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정예원 기자]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 우리는 평생 이에 대해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새 학기 첫날 어김없이 하던 자기소개를 기억하는가.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할 때도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 고군분투 끝에 얻은 명함 한 장이 과연 나를 얼마나 대변하는 걸까. 책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에세이는 출간 4년이 지난 지금도 베스트셀러 30위 권에 안착해있다. 나로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 현대인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비대면으로 전환하고, 대신 집에 머물려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제공했다. 다음 소개하는 영화 세 편의 주인공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엿보면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와일드 (2014)>

- 엄마가 자랑스러워하던 딸로 돌아갈 거야. 아름다움의 길로 들어설 거야. 어쩌다 이런 쓰레기가 됐나 몰라.

- 사랑할 준비가 돼 있다면 나보다 강한 사람은 없어.

- 뭘 선택하든 자책하진 말아요.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거니까.

- 네게 가르칠 게 딱 하나 있다면 네 최고의 모습을 찾으라는 거야. 그 모습을 찾으면 어떻게든 지켜내고.

사진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와일드'는 할리우드 스타 리즈 위더스푼과 로라 던이 주연을 맡은 영화다. 동명의 원작 수필은 영화 주인공과 같은 이름을 가진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나 다채로운 서사와는 거리가 멀다. 홀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주인공의 여정을 그린 영화다. 중간중간 주인공의 회상 장면과 현재가 교차한다. 순례길을 걸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주인공의 생각이 화면에 그대로 구현되는 격이다. 가정 폭력의 상처, 엄마에 대한 애증과 죽음, 부정을 저질렀던 기억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와일드'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강해진다는 것이 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홀로 걷는 순례길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지만, 이는 셰릴에게 자정작용이 된다. 셰릴이 흙탕물을 받아 물 거르는 기계에 걸러 마시는데 이 모습과 꼭 닮았다. 셰릴은 순례길을 떠나기 전 이혼하면서 '스트레이드'라는 새로운 성을 본인에게 준다. 길을 잃었다는 의미다. 인생에서 길을 잃은 것만 같은 자기의 상태를 반영해서 성을 정했다. 길을 잃었다는 걸 비로소 인정하고 나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으로 무너졌던 셰릴이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셰릴은 4년 넘게 슬픔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렸다. 삶을 지탱하던 무언가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이렇듯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셰릴이 여기서 빠져나오는 길은 결국 엄마와 함께 했던 기억에 있었다. 엄마가 보여준 삶의 태도, 엄마가 세릴을 사랑했던 방식이 셰릴을 붙잡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과 스스로 강해지는 시간이 주는 힘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다음은 셰릴의 엄마가 셰릴에게 생전 자주 하던 말이다. "일출과 일몰은 매일 있으니까 네가 맘만 먹으면 볼 수 있어. 너도 아름다움의 길에 들어설 수 있어." 이 대사는 관객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아름다움의 길에 들어서는 나만의 여정을 용기 내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해낼 수 있는 일일지 모른다. 이 영화가 당신의 여정을 응원해 줄 것이다. 

 

 

<델마와 루이스 (1991)>

- 우리 절대 잡히지 말자! 가자! 밟아!

- 우리는 탈선은 조금 했지만 진정한 자신을 되찾았어.

- 그저 눈만 뜨고 있을 뿐... 한 번도 깨어 있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

사진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사진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델마와 루이스'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으로 인해서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다. 보수적인 남편을 둔 델마와 웨이트리스 루이스는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에 나선다. 휴게소에서 만난 강간하려는 한 남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되고, 당초 짧게 계획했던 여행은 전에 없던 도주가 된다. 

'델마와 루이스' 영화는 몰라도 하늘색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영화 장면을 한 번쯤 본 사람은 꽤 많을 것이다. 이 장면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다. 억압당해 왔던 가족과 사회로부터 벗어나 본인도 몰랐던 자기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해 가는 여정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동시에 진정한 '나'로 남기 위해서는 편견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살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함축한다.

30년 전 작품이지만 촌스럽기보다는 오히려 세련된 느낌이다. 하늘색 올드카에서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긴다. 미국 자동차 여행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영화 전반부를 지나 사용하는 카우보이모자, 투박한 선글라스, 총은 델마와 루이스가 얼마나 자유로웠는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델마와 루이스'는 자유로움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그녀들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 특히 델마의 변화는 주목할만하다. 델마 캐릭터의 영화 전후반부 차이는 같은 캐릭터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초반부의 델마는 특유의 천진난만함을 가지고 있지만, 의존적이고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후반부에서는 델마와 루이스의 여정을 주도하는 건 어느새 델마가 되었다. 이 둘은 이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을 하고, 자유로움의 즐거운 환호성을 지른다. 

'델마와 루이스'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탄탄한 플롯과 여성 연대 서사는 관객을 울리기도 웃기기도 한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서로를 탓하고 분열할 만한 상황이 연이어 생기는데도 델마와 루이스는 끝까지 서로를 믿고 연대한다는 점이다.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마음을 뜨겁게 하는 여성들의 연대 서사에 목마르다면 추천하는 영화다. 내가 내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또는 억눌린 마음을 진단하기 어려울 때 힌트가 되어줄 수 있는 영화다.

 

 

<로렌스 애니웨이 (2012)>

- 반항하는 거야?
아뇨. 이건 혁명이에요.

- 하늘 아래 한계는 없는 거야.

- It's Laurence, anyways. 

사진 = (주)엣나인필름
사진 = (주)엣나인필름

몬트리올에서 소설을 쓰는 청년 로렌스와 그의 정열적인 피앙세 프레드는 미래를 약속한 사이.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한 어느 날, 로렌스는 사랑하는 프레드에게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고백한다. 남은 일생을 여자로 살고 싶다고… 절망의 끝에서도 차마 ‘이 사랑’을 놓지 못하는 두 사람. 이들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성별이 되고 싶다고 고백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 텐가. 프레드는 어느 날 여자가 되고 싶다는 로렌스의 고백을 마주한다. 로렌스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직업이 있음에도 본인의 정체성을 위해,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 각오를 한다. 로렌스는 누구보다 용기 있고 단단한 사람이다. 

로렌스와 프레드는 서로 아주 사랑했고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프레드가 로렌스를 위해 가발을 선물한 장면에서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들 사랑은 세상의 시선과 시련에 부딪히고 평범한 이별을 하고 훗날 다시 만나기도 한다. 배우들은 복잡한 사랑 관계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화려한 영상미와 색채감이 아름다운 영화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연출력이 천재적으로 빛난다. 이에 16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지만 지루한 부분이 많지는 않다. 감독의 세련된 감각이 잘 드러난다. 색감, OST, 소재, 대사 등 전반적 요소가 감각적으로 어울려져 만들어진 작품이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로렌스가 여장을 하고 학교에 출근한 모습이다. 로렌스가 치마와 힐을 신은 본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교단에 섰을 때 정적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 복도를 지나는 로렌스를 훑어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연출적으로 잘 구현했다. 관객들이 마치 로렌스가 되어 지나가면서 눈총을 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성 소수자들이 견뎌야 하는 사회의 일부 따가운 시선을 간접경험  하게 한다.

영화는 그 제목처럼 "로렌스는 로렌스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로렌스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외모를 가졌는지에 상관없이 로렌스는 그 자체로 로렌스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진정한 내 모습에 다가가기 위해 용기를 내도록 토닥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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