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노을의 제54회 정기공연 및 노을소극장 폐관공연 '하녀들'

[박정기의 공연산책] 지난 26일 오후 노을소극장에서 극단 노을의 제54회 정기공연 및 노을소극장 폐관공연 장 주네 작 오세곤 번역 연출의 '하녀들'을 관람했다.

오세곤 교수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했고 ‘장 주네의 희곡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부회장, 한국연극교육학회 회장, 한국 대학 연극학과 교수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 회장,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부회장, 극단 노을 예술감독,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 아산문화재단 이사, 충청남도 문화예술진흥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배우의 화술』등이 있다. 우리읍내(쏜톤 와일더 작), 도둑일기(장 주네 작), 보이첵(게오르그 뷔히너 작) 그 외의 다수 작품을 번역하고 연출했다. 순천향대 공연영상미디어학부 명예교수다.

'하녀들'은 프랑스에서 실제로 일어난 파팽 자매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1933년 2월,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 도시 르망에서 파팽 자매는 주인 모녀의 눈알을 뽑은 뒤 난도질해서 죽였다. 이들 자매가 주인 모녀의 시체를 극히 잔인하게 처리했다는 점, 살해를 끝내고 난 후 범행을 은폐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순순히 경찰에 잡혔다는 점, 두 자매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점 때문에 이 살인사건은 더욱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주네는 실제 사건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하녀들'을 썼다고 밝히고 있는데, '하녀들'은 두 하녀가 지배계급에 해당되는 마담이라는 존재에 대해 품은 모순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하녀가 마담에 대한 미움과 질시를 드러내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하녀들'의 전반부는 끌레르와 쏠랑주의 마담과 하녀 역할극으로 구성된다. 마담이 없는 사이, 동생인 끌레르는 마담을 연기하고, 언니인 쏠랑주는 자신의 원래 모습 그대로 하녀 역을 연기한다. 마담이 된 끌레르는 언니 쏠랑주를 마음껏 무시하며 오만하게 군다. “너한테선 짐승의 냄새가 난다”, “하녀가 존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내 덕분이야”, “난 아름다워” 등의 대사를 외치는 끌레르를 통해, 끌레르가 마담의 오만함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언니 쏠랑주는 마담 역의 끌레르를 향해 “전 마담을 증오해요”, “언제까지나 행복할 줄 아세요? 천당까지라도 좇아가서 복수할 거예요” 등의 대사를 말하며, 마담에 대한 증오를 확연히 드러낸다. 이 연극은 하녀 역의 쏠랑주가 마담 역의 끌레르의 목을 조르기 직전에서 끝난다. 이처럼 하녀들은 현실에선 실행할 수 없는 불가능한 욕망을 연극을 통해 재현하는 것이다.

연극의 후반부에는 실제로 마담이 등장한다. 하녀들이 경찰에 거짓 신고를 한 까닭에, 마담의 남편은 감옥에 있으며 마담은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있다. 하녀들은 괴로워하는 마담에게 수면제를 넣은 차를 먹여 죽이려고 하며, 마담은 하녀들의 반발을 조금씩 눈치 채기 시작한다. 하녀와 마담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 절정에 달했을 때, 끌레르는 마담에게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늘 마담이 되고 싶어했던 끌레르가 마담의 권위에 짓눌리고 만 것이다.

이들은 마담이 떠난 후 다시 마담과 하녀 역할극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담 역의 끌레르가 스스로 수면제가 든 차를 마시고 자살한다. 그러나 끌레르와 쏠랑주에게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마담을 살해하는 의식이었다. 자살을 통해 마담을 죽이고 싶었던 욕망이 실현된 셈이다.

끌레르: 언니, 우리 두 사람은 영원한 한 쌍, 죄인과 성인의 한 쌍이 되는 거야. 우린 구원받을 거야. 언니, 틀림없이 구원받을 거야.

끌레르와 쏠랑주는 공범이라는 점에서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로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이들은 하녀라는 자신의 위치를 견디기 어렵다. 서로가 일종의 거울처럼 보이기에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미워한다. 이들의 애증 어린 관계와 역할극은 소외의 밑바닥으로 내려가서 구원을 향해 올라가기를 원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한편 '하녀들'의 공연에 장 주네는 하녀들 역할을 남자 배우들이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기도 했다. 아마도 동성애자였던 장 주네가 남성 동성애자들의 소외를, 소외된 여성들의 모습에 투영시키고자 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대는 마담의 집이다. 배경 앞에 처있는 투명한 막을 통해 이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이 조명효과에 따라 보이고, 그 앞 하수 쪽 가리개를 통해 중앙으로 등장한다. 상수 쪽은 내실로 들어가는 통로다. 벽과 천정에는 수많은 색상의 철고리로 된 줄을 바닥으로 늘어뜨려 꽃이나 전화수화기, 접시가 놓인 쟁반, 자물쇠 등을 달아놓고 마치 당집 같은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상수 쪽에는 마담의 여러 가지 색상의 의상을 걸어놓고, 바닥에는 여러 종류의 하이힐을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하녀 자매는 검은색 의상에 백색 에이프런과 백색 머리띠를 두르고, 마담의 의상을 극 전개에 따라 입고 마담 노릇을 한다. 전화벨, 초인종 같은 음향효과가 극 분위기를 상승시키기도 하고, 음악효과로 극 분위기를 이끌기도 한다.

박연하가 쏠랑주, 임하나가 끌레르, 운미경이 마담으로 출연해 혼신의 열정으로 성격창출은 물론 호연과 열연으로 연극을 이끌어 가고 갈채를 받는다. 마담 역의 윤미경은 희극적 연기로 주목을 받는다.

조연출 김여정, 무대 최병훈, 조명디자인 오충수, 제작PD 박새롬 등 스텝진의 기량도 드러나, 극단 노을의 제54회 정기공연 및 노을소극장 폐관공연 장 주네 작 오세곤 번역 연출의 '하녀들'을 연출가와 출연진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관객의 기억에 길이 남을 한편의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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