉴 새 없이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그 멜로디는 순식간에 오선지에 그려진다면 어떤 느낌일까. 왠지 존재하지 않을 법한 신기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삶을 살다간 이가 있다. 겨우 31년의 짧은 인생이었지만, 무려 998개의 작품을 작곡한 '가곡의 왕' 슈베르트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19세기 독일 리트 형식의 창시자인 프란트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는 오스트라아 빈의 교육자인 아버지와 요리사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음악에 재능이 있던 슈베르트에게 5살부터 악기 교육을 시작했던 그의 아버지는 이후 슈베르트에게 공식적인 음악 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슈베르트를 향한 음악적 지원은 어디까지나 취미였다. 

출처 빌헬름 아우구스트 리더
[클래식,기억하다] 겨울나그네 이별에 대한 진한 괴로움, '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기억하다.

슈베르트의 아버지는 슈베르트가 교사가 되길 기대하였고 결국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초등학교 조교사의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10년 전 1804년 '살리에리'의 지도를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은 슈베르트에게 교직 생활인란 따분함 투성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일상을 채운 것은 작곡이었다. 우연히 미사곡을 작곡하게 된 그는 이후 친구들의 권유로 가곡을 쓰게 된다.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마왕', '들장미' 등 유명한 시에 곡조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연상의 연인 '요한 미하엘 포글'과 떠난 북오스트리아 연주 여행에서 호평을 받으며 그의 명성은 차츰 높아지고 그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Schubertiads 라는 모임이 결성하여 활동을 이어나간다.

서민이었던 슈베르트의 모습이 담긴 것 일까? 그의 음악도 상당히 서민적이고, 소위 말하는 평범한 빈 사람들이 가진 '빈 기질'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작곡가이다. 이는 아마도 누구나 슈베르트의 작품을 듣는다면 어렵지 않게 그 선율을 기억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너희들은 그 잘난 신분에 끊임없이 속박되어 있을 뿐이지. 하지만, 난, 자유야!"라는 슈베르트의 말처럼 그의 자유로움은 이미 그가 알고 있는 그의 음악적 장점이었는지도 모른다.

뒤이어 작곡한 가곡 '방랑자(Wanderer)'와 '교향곡 제 5번(Sinfonie no.5 in B-dur, D485)' 등의 작품을 시작으로 '방랑자의 환상곡(Schubert, Wanderer Fantasy in C major D. 760 )',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Die schöne Müllerin)', 현악 4중주' 등의 지금의 슈베르트를 기억하게 하는 대작을 작곡해낸다.

출처 유니버셜뮤직
[클래식,기억하다] 겨울나그네 이별에 대한 진한 괴로움, '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기억하다.

천여 곡에 가까운 그의 작품 중에서 3분의 2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가곡이다. 슈베르트의 별칭이 '가곡의 왕'인데, 무려 633곡에 달하는 가곡을 작곡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가곡은 슈베르트 음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다. 슈베르트 이전에는 모차르트나 베토벤도 오페라에서 독립된 아리아나 가곡을 작곡하긴 했으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이 결합된 시와 노래, 반주가 혼연일체 되는 리트(Lied독일 예술가곡)의 시조가 되었고 이후 슈만, 브람스, 볼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가곡은 모두 슈베르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아름다운 멜로디로 유명한 그의 작품들은 엄격한 형식과 잘 짜여진 구조와는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그의 느슨하고 비구조적인 음악 형식은 청중들에게 쉽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수많은 그의 작품 중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Die Winterreise)'는 그의 인생 말년에 작곡된 곡이다. 

총 24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대표적 연가곡. 즉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완결적 성격을 지닌 가곡 모음이다. 

안녕히 주무세요 (Gute Nacht) / 바람개비 (풍향기, Die Wetterfahne) / 얼어붙은 눈물 (Gefror’ne Tränen) / 얼어붙음 (Erstarrung) / 보리수 (Der Lindenbaum) / 홍수 (Wasserflut) / 냇물 위에서 (Auf dem Flusse) / 회고 (Rückblick) / 도깨비 불 (Irrlicht) / 휴식 (Rast) / 봄날의 꿈 (Frühlingstraum) / 고독 (Einsamkeit) / 우편마차 (Die Post) / 백발 (Der greise Kopf) / 까마귀 (Die Krähe) / 마지막 희망 (Letzte Hoffnung) / 마을에서 (Im Dorfe) / 폭풍의 아침 (Der stürmische Morgen) / 환상 (Täuschung) / 푯말 (Der wegweiser) / 숙소 (Das Wirthaus) / 용기 (Mut!) / 환영의 태양 (Die Nebensonnen) / 거리의 악사 (Der Leiermann)

출처 Pixabay
[클래식,기억하다] 겨울나그네 이별에 대한 진한 괴로움, '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기억하다.

본 작품 이전의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연작 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집 아가씨'는 청춘의 아름다움과 설레임을 담은 작품이었다면, '겨울 나그네'는 침울하고 어두운 비극적인 노래이다. 실제로 '겨울 나그네' 작곡 후 이듬해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는 어두운 정조의 표현으로 자신의 다가올 죽음을 예감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이후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겨울 들판을 방랑하는 길을 떠나는 내용이다. 추운 들판 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마음 속에 자리 잡은 고통과 절망은 어느덧 까마귀, 숙소, 환상, 도깨비불 과 같은 죽음에 대한 상념으로 순식간에 번지게 된다.

이별의 순간부터 절망의 마지막 순간까지 세밀하게 묘사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이별'이라는 흔한 키워드로 시작해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은 절망과 고뇌 그리고 슬픔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출처 Sony Music
[클래식,기억하다] 겨울나그네 이별에 대한 진한 괴로움, '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기억하다.

연가곡 '겨울 나그네'의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 (Der Leiermann)'는 늙은 악사의 손풍금을 돌리는 모습을 마주하며 시작된다. 쓸쓸하고 고독한 늙은 악사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낀 청년은 속절없는 슬픔과 절망을 토해낸다. 이후 청년은 악사에게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며 긴 이야기는 끝난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Die Winterreise)'은 수수할 정도로 단조롭지만 단 한 번의 클라이맥스만으로 시상에 담긴 고통의 범위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이에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리얼리즘과 표현주의의 출발로 평가되기도 한다.  

연가곡 '겨울 나그네'의 원어 'Die Winterreise'를 직역하면 '겨울 여행'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겨울 나그네는 의역된 제목인 것이다. 심장 박동 수처럼 느껴지는 곡의 리듬과 음악의 흐름은 순식간에 겨울에 한복판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것으로 보아 번역가의 '나그네'라는 표현은 작품의 애환과 고독을 제대로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 서늘한 바람이 살결을 맴돌고 있다. 봄이 지나 여름이 오고, 가을과 겨울이 오듯. 뜨겁게 사랑했던 이를 떠나보내는 한 청춘의 서늘하고 차가운 이별을 따라가보는 것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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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기억하다] 겨울나그네 이별에 대한 진한 괴로움, '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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