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복싱
현 대전체육회 전문 차장 김왕순

 

[조영섭의 복싱스토리] 최백호의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로 시작되는 구슬프고 애절한 내마음 갈곳을 잃어 란 곡이 전파를 타고 서재에 앉아 집필을 준비 중인 필자의 귓전을 때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오는 가을엔 이곡만큼 심금을 울리는 대표적인 명곡도 없을 것 같다. 이노래는 1970년 가을 20살의 최백호가 어머니를 암으로 임종을 맞이할 때 사흘간을 식음을 전폐하며 울면서 애절한 심정으로 써 놓았던 글이 후에 가수로 데뷔할 때 어머니를 그리며 부른 사모곡으로 변신 77년 공전의 대히트를 치며 탄생한다. 지난 가을 어느날 필자는 충남 예산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10개를 획득한 박봉관 관장을 취재 기사를 올렸다. 당시 필자는 박봉관이 걷어올린 금메달이 소년체전 최다 금메달 인줄 알았다.

 

하지만 뛰는놈 위에 나는놈 있다는 속담처럼 대전 동산중고 에서 선수들을 지도할 때 담당 복싱강사 인 김왕순 현 대전광역시 체육회 차장이 얼마후 소년체전 금메달 12개를 획득한 주인공으로 밝혀져 지난달 대전 체육회 한정훈 회장 취재 때 김왕순 대전체육회 차장이 동행 상봉할수 있었다. 필자도 용산공고 와 서울체고에서 복싱강사로 11년간 활동했지만 성적으로 말하는 이 자리는 피를 말리는 직업이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지만 코치는 짤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복싱계 속설(俗說)처럼 성적을 내지 못하면 곧바로 물러나야 하는 고독한 자리다.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건지기 위해서는 약 250톤의 광석이 채굴 되어야 하듯이 금메달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금메달이 탄생한 이면에는 지도자들의 수많은 희생과 고통이 수반되어야 탄생하는 결과물이다. 오늘 스포츠산책 주인공은 이런 치열한 서바이벌Survival 경쟁에서 살아남은 현 대전체육회 김왕순 차장이다.

한정훈 대전체고 코치와 김왕순(우측)

 

1969년 6월14일 충남 대전 출생의 김왕순은 1982년 전 WBC 슈퍼 밴텀급 챔피언 염동균이 운영하는 복싱 체육관에 입관 박만순 사범의 지도로 복싱을 수학한다. 박사범은 프로복싱 2체급 세계챔피언 이열우를 비롯 장수곤 이경중을 발탁 육성시킨 트레이너다. 86년 한국체대를 졸업하고 새로 모교인 대전체고 복싱강사로 부임한 한정훈 선생의 대전체고는 이듬해 전국최강의 복싱팀으로 급부상 한다. 남기춘(경희대) 김창복(서원대) 이명석(용인대) 최재기(한국체대) 김승섭 (한국체대). 최인수(한국체대) .전용배(경희대).등이 맹활약 하며 2년전 정해명 한광형 최현실 정경준 최임곤 (이상 경희대).조동범 나학균 전병성(이상 한체대)김석현 김범수(동국대)등을 조련하면서 서울체고에 왕조신화를 구축했던 이흥수 감독과 바통을 교환하며 새로운 왕조건설을 한정훈의 대전체고가 이룩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김왕순의 활약은 미비했다.누가 말했던가 늦게 피는꽃이 더욱더 아름답다고.

 

김왕순은 졸업반인 88년에 비로소 대통령배와 김명복배등 각종 선수권 LW급 결승에서 김재경(동국대) .허준욱(경희대). 허기주(한국체대).등에게 접전 끝에 판정패 했지만 정상급 실력을 인정 받는다. 김왕순을 꺽은 이들이 금메달을 위시해 동국대 경희대 한국체대로 차례로 진학할 때 은메달 3개를 건진 김왕순은 89년 용인대에 진학한다. 대학 2학년때 연맹회장배 W급에서 양만호(호남대)를 꺽고 금메달을 획득한 김왕순은 그리고 90년12월에 개최된 제2회 마닐라 시장배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출격 결승에서 몽골의 에바리아 하산에 초접전 끝에 판정패 웰터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는데 하산은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최정상급 복서였다. 주목을 받은 김왕순은 이후 국가대표 윤용찬(한국체대)에게 대표선발전 역전패를 당한후 운명처럼 복싱을 접는다. 91년 2월 용인대 를 졸업한후 은사인 한정훈 선생의 오작교 역할로 93년 7월 충남체고 복싱 강사로 부임하면서 그는 지도자로서 화려한 인생 2회전이 펼쳐진다. 첫해부터 미들급의 김연집(원광대)의 전국체전 금메달을 시발점으로 LF급 김태규(대전대) L급 박권영(경희대).FE박기표(원광대). LM최양선(용인대) .M김유신(용인대). LH 김용찬(대전대) .등이 전방위.全方位 에서 전전후로 맹활약 충남체고에 재직한 3년동안 전국체전에서만 금메달 8개 은메달 7개 동메달 5개를 수확하며 충남체고 전성기를 구가했고 그중심 엔 복싱계 명장 김왕순이 자리잡고 있었다. 

 

제2회 마닐라 국제대회 국가대표로 출전한 김왕순(우측)

 

특히 95년 7월에 제45회 전국 학생선수권 대회 라이트급에서 우승한 충남체고 박권영은 송유남 (당곡고)를 9ㅡ1 판정으로 꺽고 우승하는등 W급의 한상일 LH급의 김용찬등 3체급을 석권했고 김왕순의 충남체고는 (종합우승)과 함께 최우수 지도자상등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 김왕순이 충남체고에서 배출한 김태규와 백종섭은 홍성중학교 때부터 직접지도를 해 충남체고를 거쳐 김왕순의 원초적 스승인 한정훈 감독이 사령탑으로 있던 .대전대학.에 입학 복서로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김왕순이 이들에게 기승전결 (起承轉結) 중 기승(起承)을 담당했다.면 그의 은사인 한정훈 회장은 전결(轉結)을 담당 앞에서 밀어주고 뒤에서 끌면서 연합전선을 형성 이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데 선봉 역할을 담당했다.

김왕순과 아내

 

그래서 그럴까 지금도 김왕순은 스승의 생일날이면 잊지않고 챙겨드리는 효심 깊은 제자다. 한편 강철체력으로 무장한 백종섭은 98년 학생선수권 페더급 결승에서 당시 필자가 소속된 서울체고의 황이태를 12ㅡ7로 꺽고 우승을 차지한후 대전대학에 진학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 은메달에 이어 2003년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 모두8강에 진입한 국가대표 복서였고. 공수주 3박자를 겸비한 F급의 김태규는 94년 충남체고 1학년 때부터 김왕순의 지도로 코크급 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유망주로 97년 대전대학에 진학 그해 세계선수권 대회에 F급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된 후 97년 제19회 아시아선수권대회 동메달에 이어 98년엔 전국체전 결승에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리스트인 조석환(충북)을 14ㅡ13으로 잡으며 금메달을 획득 한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이후 우즈베키스탄에서 개최된 제21회 아시아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99년 킹스컵 준우승자인 알렌레로를 7ㅡ5로 꺽고 우승을 차지한 간판 복서 였던 그는 올림픽 본선 1회전에서 비록 쿠바선수에 선전 끝에 패했지만 수준높은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복서였다. 백종섭 김태규 두복서는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매월당 성삼문. 등 한국을 대표하는 위인이 탄생한 충남 홍성 출신답게 화끈한 전투력을 보인 불굴의 투사로 기억된다. 

 

김왕순은 이후 충남 한밭중과 과수원 중학팀 을 담당 쉼없이 선수육성에 탁월한 지도력을 보이자 97년에 대전 동산중 에서 러브콜을 보내와 복싱팀 을 창단 담담교사인 오현일 선생과 조화를 이뤄 이재성 김혁 정수상 송대현 정상영 김정태 최선민 최선민등 을 조련 무려 12회에 걸쳐 알토란같은 소년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며 기염을 토한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동산고에서 98년 복싱부를 전격창단 김왕순 강사에게 힘을 실어주자 용기백배한 그는 2000년 연맹회장배 에서 중등부와 고등부에서 각각 기념비적인 종합우승을 차지 화답을 하며 2005년 복싱강사를 접을 때 까지 학원스포츠에서 중심축으로 활동한다. 이 공로 로 그는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장과 대한체육 회장 표창장을 각각 받았다.

용인대 재학시절의 김왕순

 

김왕순은 용인대 시절 1년후배인 이승배가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용인대 기숙사에 왔을 때 그때 그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그날 새벽 담력훈련을 한다며 인근에 공동묘지로 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고 이는 후에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남과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이승배는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과 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은과동을 합작했고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과 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에서 금과은 을 획득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복서다.

 

2012년 런던올림픽 복싱 감독 이승배와 한순철

 

또 하나 김왕순은 대전체고 수업중 트레이닝 원리에 스포츠용어에 불수의적 동작.이란 말에 주목을 하고 한동작을 35.000번 이상 한동작을 반복하여 연습하면 그동작이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는 이단어의 원리를 집중분석 연구 체득하여 선수들에게 주입시켜 학원스포츠 세계에서 무려 8차례나 종합우승이란 금자탑을 들어 올리는 원초적 역할을 했다. 35,000번 이상 한동작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려면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열정을 가지고 몰입 쏟아 부어야만 .1만시간의 법칙.처럼 반응이 생기는 것이다. 펌프는 펌프질 한다.고 물이 나오지 않는다.한 바가지 물을 부어야 비로소 물이 나온다. 복싱 지도자도 선수들에게 열정이라는 마중물을 부어야 그들에게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강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법이다.

 

미켈란젤로는 "내가 거장巨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안다면 사람들은 나를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오랫동안 지독하게 연습하고 끝까지 버티는 인내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유추해보면 성공은 평범한 것을 쉼없이 반복 맡은 분야에 숙련공이 되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생 자체를 정의하면 한마디로 도박이다. 합리적이든 무모하든 도전하는 자가 정상에 오르는법이다. 한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 현재 대전체육회 전문차장.으로 근무하는 그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란다.   

주요기사
관련기사

 
Tag
#복싱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