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아띠에터 칼럼그룹]

"로데오 경기를 무심하게 보던 남자는 이제 로데오의 소 위에 자리를 잡았다. 단지 로데오를 돈벌이로만 여기며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던 그는 고삐를 꽉 쥐고 소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분명 그는 떨어질 것이다. 얼마나 버티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얼마나 버티는가에 대한 걱정도 떨어짐에 대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가 살기 위해 그와 소가 벌여야 하는 격렬한 몸부림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해랑'이 본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삶에 대한 몸부림, 그 몸부림이 낳은 신념

사람들이 죽음을 수용하는 모습은 다섯 단계로 나뉜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우드르프는 정확히 이 단계를 겪어가며 자신의 병을, 그리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우드루프는 그냥 수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의도치 않게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또 많은 이들을 살리려고 노력하게 된다. 자신의 삶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정말 의도치 않게 신념을 가지게 된다. 그는 사실 누가 봐도 하루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었다. 그저 하루의 쾌락을 위해 누군가를 속이고, 내일을 준비하며 살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재미있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 코앞으로 닥친 죽음은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특별함이 자고 일어나자 한 번에 짠하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삶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다 보니 여태껏 자신이 비하하고, 모욕했던 사람들 역시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하는 약품으로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장사를 한다. 판매가 아니다. 장사다. 생명을 미끼로 약품을 파니 장사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동성애자들에게 약을 판다. 팔면서도 그들을 경멸한다. 같은 병에 걸렸지만, 같은 약을 먹지만, 그들과 똑같이 살고자 하지만, 그는 그들과 자신을 명확하게 구분 지으려고 노력한다. 그가 판매하는 약품은 미국 내에서 허용되지 않은 약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약품들을 끊임없이 밀매한다. 그 약품이 자신을 위한 그리고 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진짜 약품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우드루프 자신도 돈을 목적으로 시작한 장사이지만, 어쩌면 진짜 도움을 주고 싶었던 일말의 양심이 우드루프의 마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명을 담보로 하는 장사에서 우드루프보다도 미국과 병원이 더 나쁜 장사 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드루프는 점차 자신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목숨이 차이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혹은 내가 무시하는 사람들이라도 그들에게는 각자의 삶의 의미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도 죽음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하루하루를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을 깨닫는 데까지 우드루프는 너무나 많은 길을 돌아왔다.

그래서 그는 국가와 싸우기 시작한다. 약은 모자라고 약을 원하는 사람은 많고, 그 사람들은 돈이 없고, 우드루프도 돈이 점점 없어진다. 그런데 그가 간단하게 말한다. 차를 팔으라고. 자신의 부귀영화가 먼저였던 사람이 자신의 차를 팔란다. 그 돈으로 약을 사고, 사람들을 도우란다. 그리고 급기야 법정싸움을 시작한다. 법이라고는 알지도 못했던 사람이, 정의감 따위는 알지 못했던 사람이, 생명의 소중함을 몰랐던 사람이 타인의 생명을 위해 타인의 권리를 위해 정의를 위해 법정에 선다. 자신의 재산을 모두 써가며, 자신의 열정을 모두 쏟아가며 법정에 선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생명을 연장해가며 달력에 행복한 하루 또 행복한 하루를 체크하면서 이미 모두의 행복한 하루를 그렸을지도 모른다. 자신만큼 힘든 사람들에게도 행복한 하루가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법정에서 그는 비록 패배했지만, 그는 인생의 승자가 되었다. 실패하고 병드는 순간 그의 주변에는 그를 비난하고 배신하는 사람들뿐이었지만, 그가 법정에서 돌아온 순간에는 그의 승패와는 상관없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삶에 대한 올바른 의지가 생겼다.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인생의 승자 아닐까. 

신념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신념으로 인해 때로는 목숨을 내 놓는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드루프를 보면 그 신념이 반드시 아주 어릴 때부터 형성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속물 같은 행동에서 발현된 일이지만, 궁극적으로 그 일은 그에게 신념을 만들어주었고, 그 신념이 그를 행동하게 만들었다. 시작은 속물근성이었으나 그 끝은 생명의 고귀함을 깨닫게 하는 신념이었다.

물론 이 신념에 대해서도 단순하게 형성되었다고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생명이라는 살고자 하는 끈질긴 의지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신념도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살고자 한다는 그 의지가 얼마나 강렬한가를 모두들 어렴풋이 알 것이다. 그로부터 나오는 삶에의 몸부림이 있었기 때문에 강렬한 신념이 만들어 진 것 아닐까?

처음 로데오는 그에게 그저 한탕을 위한 오락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로데오 자체에도 흥미가 없다. 그저 시간을 죽이기 위한 한탕을 위한 오락 중 하나일 뿐, 그는 로데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짓을 한다. 그리고 주변인들을 속여먹기 위해 로데오를 이용한다. 그는 로데오에 참가하는 친구에게 이야기한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딱 8초만 참으라고. 그러면 이긴다고, 그 모든 돈을 딸 수 있다고. 그러나 그는 내기에서 이기지 못하고, 도망을 친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우드루프는 직접 소에 올라탄다. 로데오에 돈을 걸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속일 목적도 아니었고, 또 시간을 죽이기 위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은 진지했고, 로데오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눈빛이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삶에 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열정적으로 임하게 되었고, 그러한 경험 하나하나가 만들어가는 삶의 행복을 깨닫게 되었다. 삶에의 의지, 삶에의 몸부림이 그에게 전해준 커다란 교훈이자 행복이며, 그가 우리에게 전해준 메시지이다.

   
 

소 위에 올라탄 우드루프는 자신이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듯 했다. 아니 어쩌면 더욱 마음에 새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그 순간을 행복하게 즐기기 위해 눈빛을 빛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소의 등을 두드리고, 그와 소가 경기장으로 나가는 그 순간부터 나는 초를 세기 시작했다.

처음 그가 말했던 그 8초를….

['원'이 본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나를 향한 진심, 세상을 향한 진심이 되다

여자, 돈, 일, 도박. 어떤 것도 주인공 우드루프에게는 삶의 진지함을 줄 수 있는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걸고 진지하게 마주할 것을 찾지 못했고,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소란스럽고 거칠었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너무나 외로운, 고독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흘러가는 대로 방치한다. 타인이 보기에는 의미 없는 이런 삶에 드디어 변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이러한 삶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라는 신호가 아닌, 이제 더이상 진행하지 말라는 '멈춤신호'였다. 

평범한 다른 사람들처럼 그는 이를 믿지 않다가, 절망한다. 그리고는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구질구질했던 자신의 삶을 연장시키고자 노력한다. 뭔가 이렇게 처절한 그의 몸부림 속에서 우리도, 그리고 아마 주인공 우드루프도 그동안과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강렬하게 원하고 있고, 그걸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살아 숨 쉬고 있음이 너무나 당연했고, 그로 인해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본인 스스로에 대한 진심이 그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그는 결국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에는 의학적으로 예상되었던 생존기간을 뛰어넘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아무 의미 없었던, 그냥 하루하루 지나가도 아깝지 않았던 하루가 이제는 '행복한 하루, 그리고 또 행복한 하루'로 변화하며 자신이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그가 하루하루에 이렇게 체크하며 말하는 장면은 정말 짧게 지나가지만 그 장면을 보는 필자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행복하게 만들어 낸 우드루프에 대한 응원이기도 했지만, 월요일이 오면 금요일이 오기만을 바라는, 정말 소중했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며 도피처로 삼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버린 나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이렇게 자신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우드루프는 정말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약장사를 시작하고, 비싸면서도 부작용이 많은 치료제를 쓰고 있던 많은 에이즈환자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면서 돈을 벌게 된다. 분명 그 장사는 새로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 약을 본인이 이용하면서 생명을 연장시키고자하는 불순한 의도가 다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시작이 자신의 진정한 삶을 갖고자 하는 진심이었고, 그가 서로 다름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서부터 그의 약장사는 세상을 향한 ‘진심’이 된다.

   
 

결과적으로는 그는 이루고자 했던 꿈을 완전히 실현하지는 못했고, '기적적으로' 시한부 기간보다는 오래 살았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진심은 세상에 기적과 희망을 선사했고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켜갔다. 그가 법원 소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곳에는 그와 함께 기적을 현실화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에게 진심어린 따뜻한 박수를 쳐주었다.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지만, 그 장면은 너무나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다. 아직은 먼 얘기일 수도 있지만 친구와 그런 얘기를 하곤 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후, 훗날 은퇴할 때 받고 싶은 것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의례적으로 받는 순금메달도 아닌, 진심 가득한 박수와 "잘했다"라는 한마디라고. 우드루프는 이미 나의 꿈을 이룬 진짜 영웅이었고 나의 꿈이었다.

시작이라는 단어는 설렘이 가득하기도 하지만 두려움과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아직은 분명 무섭고 어색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두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드루프가 그랬던 것처럼 나에 대한 진심이 상대를 향한 진심이 되고,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며 상대 한명 한명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행동하자. 나의 진심이 행동으로 실현될 때 세상은 좀 더 서로에게 따뜻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글] 아띠에떠 해랑 artietor@mhns.co.kr

팝 칼럼 팀블로그 [제로]의 필자. 서울대에서 소비자정보유통을 연구하고 현재 '운동을 좋아하는 연기자 지망생의 여의도 입성기'를 새로이 쓰고 있다. 언제 또 다른 종목으로 여의도에 입성하게 될는지. 여전히 나의 미래가 궁금한 인간. 나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여자, 말 하는대로 이루어지는 여자'.

[글] 아띠에떠 원 artietor@mhns.co.kr

팝 칼럼 팀블로그 [제로]의 필자. 을지로 Oneway 티켓으로 인해 조금은 어렵고 즐거운 서울살이 경험 중. 일코 해제 후 실천하는 청춘이 되려고 노력 중인 24시간이 모자라는 여자.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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