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SK케미칼·애경산업 임직원 무죄
살균제 성분 옥시와 달라 "유해성 입증 불가"
사건 피해자 '울분'... 누리꾼 "정의는 죽었다"

[MHN 문화뉴스 경어진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된 SK케미칼·애경산업 전직 임원 전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12일 오후 2시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열었다. 이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이 폐 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한 사회적 참사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심정이 안타깝고 착잡하기 그지 없다”면서도 “그러나 재판부가 2년여 동안 심리한 결과 유죄가 선고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성분 가습기 살균제와는 위해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및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1심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진은 왼쪽부터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CMIT·MIT 성분은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 등 제조사 관계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가습기 살균제 원료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나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과 다른 성분이다. 앞서 PHMG 성분을 사용한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등의 회사는 2016년 기소돼 2018년 유죄가 확정됐다.

이와 관련해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확인하고자 동물 실험과 역학 조사 등이 이뤄졌으나 폐 질환과 천식에 영향을 줬다고 결론을 내린 보고서는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여러 기관에서 수행한 흡입 독성 실험에서 CMIT·MIT가 이 사건의 폐질환, 천식을 악화하거나 폐까지 도달한 사실을 입증한 실험은 없다”면서 “역학조사, 빅데이터 연구 등을 흡입 독성 실험 결과와 같이 살펴봐도 인과관계를 입증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 전문가는 '사람에게 이미 폐질환 등이 발생했다는 전제를 하고 CMIT·MIT 성분의 영향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동물 실험을 했지만, 뒷받침할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고 인정했다"고 부연했다.

이 같은 결론은 환경부가 CMIT·MIT 함유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피해를 인정해온 것과는 상반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1심 선고 결과를 듣고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관계자들이 전부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울분을 토했다. 이들은 법원 출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법부의 기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 조모 씨는 "해당 제품을 쓰고 사망에 이르거나 지금까지 투병 중인 우리 피해자들은 과연 무슨 제품을 어떻게 썼다는 것이냐"며 "옳지 않은 것들을 감추기 위해 그들이 한 증거인멸 행위는 무엇이었냐. 어떻게 해서든 그들이 벌을 받도록 다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동엽 참여연대 간사는 이날 재판부가 CMIT·MIT 성분과 폐질환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CMIT·MIT의 유해성은 이미 학계에 보고돼있고, 근거도 충분히 있다"며 "어떻게 죄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제조 및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
[사진=사회적참사 특조위 제공]

한편, SK케미칼은 흡입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인 CMIT·MIT으로 가습기 살균제 제품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했다. 애경산업은 가습기메이트를 판매했다.

홍 전 대표는 2002~2011년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낸 혐의(업무상 과칠치사상)로 2019년 5월 구속 기소됐다. 안 전 대표 또한 같은 혐의로 2019년 6월 불구속 기소됐다.

지금까지 최소 사망자 12명, 부상자 87명을 낸 가습기메이트는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낸 살균제다. 하지만 CMIT·MIT의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제품을 제조·판매한 SK케미칼, 애경산업 관계자들은 앞선 2016년 1차 가습기살균제 수사에서 무혐의 처리된 바 있다.

2차 수사는 2018년 11월 피해자들이 SK케미칼·애경산업 관계자들을 다시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앞선 2018년 1월, 옥시싹싹 가습기당번를 판매한 신현우 전 옥시레빗벤키져 대표이사는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확정받았다.

지난해 4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특검 촉구 긴급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9년 7월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는 8개월에 걸친 가습기 살균제 재수사 끝에 홍 전 대표, 안 전 대표 등 총 34명을 기소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가습기 살균제 관련 증거를 인멸한 혐의 등으로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 박철 SK케미칼 부사장 등을 재판에 넘겼다.

애경산업으로부터 수백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고 가습기 살균제 관련 환경부 자료를 애경에 제공한 혐의(수뢰후부정처사)를 받는 환경부 서기관 최모 씨, 가습기 살균제 사건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 애경 총수 일가가 소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브로커에게 뒷돈을 준 혐의(알선수재)를 받는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 양모 씨 등도 재판에 넘겨졌다.

일부 사건은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는 지난해 4월 징역 2년6개월을, 전 국회의원 보좌관 양씨는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2심에서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환경부 서기관 최씨는 상고심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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