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환 한남대 역사·철학상담학과 명예교수가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반대되는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나 그들의 작품에 대해 지원 중단과 억압 등 불관용적 태도를 보인 사건이다."

 
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W스테이지에서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의 7섹션 '윤리의 정신적 차원', 6번째 강연 '관용과 신념 - 왜 우리 시대에 관용의 윤리가 요청되는가' 주제 강연이 열렸다. 네이버 문화재단에서 진행 중인 '열린연단' 이번 강연은 김용환 한남대 역사·철학상담학과 명예교수가 진행했다.
 
김용환 교수는 "신념은 공적인 증거에 토대를 둔 진리에 가까운 확신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적인 확신에 따르거나 잘못된 신념이 될 가능성에도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하면서, "신념 간의 충돌은 불관용을 낳고 불관용은 거부와 배제 그리고 더 나가서 폭력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김교수는 이 때문에 "불관용을 줄이고 관용의 정신을 확장하는 일은 열린 사회로 가는 이정표가 될 것이며, 신념들 사이의 충돌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완충 지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강의를 진행했다.
 
김 교수는 '관용'에 대해 "'반대+용납'이라고 할 수 있다"며 "관용은 반드시 반대하는 대상이 있어야만 하고 감정과 태도를 자발적으로 멈추고 인정, 수용, 허용하도록 용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심리적 부담감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굳이 관용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김 교수는 "현대 철학자들이 왜 관용해야 한다고 말하는지를 살펴보면 회의주의, 오류 가능성 그리고 비판 정신 등의 공통된 키워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고 이 세 가지는 사실상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덧붙여 김 교수는 관용해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그는 "불관용과 관용 사이에서 저비용 고효율의 결과를 초래하는 쪽으로 선택하는 '분별력으로부터의 논증', 우리가 관용해야 하는 이유가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 위에 있다는 '합리성으로부터의 논증', 관용이 하나의 덕목인 '도덕성으로부터의 논증'"이 그것이라고 전하며, "관용은 다른 도덕적 가치들과 마찬가지로 실천이 요구되는 덕목으로 그 실천은 높은 수준의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가장 일상적인 삶의 현장, 구체적인 상황에서 선택하고 행동할 것을 요청하는 실천적 가치"라고 주장했다.
 
김용환 교수는 신념과 관용의 충돌 사례로 종교적, 정치적, 사회·문화적, 종족적, 동일성의 관용 등을 이야기했다. 종교적 신념 간의 충돌을 피하고자 김 교수는 "첫째, 정교분리의 원칙에 더 충실할 것을 제안하며, 둘째로 종교 다원주의와 타자 존중의 원리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정신에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종교 간 대화의 지속적인 시도를 제안한다"고 이야기했다.
 
김 교수는 "정치적 신념의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이데올로기 간의 충돌 지대"라며, "먼저 남북통일과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정치적 관용이 무엇보다 먼저 요청되자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분단 이후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몇 걸음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된 이유는 아마도 정략적 차원에서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불관용의 정서를 이용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 소모적인 정치적 갈등을 부추기는 진영 논리의 극복을 위해서도 정치적 관용의 덕목은 요청된다"고 덧붙였다.
 
사회·문화적 신념이 만들어낸 불관용의 사례를 열거한 김 교수는 "학연, 지연, 혈연으로 대표되는 연고주의 폐해는 누구나 알고 있다"며 "학연과 지연은 인맥을 형성하고, 이 인맥이 공적인 조직의 상층부를 지배할 때 개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적 직책에 대한 기회 균등의 원칙을 위배할 위험성이 높아진다. 또한, 지역감정은 정치적 판단을 흐리게 만들 위험이 있다. 연고주의에서 비롯된 불관용의 태도는 우리 사회의 개방성과 합리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극복되어야만 할 장애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적 태도가 개입되어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부장적 문화와 여성 혐오주의에 대해서 김 교수는 "지금은 많이 희석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가부장적 문화 현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며 "남성 우월주의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이는 없을지 몰라도,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 의식과 제도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지배적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가정, 학교, 사회 조직의 기층부에는 가부장적 지배 의식이 조직을 이끌어가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잘못된 가치관과 신념에서 비롯한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 우월주의는 그 상대방 여성에 대해 폄하와 혐오의 감정을 갖도록 유도한다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여성 혐오주의가 여성에 대한 불관용의 직접적 표현이라면 이에 대응하는 남성 혐오주의 또한 상대방 성에 대한 불관용과 불공정한 이해의 산물일 우려를 낳는다. 남성 혐오주의나 여성 혐오주의 모두 상대방 성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양성평등 의식의 약화가 불러온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등장하는 '미러링'(mirroring)은 그 자체로 상대방에 대한 보복 심리가 그 바탕에 놓여 있다. 보복은 불관용의 가장 구체적인 행위의 일종이다. 이러한 보복 심리는 실제로 폭력과 범죄 가능성을 낳는다"고 이야기했다.
 
"상대방 성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심을 갖는 한 여러 형태의 불관용적 현상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며 김 교수는 "성 혐오주의는 성에 대한 잘못된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상대방 성에 대한 혐오가 곧 나의 성에 대한 공격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반성력 회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또 관용 정신이 개인이나 사회의식 안에서 자리 잡는 일이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초·중등학교 교육 과정부터 관용 교육이 시행되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확실하고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 강연 이후 토론이 진행됐다. ⓒ 네이버 문화재단
 
이민자 불관용 정책과 인종 차별에도 김 교수는 이야기를 진행했다. 김 교수는 "인종주의는 인류가 함께 극복해야 할 편견이자 왜곡된 신념 덩어리"라며, "최근 서유럽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불관용적 이민 정책은 이제까지 인류가 진보해왔다고 믿어왔던 관용 정신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역시 우리의 의식 안에 인종 차별적 태도나 감정이 은폐되고 있다. 피부색이나 타 종교 그리고 인종적 편견과 차별 의식이 더 강화될 경우, 하나의 신념으로 굳어질 위험성이 높다. 이러한 오해와 편견을 피하고자 '자기객관화'와 '자기비판'의 노력이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다음 주제로 표현의 자유와 관용을 김 교수는 "최근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를 소재로 여성 대통령을 패러디한 어느 작가의 그림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며 "인격 모욕이라는 입장과 표현의 자유라는 견해 사이에서 충돌이 생겼고, 결국 그 그림은 훼손됐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 그림을 예시로 들었다.
 
이에 김 교수는 "사람마다 그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각기 다를 수 있고, 자신의 미적 기준이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치적 신념에 따라 달리 평가할 수 있다. 얼마든지 인격 모욕이라고 전시를 반대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작품을 훼손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싫어하는 작품을 훼손하는 일은 법률적 문제이지, 관용과 불관용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역시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반대되는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나 그들의 작품에 대해 지원 중단과 억압 등 불관용적 태도를 보인 사건"이라며, "그 반대로 자신의 견해에 우호적인 사람들이나 단체에 편향적인 지원을 하는 것 역시 차별행위다. 군사정부 시절 한때 좌익 사상을 표현하는 출판물이나 공연물에 대해 재갈을 물렸던 행위가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불관용적 태도를 보인 것이었다면, 작금의 행태는 은밀하고도 교묘한 방식으로 불관용의 대상들을 선정해왔고 표현의 자유에 한계선을 그어왔다"고 말했다.
 
   
▲ '더러운 잠' 작품 훼손에 대한 예술인 기자회견이 지난달 열렸다. ⓒ 문화뉴스 DB
 
"표현의 자유는 기본권"이라고 말한 김 교수는 "그런 점에서 인터넷 실명제에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표현의 자유를 방패 삼아 타인의 의견이나 생각에 대해 합리적 비판을 넘어서는 악의적인 대응은 '악행 금지의 원칙'이라는 자유주의 도덕의 기본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최소 도덕이라 할 수 있는 '악행 금지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요청은 이 역시 불관용의 기회를 줄이고 조금 더 너그러운 사회로 가기 위한 최소한의 요청이기 때문이다"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실명제 도입은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고려할 만한 대안이 못 된다"고 주장한 김 교수는 "오로지 네티즌들의 자정 노력과 성숙한 행위만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자정 노력에 도움이 되거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는 도덕적 태도 중 하나가 관용의 정신을 강화하는 일이다. 관용은 차이를 용납하게 하며, 차이의 인정은 곧 관용을 실천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김 교수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혐오주의와 불관용을 완화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공감력 강화 교육, 유가의 충서 교육, 토론문화의 일상화를 통해 관용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윤리와 인간의 삶' 7섹션 '윤리의 정신적 차원'은 11일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세계화, 다문화 시대의 윤리' 강연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강연 청중으로 참여를 원하는 분은 '네이버 열린연단 홈페이지'에서 직접 신청할 수 있으며, 강연 영상과 강연 원고 전문도 '네이버 열린연단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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