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깨를 볶으며 고소하게 37년 – 경기 성남 기름집
구수하고 소박한 묵처럼 40년 – 대전광역시 유성구 묵집
50년째 매일 만드는 100% 대창 피순대 – 전북 익산 순대집
3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 KBS1TV 방송

[문화뉴스 MHN 박혜빈 기자] 손님도 가게도 대를 잇다. 긴 세월 한결같은 뚝심 있는 맛.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정을 만나다.

 

매일 아침 깨를 볶으며 고소하게 37년 – 경기 성남 기름집

'한국인의 밥상' 매일 아침 깨를 볶으며 고소하게 37년 – 경기 성남 기름집 
'한국인의 밥상' 매일 아침 깨를 볶으며 고소하게 37년 – 경기 성남 기름집 
'한국인의 밥상' 매일 아침 깨를 볶으며 고소하게 37년 – 경기 성남 기름집 
'한국인의 밥상' 매일 아침 깨를 볶으며 고소하게 37년 – 경기 성남 기름집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에는 ‘기름골목’이 있다. 10여 미터가 넘는 골목 양쪽에 온통 기름집만 들어선 곳. 어느 집에 들어가도 10년이 아니라 20년을 훌쩍 넘는 노포들 뿐. 하지만 그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오래된 곳이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눈에 ‘하트’를 띄우고 두 살 배기 손자에게 병에 기름 넣는 법을 가르치는 할아버지 장찬규(56) 씨와 그 곁을 지키며 만면에 미소를 띈 할머니 최연화(56)씨를 만나게 된다.

남편 장찬규 씨와는 중고등학교 동창으로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였지만, 그 친구와 결혼을 하고 가업을 이어 기름집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연화 씨. 이제는 장성해 가정을 꾸린 아들도 함께하며 ‘3대 기름집’이 돼서 든든하단다. 요즘은 기계가 다 해주는 세상이라 편할 것 같아보여도 참깨 건 들깨 건 겉으로 봐선 제대로 볶아졌는지 구분이 힘든데, 그 절묘한 타이밍을 맞추려면 대를 이어온 눈썰미가 필요하다고.

참기름 들기름은 물론 동백, 고추씨, 홍화씨, 살구씨, 피마자기름까지 갖은 기름에, 미숫가루, 콩, 도토리, 메밀, 검정콩, 율무, 귀리, 감자, 고춧가루까지. 웬만한 가루는 죄다 만든다. 하루를 가득 채운 주문으로 바쁜 가게가 잠시 한산해질 무렵이면 그 때가 식사시간. 손님들이 앉던 조그마한 평상은 부엌이자 식탁으로 변신한다. 항상 달궈져있는 깨 볶는 솥에 들기름 바른 김을 몇 번 스치기만 하면 김구이가 되고. 직접 빻은 메밀가루는 생들기름으로 묵은지메밀전을 부친다. 장찬규 씨가 제일 좋아하는 고추지두부범벅엔 그가 어릴적 고추 농사를 지으신 부모님의 추억이 담겨있다. 4대가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최연화 씨 가족의 고소한 밥상을 만나본다.

 

구수하고 소박한 묵처럼 40년 – 대전광역시 유성구 묵집

'한국인의 밥상' 구수하고 소박한 묵처럼 40년 – 대전광역시 유성구 묵집
'한국인의 밥상' 구수하고 소박한 묵처럼 40년 – 대전광역시 유성구 묵집
'한국인의 밥상' 구수하고 소박한 묵처럼 40년 – 대전광역시 유성구 묵집
'한국인의 밥상' 구수하고 소박한 묵처럼 40년 – 대전광역시 유성구 묵집

대전군 구즉면은 직할시로 승격되고 광역시로 변경 되면서 지금의 대전시 유성구 봉산동이 됐다. 40여 년 전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먹고 살기 힘들어 집집마다 궁여지책으로 만들기 시작한 도토리묵이 인근 관평동에도 퍼져나가 구즉 묵마을이 형성됐다는데. 

우창희(58)씨의 어머니 전순자(79) 씨도 그 시절 가마솥에 묵을 쑤어 팔며 가족을 먹여 살렸단다. 어머니 손의 굳은살이 하도 단단해 종종 칼로 베어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창희 씨. 지금의 가게 자리는 온가족이 살아온 터전으로 아버지와 함께 흙벽돌을 직접 찍어내며 지은 집이란다. 특히 사랑채는 세살문까지 그대로 남아있고. 개조해서 가게로 쓰는 곳도 ‘계산하는 곳은 소 키우던 자리’, ‘손님용 별실은 벼농사 짓고 농사한 것 쌓아두던 방’ 하며 생생히 기억한다. 요즘에도 옛 생각에 아들 우시욱(26) 씨와 함께 집 뒷산을 올라 산짐승 먹을 것만 남겨두고 도토리를 줍곤 한다.

보통 도토리묵사발 하면 차가운 육수를 생각하지만 구즉 묵마을에서는 한여름에도 따뜻한 육수를 부어 완성한다. 그래야 묵의 식감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단다. 그런가하면 도토리묵은 채 썰어 볕에 말리면 오래 보관할 수 있어 두고두고 먹던 반찬거리였다는데. 우창희 씨의 동생 우숙희(53) 씨가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만든 묵말랭이잡채와 도토리묵 가루로 부친 묵전까지. 창희 씨 가족의 묵 밥상을 맛본다. 

 

50년째 매일 만드는 100% 대창 피순대 – 전북 익산 순대집

'한국인의 밥상' 50년째 매일 만드는 100% 대창 피순대 – 전북 익산 순대집
'한국인의 밥상' 50년째 매일 만드는 100% 대창 피순대 – 전북 익산 순대집
'한국인의 밥상' 50년째 매일 만드는 100% 대창 피순대 – 전북 익산 순대집
'한국인의 밥상' 50년째 매일 만드는 100% 대창 피순대 – 전북 익산 순대집

‘순대’ 하면 흔히 먹는 일명 ‘비닐 순대’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본래 순대는 돼지 창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창으로 순대를 만드는 일은 공장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재료를 조심히 다뤄도 구멍이 나기 십상이고 그때마다 실로 묶어야하기 때문이다. 

얼마 뒤면 80세가 되는 한시동 씨는 요즘도 매일 새벽 돼지대창과 선지로 순대를 만든다. 그러나 절대 많이 만들지 않고 그날 팔 것만 만든다. 하루 지난 순대는 맛이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란다. 순대에 관해서라면 한 치의 양보가 없는 한시동 씨의 순대 인생은 50년 전 좌판으로 시작했다. 매부가 도축장에서 일했는데 돼지창자가 그냥 버려진다는 얘기를 듣고 얻어와 길에서 순대를 만들어 판 게 시작이었다. 지금은 간호사 출신 며느리와 아들이 대를 이은 지 7년이 됐다는데. 아들 한승엽(51) 씨는 아버지의 순대를 이어가면서도 손님들의 변해가는 입맛을 생각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지금의 순대를 만들어냈다. 변해가는 과정에서 당면을 넣은 찰순대를 만들기도 했지만 다시 당면을 뺀 피순대에 견과류와 홍합가루 등을 더했다고. 우직하고 정성스럽게 순대를 만들어가는 한시동 씨와 아버지의 맛을 발전시키는 아들 한승엽 씨의 따뜻한 피순대 밥상을 맛본다.

 

 

매일 아침 깨를 볶으며 고소하게 37년 – 경기 성남 기름집
구수하고 소박한 묵처럼 40년 – 대전광역시 유성구 묵집
50년째 매일 만드는 100% 대창 피순대 – 전북 익산 순대집
3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 KBS1TV 방송

'한국인의 밥상' 손님도 가게도 대를 잇는 오랜 세월 한결같은 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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