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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신동길

[조영섭의 복싱스토리] 지난 10월1일 연휴 기간 중 필자는 자택에서 프로 야구경기를 시청하다 롯데의 선발투수 노경은이 LG전에서 잠실구장 11연패의 사슬을 끊고 극적인 승리를 쟁취하는 감격스런 장면을 지켜본 후 문득 재수시절 포함 고교시절 4년 동안 11차례의 각종 전국대회에 출전 단하나의 동메달도 획득하지 못한 체 좌절의 늪에서 헤매다 마지막 대회이자 12번째 출전한 전국 우승권대회에 출전 극적인 우승과 함께 MVP에 선정 되어 이를 발판으로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발탁 복싱에 꽃을 피운 입지전적 인 복서 신동길의 영상이 떠올랐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격언을 실증해 보인 신동길은 71년 5월29일 매헌 윤봉길 추사 김정희 선생의 탄생지인 충남예산 출신으로. 김민기(한국체대). 이승배 (용인대). 염종길(서울시청).과 아마 국가대표 71년생 돼지띠 4인방으로 불려지는 대표적인 복서다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대표 차관철 신동길 염종길(좌측부터)

충남 예산은 한국복싱의 아버지라 불리는 성의경 선생 탄생지 답게 97년 헝가리 세계선수권 동메달 리스트인 신은철(대전대 ㅡ상무). 87년 한미 국가대항전과 88년 서울컵 에 라이트급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한 백승영 (용인대 ㅡ상무). 배경석 (경희대). 박군순(한국체대). 동양챔피언을 지낸 김현 신춘교 문태진 박봉관 윤석현을 비롯 중견복서 이자 한양대 공대 출신의 이색적인 이력을 보유한 황해남 (중산체). 곰보 심. 유화룡 .차상준 .이인경. 최응산 .최태영. 등 걸출한 복서들이 대거 탄생한 복싱의 고장이다. 1987년 예산 대흥고 에 입학한 신동길은 그해 6월 복싱에 입문 1년 유급하여 90년 졸업 할 때까지 3년6개월 동안 모두 11차례 전국대회에 출전했지만 모두 예선 탈락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평범한 복서였고 해마다 치러지는 전국체전 선발전 에서도 극강의 대천고의 위세에 밀려 단한차례도 출전하지 못했다. 특히 졸업반인 89년 전국 회장배 대회 플라이급 8강전에서도 당시 필자가 지휘봉을 잡은 용산공고 백달근 에게 석연찮게 판정패 당했는데 75년생 백달근이 71년생 신동길 을 잡았으니 중학생이 대학생을 잡은 어처구니 없는 형국(形局) 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신동길은 이때 러시아 의 푸시킨의 삶이란 시(詩) 내용처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않고 서러운 날 참고 견디고 인내하면 머지않아 즐거운 날이 찿아 오리라 굳게 믿고 1년을 유급하면서 중단 없는 전진을 지속적으로 펼쳤다는 점이다. 그러던 어느날 신동길 은 중대한 결심을 한다. 정통파 에서 사우스포 스타일로 폼을 수정 기존의 인파이터에서 들어오는 상대에게 역으로 카운터를 때리는 전혀 다른 유형의 기교파 복서로 전환 승부구를 던진다. 문득 골을 허용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골키퍼가 있다면 그에게는 어떤 미래도 없다는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히는 레프 야신(러시아)의 명언처럼 신동길은 사각의 정글에서 살아 남기위해 카멜레온 처럼 변신을 한 것이다. 드디어 90년 9월 벌어진 마지막 대회인 전국 우승권대회에 출전한 신동길 은 이 대회에서 새로 개발한 신무기인 카운터 펀치가 불을 품으면서 4연속 KO 퍼레이드를 펼치며 우승과 함께 최우수복서로 선정 11전12기의 신화를 창조하며 막차로 경희대에 입학 피날레를 장식 한다. 준비에 실패한 사람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란 말처럼 역설적으로 철저히 준비한 덕분에 비로소 자신만의 고유한 복싱 퍼즐을 완성 그의 복싱 인생에 장밋빛 서광이 비추기 시작한 것이다.

신동길 관장 부부

 

사실 신동길은 고교 4년동안 덕산면에 위치한 체육관에서 운동 할때 학교에서 버스를 2번 갈아타면서 비포장도로를 왕복 4시간에 걸쳐 왕림하면서 혼자 체육관 문을 열고 스파링 파트너도 없이 복싱을 수련하면서 경기를 치뤘던 고독한 복서였지만 할수 없다는 '핑계'를 찿는 대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그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가 다닌 예산 대흥고 는 백제 숨결을 안고 있는 최후의 저항지로 유명한 임존성이 뒷산에 병풍처럼 펼쳐진 곳에 위치한 학교다. 흑치상치 장군이 이곳 임존성에서 백제유민을 이끌고 마치 신동길이 목표한 대학진학을 위해 유급을 하면서까지 3년6개월에 걸쳐 사각의 링에서 포기하지 않고 결사항전 펼쳤듯이 흑치상치 장군도 이곳 임존성에서 3년6개월에 걸친 백제의 재건을 위해 마지막 불꽃 전투를 펼친 역사의 현장이었다, 91년 경희대에 진학한 신동길은 2학년 때 까지는 부상과 분위기 적응 실패로 김명복 배 준결승과 전국체전 결승에서 임덕민 (서원대) 에게 패 하는등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전열을 추스린 3학년 때부터 정통복싱과 사우스포 스타일을 유효 적절 하게 혼합한 양동작전 (陽動作戰) 을 펼쳐 김명복 배 를 비롯해 학생선수권 전국체전 전국 선수권등 4관왕과 함께 그랜드슬램을 달성 한다 그의 불타는 열정이 정상권 까지 끌어올리는 엔진 역활을 독톡히 하면서 평범한 잡견 (雜犬)에서 진돗개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서산 월드복싱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신동길 관장

탄력을 받은 신동길은 졸업반인 94년도에도 2년 연속 4관왕을 달성하며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플라이급 국가대표 에 발탁된다. 그 기간동안 신동길은 최요삼(용산공고)과 1승1패를 기록한 국가대표 이근식(한국체대)에 3연승(2KO승)을 비롯해 아시아 선수권 2연패를 달성한 전인덕(원주시청), 93년 이태리 국제 복싱대회 플라이급 금메달 배기웅(한국체대), 93년 제1회 동아시안 게임 은메달 남기춘(경희대) ,93 동아시안 게임 라이트 플라이급 은메달 이광호(원광대),93년 서울컵 은메달 리스트 이해준 (한국체대).프로복싱 플라이급 챔피언이자 21승(14KO승)3패를 기록한 장영순(천안체),등 간판급 복서들이 신동길 의 현란한 테크닉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면서 그는 플라이급의 '절대지존' 으로 군림한다. 특히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 플라이급 16강전에서 배기웅 을 11ㅡ10으로 결승에서 전인덕 을 13ㅡ6 판정으로 잡고 대표팀에 합류한 경기는 압권이었다.

당시 대표팀 명단은 다음과 같다. LF급 차관철(상무). F급 신동길(경희대). B급 염종길(서울시청). Fe강성오(동아대). L급 김승택(한국체대). LW급 홍성식 (동양제과). W급 이훈(부산 체육회).LM 윤용찬(한국체대). M급 이승배(용인 군청).LH급 고영삼(광주 동구청).H급 채성배(광주 동구청).SH급 안정현(장흥군청).등 12체급이다 .본선에 진출한 신동길은 8강에서 일본 선수와 맞대결 지독한 홈 타운에 의한 텃세에 고배를 마시고 메달권 에서 탈락 한다.당시 김성은 감독의 지시에 의해 링에서 내려오지 않고 격렬하게 항의를 해 보았지만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수 없었다. 신동길의 복싱 역사를 집필하면서 느끼는건 성공은 복합적이라 무엇하나가 중요하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덧 붙이면 작은 성공은 실력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큰 성공은 운이 매우 중요 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프로경기를 치루는 신동길 관장

그간 충남출신 대표 선수들은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한 이해정 (한국체대)을 제외하면 메이져 대회에서 별다른 성적이 없었다. 아시안 게임에서 엄복삼(양지)과 오인석(한국체대)이 세계선수권 대회에선 오영세(육군)가 올림픽엔 박병진(상무)과 김재경(동국대)이 각각 출전했지만 단1개의 메달도 따지 못하는 징크스에 시달려 왔는데 신동길 역시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에 실패 안타까움이 더했다. 여담 이지만 오랜 징크스의 벽을 깬 복서가 97년 대한복싱 협회 최우수복서 신은철 (대전대 ㅡ상무)이다. 한편 경희대를 졸업하고 청양군청에 입단 96년,97년 전국체전 2연패를 달성하며 탄탄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신동길은 75전 60승(32KO.RSC승)15패 의 아마전적을 뒤로하면서 2000년 서른이 넘어 프로에 진출 신도체육관 박동안 회장의 따스한 보살핌과 배려로 플라이급과 슈퍼 플라이급 국내2체급을 석권하며 녹록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으나 불의의 사고로 동양타이틀 매취에서 정상등극에 실패하자 복싱을 접고 청양군청 감독으로 재직하다 현재는 서산시 동문동 에서 신동길 월드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며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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