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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 KBC 한국권투 위원회 회장과 원동희 서부권투회 회장(우측)

[조영섭의 복싱스토리] 가을이면 낙엽이 떠오르듯 가을하면 단박에 생각나는 시가 바로  김현승 님 의 '가을의 기도'란 시다. 이시를 읽노라면 가을날이 절로 고즈넉해진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학창시절 암송했던 시 구절을 음미해 보며 오늘의 스포츠산책을 시작해본다. 지난주 필자는 광명 역 인근에서 호천 생갈비집을 운영하는 전직 복서출신인 김성용 대표가 운영하는 가계에서 서부회 복싱모임의 회장 직을 수행하고 있는 원동희 (대호체), 84년 MBC 신인왕 출신의 임종대 (원진체) 등과 함께 담화를 나눴다.

호천생갈비 대표 김성용 원동희 회장 신인왕출신 임종대 (좌측부터)

1957년 경북 경주태생의 원동희 회장은 74년부터 4년간 전국체전과 대통령배 대회에 수도서울의 간판대표로 활약한 페더급의 중견복서 였다. 특히 76년 전국선수권대회 페더급 준결승에서 국가대표 황정한 과 치열한 타격전을 펼쳐 비록 근소한 차이로 패했지만, 그 경기를 관전한 56년 멜버른 올림픽 밴텀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송순천 교수에 의해 77년 용인 대 에 특기생으로 발탁되어 입학을한 정상급 복서였다. 원동희가 속한 대호체육관은 63년 프로에 데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현 관장이 운영하면서 동양의 진주 이승훈과 웰터급 강타자 정영수 등이 간판복서로 활동을 한 체육관이었다. 통산 131전 75승(26KO승) 40패 16무를 기록한 국내 최다전적 보유자인 김현은 정확히 100전을 싸운후 101전 째에 동양타이틀전에서 5회KO 승을 거두고 챔피언에 올랐던 전설적인 복서로  허버트 강, 이원석과 '트라이 앵글'을 구축 서로 물고 물리는 라이벌전으로 유명했던 불굴의 파이터였다.

전국체전 선발전 페더급 우승자 대호체육관 원동희

 

주목할 만 한 점은 131전중 무려 28회가 미국, 파나마, 괌 ,나고야, 동경, 괌,등 해외원정 경기를 펼치며 전천후로 싸웠던 복서 김현은 은퇴 후 ,'대호체육관'에서 원동희를 지도하며 허버트강의 파괴력과 이원석의 정밀기계 같은 정교한 타법을 공유한 전도유망 '前途有望' 한 복서라 칭했지만 경기중 치명적인 손 부상으로 대학 입학 후 복싱을 접은 불운의 복서였다. 원동희는  자신의 스승인 김현의 철갑을 두른 듯한 견고한 커버링을 염동균 챔프가 벤치마킹해 장족의 발전을 이루는데 견인차 역활을 했다고 말했는데 큰 선수들의 공통점은 상대방의 좋은 점을 스펀치 처럼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프로야구계도 '벤치마킹'은 마찬 가지다. 현존하는 일본프로야구(NPB) 최고의 유격수는 세이부 라이온즈의 겐다 소스케이다. 이 선수는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불규칙바운드에 대한 변화를 최소화하여 안정감을 높힌 수비력을 선보였는데 바로 최근에는 이 겐다 소스케를 벤치마킹 한 한화 이글스의 하주석이 이선수의 영상을 많이 참고한다고 한다. 종목을 초월해 모방은 새로운 역사의 창조이자 발전의 지름길이다.

전국선수권대회 페더급 동메달  원동희(우측)

 

원동희는 현역시절 동신체육관에 원정 염동균 홍수환과 원정 스파링을 가졌는데 염동균과 스파링 할 때 묵직한 레프트훅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염동균은 김태식 처럼 스파링을 할때도 물불 안 가리고 타격전을 불사하는 거친 파이터로, 홍수환은 침착하게 자신의 평소기술을 테스트 하면서 응용하는 부드러운 스타일의 복서라고 소회를 밝혔다. 원동희와 대화를 나누면서 문득 홍수환 염동균 그들의 지난 복서생활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이들은 공통점이 너무 많다. 50년생 동갑에, 군 생활도 수경사에서 함께 했고, 동신체육관에서 같은 매니져 소속으로 한솥밥을 먹으며 동행을 한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세계챔피언을 역임'歷任'하면서 80년 12월19일 같이 경기를 치루고 동반은퇴를 한 친구사이다. 이들은 아마츄어 시절 홍수환이 2전2패를 기록한후 69년 5월10일 프로 데뷔전을 치른데 반해 염동균은 한밭체육관 소속으로 호남선수권 결승에서 이거성(이리 남성고)에게 전국체전 결승에서 최재호(남산공전)에게, 그리고 전국선수권 결승에서 백종우(원주대) 에게 각각 패했지만 값진 은메달 3개를 획득 당시 충북대 에서 특기생으로 스카웃 요청이 올 정도로 수준급 복서였다. 홍수환은 71년 8월 문정호 에 5회 KO승을 거두고 국내챔피언에 73년 11월 살로마에 판정승 동양챔피언에 오른지 불과 8개월도 되지 않은 74년 7월4일  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세계정상에 오른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듯이 챔피언 테일러 측에서 펀치력과 체력이 2% 부족한 동급2위인 만만한 홍수환을 도전자로 낙점 러브콜을 보냈는데 결국 패착이 되고 말았다.

 

염동균과 홍수환의 맞대결

 

반면 염동균은 70년 3월7일 프로에 데뷔 1년7개월만인 71년 10월20일 홍성종 을 잡고 국내 jr 페더급 정상에 오른다. 염동균은 18전 째에 괌에 원정 조 살로마에게 첫 패배를 당했지만 이후 기록적인 33승2무'17KO승'을 거두며 덤으로 한국타이틀 14차 방어에 성공한다. 하지만 염동균의 체급인 jr 페더급에 동양챔피언인 장규철이 71년 11월20일 동양 챔피언에 등극한 이후 6차 방어에 성공할 때 까지 염동균의 도전을 외면 74년 2월3일 김진균을 상대로 국내타이틀 최다방어 기록인 14차 방어전에 성공할 때 까지 퇴로가 차단되어 좁은 울타리를 벗어날 길이 없었다. 결국 74년 3월17일 염동균 은 장규철의 7차 방어전 상대로 낙점되어 12회 판정승을 거두고 동양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비로소 활로가 열려 76년 8월1일 WBC 슈퍼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리야스코 에게 도전한다. 당시 53전 46승'21KO승' 6무1패를 기록한 염동균은 36전23승 '12KO승' 4무9패를 기록한 파나마의 리야스코 에게 전라운드 에 걸쳐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외교력의 부재로 판정패 숱한 파열음을 토해냈다.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는 것 만큼 허망한일은 없다.

우여곡절 끝에 염동균은 114일 만에 리야스코를 8회 KO로 잡고 정상에 오른 로얄 고바야시 와 78년 11월23일 맞대결 정상에 올랐다. 고바야시와 싸울 때는 홈링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심판이 두명이 포진된 경기 일정으로 의욕을 반감된 염동균이 선전분투 하면서 걷어 올린 타이틀이었기에 기쁨은 배가 되었다. 이 타이틀은 호세 세르반테스를 상대로 1차방어에 성공했지만 2차 방어전 에선 고메즈 에게 12회 KO패 염동균은 무관으로 전락한다.

원동희 회장 염동균챔프 신정훈 삼성체육관 관장(좌측부터)

77년 11월 카라스키야 를 꺽고 두체급 타이틀을 획득한 홍수환의 역시 시대가 만들어낸 난세의 영웅이었다. 지략과 강한 멘탈이 응집되어 얻어낸 타이틀 역시 가뭄에 단비 같은 값진 승리였다. 당시 카라스키야가  한결같이 무명의 ,'로컬복서' 복서들로 채워진 상대들에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삽시간에 11연속 KO 퍼레이드를 펼친 '거친 원석' 이라면 산전수전 공중전 지하전은 물론 화생방전까지 치룬 47전의 홍수환은 잘 다듬어진 보석이었다. 반짝거린다고 전부 금이 아니라는 말처럼 언론에서 지옥에서 온 악마란 수식어를 붙이며 '도금'을 해 빛이난 카라스키야 보다는 견고한 커버링에 송곳 같은 잽을 보유한 후에 홍수환의 타이틀을 탈취해간 리카르로, 카르도나, 염동균의 1차방어상대인 호세 세르반테스가 강자였다. 특히 호세 세르반테스는 자모라를 KO시킨 호루헤 루한을 판정으로,  밴텀급의 전설 루벤 올리 바레스도 6회 KO로 잡는 등,  각종맹수가 우글거리는 남미의 정글에서 염동균의 타이틀 도전자로 내정된 18전13승 '11KO승' 3무2패를 기록한 강자였다. 여담이지만 이런 세르반테스 를 타이틀전에서 3회에 요절낸 윌프레도,고메즈의 복싱은  화려하다 못해 찬란한 별중에 별이란 생각이 든다.  

홍수환은 경기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명석한 두뇌회전과 경기를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멘탈이 강한 복서였다. 다시 한번 홍수환 카라스키야 전을 <복기> 해보자 홍수환의 2회 첫 다운은 속칭 반짝 다운  하지만 두 번째 레프트훅에 의한 다운은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다운이었다.10점 만점제 채점에서는 10ㅡ7 까지가 마지노선 이다. 다운을 두 차례 당하건 열 차례 당하든 10ㅡ7 이하로는 점수가 내려가지 않는다. 이점을 염두에 둔 홍수환의 3. 4번째 다운을 유심히 살펴보면  데미지를 크게 입지 않은 상태에서 주저앉아 휴식을 취한다. 특히 4번째 다운은 <헐리우드 액션> 이 리얼하게 묻어났다. 홍수환은 링 바닥이 미끄러워서 쓰러졌다고 말했지만 일단 우박처럼 쏟아지는 소낙비는 피해가고 보자는 현명한 생각이었다 . 인상적인 장면은 4번째 다운을 당한 홍수환은 남은 40초 동안 샌드백이 되어 일방적으로 난타당하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5번째 다운을 당했을 때는 주심이 카운트 없이 경기를 중단 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에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초인적인 인내력을 보인것이다.  

3회전 공이 울리자 내뻗은 홍수환의 회심의 일타에 카라스키야 가 주춤거리며 코너에 몰리자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홍수환은 길게 레프트를 뻗은 체 2.3초간 숨고르기를 하는 여유를 부린다  긴박한 순간에 좀처럼 쉽게 나오기 힘든 명장면이다. 과거 레너드가 헌즈 를 KO시킬 때 헌즈가 비틀거리자 양손을 치켜세우며 퍼포먼스를 연출하며 역시 2.3초간 공격을 멈추는 장면이 연상되면서 과연 홍수환 이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신념이나 가치관은 오랜 경험에 의해서 생긴다. 경험이 길러준 날선 감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축척된 경험이 전하는 예측이 섬뜩할 정도로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홍수환 염동균은 한국복싱 백년사에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복서다,  이들은  언제부턴가  서먹서먹한 삶을 살고 있다.원동희 는 두 챔프의 화합이 한국복싱이 부활 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갈등과 다툼은 어쩌면 세상사의 필연일수 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이한 이런 난국 일수록  생산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복싱인 들의 결집을 보여 줄때가 작금의 우리네 복싱 계 현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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