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이 우선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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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N 문화뉴스 황보라 기자] 20년간 바빠회사에서 근무한 나근속 씨는 그간의 노고를 인정받아 7500만원의 연봉계약(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나근속 씨는 바빠회사로부터 월 기본급으로 625만원을 수령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바빠회사는 소속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 취업규칙인 임금피크제 운용세칙을 제정했다. 정년이 2년 미만 남아 있는 근로자에게는 연봉의 60%, 정년이 1년 미만 남아 있는 근로자에게는 연봉의 40%를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취업규칙이 변경되자 바빠회사는 나근속 씨의 정년이 2년 미만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월 기본급을 375만원 (625만원 × 0.6)으로 지급했다. 이 같은 임금내역을 통지받은 나근속 씨는 임금피크제의 적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사측에 전달하였으나, 바빠회사는 집단적 동의를 받아 유효하게 변경된 취업규칙에 따라 임금을 지급했으므로 문제될 것 없다는 답변만 통보했다.

결국 정년퇴직일까지 취업규칙에 정해진대로 삭감된 임금을 지급받은 나근속 씨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바빠회사를 상대로 소장을 내는데… 과연 나근속 씨는 근로계약시 정해진 액수대로 임금을 받아낼 수 있을까?

대법원은 과반수의 근로자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 취업규칙이 변경됐더라도 기존의 근로계약은 유효하게 존속하고, 취업규칙에 따라 기존의 근로계약에서 정한 연봉액을 삭감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8다200709 판결 참조).

근로기준법 제97조는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관하여는 무효로 한다. 이 경우 무효로 된 부분은 취업규칙에 정한 기준에 따른다.”라고 정하고 있다. 위 규정은 개별적 노사 간의 합의라는 형식을 빌려 근로자로 하여금 취업규칙이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감수하게 하는 것을 막아 종속적 지위에 있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다.

이러한 규정의 내용과 입법 취지를 고려해 근로기준법 제97조를 반대해석하면,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개별 근로계약 부분은 유효하고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우선하여 적용된다.

한편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사용자는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관하여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위 규정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고 할 경우 근로자 보호 차원에서 집단적 동의를 받을 것을 요건으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근로기준법 제4조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위 규정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조건을 결정해서는 안되고, 근로조건은 근로관계 당사자 사이에서 자유로운 합의에 따라 정해져야 하는 사항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주된 취지이다.

이러한 각 규정의 내용과 그 취지를 고려하면, 근로기준법 제94조가 정하는 '집단적 동의'는 취업규칙의 유효한 변경을 위한 요건에 불과할 뿐이고, 근로기준법 제4조가 정하는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은 여전히 지켜져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은 집단적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의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 근로계약의 내용은 유효하게 존속하고, 변경된 취업규칙의 기준에 의하여 유리한 근로계약의 내용을 변경할 수 없으며,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가 없는 한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계약의 내용이 우선하여 적용되어야 한다.

대법원은 이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나근속 씨의 사례를 살펴봤을 때, 취업규칙에 따라 근로계약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나근속 씨는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조건의 근로계약에서 정한 연봉액을 지급받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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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법률] 불리하게 바뀐 취업규칙… 근로계약에 우선할 수 있을까?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이 우선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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