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극장 폐관을 앞둔 연극인들의 심경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연희단거리패가 결국 게릴라극장의 폐관 결정을 내렸다.

2006년 5월 혜화동 작은 골목에서 개관한 게릴라극장이 오는 30일 개막작 '황혼'을 마지막 공연으로 올리고 문을 닫는다. 게릴라극장은 연희단거리패의 소극장 레퍼토리 뿐 아니라, 외부 극단들의 참신하고 실험적 작품들의 탄생지이기도 했던 극장이다.

연희단거리패도 '블랙리스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관료 대신 수익의 절반만 받는 방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극단들에게 파격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게릴라극장은 각종 공공 지원 사업에서 제외되면서 지난해 연말 이미 매물로 나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올 초 후배 연극인들과 함께 극장의 경영난을 극복하고자 했으며, 1년간 어떻게든 운영을 지속하겠다고 했던 연희단거리패는 도저히 그 계획을 실행치 못할 지경에 다다랐다.

 

   
게릴라극장 ⓒ 연희단거리패

대신 연희단거리패의 공연은 30스튜디오서 계속 만날 수 있다. 30스튜디오는 게릴라극장 경영으로 생긴 빚을 극복하기 위해, 또한 극단이 지향했던 '지원 없이도 독립적 운영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공연장의 기능 뿐 아니라 공연 연습, 단원들의 숙소, 포럼 및 세미나 개최 공간, 작은 카페와 서점 등 다양한 역할이 가능한 공간이다.

연희단거리패 측은 폐관 소식을 전하며 "안타까움과 동시에 저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송구스런 마음이 크다"며 "10년 넘게 매일 불을 밝히던 게릴라극장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이곳을 거쳐 간 연극인들과 관객들의 열정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고 전했다.

 

   
연출가 이해성 ⓒ 문화뉴스 DB

이를 바라본 연극인들의 심정도 남달랐다.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은 "찾아갈 때마다 외로울 때마다 선뜻 공연을 올릴 판을 만들어준 극장, 나의 영원한 스승 같은 극장"으로 게릴라극장을 기억했다.

부새롬 연출가는 게릴라극장을 "창작자들의 사정을 잘 이해해줬던 곳"이라며 "다른 소극장과 달리 무대 공간의 너비나 높이가 잘 확보된 아주 좋은 극장"으로 기억했다. 폐관 소식을 듣고서는 "비상업연극을 공연하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대학로에서 버텨온,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극단이 운영하고 있는 극장이 사라진다는 게 많이 안타깝다. 그리고 게릴라의 폐관은 분명 현재 예술계 전반, 연극계에서 크게 문제 되고 있는 검열 사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대로 폐관되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는 심정을 밝혔다.

이해성 연출가는 "작년 연말 폐관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극장이 너무 아까워서 없애지 말고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고 이윤택 선생님께 말씀드렸었다"며 "결과적으로 없어지게 돼 무척 아쉽고 서운하다. 좋은 극장이 또 없어지니 말이다"고 안타까운 입장을 드러냈다.

 

   
배우 겸 연출가 오동식 ⓒ 문화뉴스 DB

어려운 결정을 내린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의 생각도 안 들어볼 수 없다.

게릴라극장의 대표로 운영을 책임지던 오동식 배우는 "폐관식 행사를 기쁘게 준비하고 있다. 10여 년간 수고한 게릴라극장에게 정말 '고마웠고 수고했다'고 말하며 다독거려주며, '이제는 쉬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며 "내게 게릴라극장은 현실을 넘어 또 다른 현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연극은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지금보다 나은 현실을 꿈꾸는 것"이라며 소회를 남겼다.

연희단거리패 윤정섭 배우는 "게릴라극장은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무대 위에서 세상과 만난 곳이었다. 십 년 동안 이 극장에서 정말 많은 땀을 흘렸고, 내가 조금이라도 이 세상에 쓸모가 있는 인간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곳"이라며 "2, 30대를 불사르며 모든 열정을 바쳤던 공간이지만, 폐관이 곧 끝은 아니다. 내게도 극단에게도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말을 전했다.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됐던 작품 포스터들. 게릴라극장은 10여 년간 약 160여 편의 작품들을 개발 공연해왔다 ⓒ 연희단거리패

폐관 공연작은 채윤일 연출의 '황혼'이다. 연희단거리패 대표 김소희와 명계남이 각각 창녀와 맹인 역할을 맡았다. 보잘것없이 사회 주변으로 밀려난 노년과 중년의 남녀가 끊임없이 거짓말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구조인 이 작품은 진지한 연극과 통속극, 스릴러와 익살극, 민중극과 철학적 코미디, 비극과 희극을 넘나드는 작품이다. 공연은 다음 달 16일까지 진행된다. 16일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게릴라극장은 우리의 기억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상반기 게릴라극장 공연 예정작이었던 오세혁, 이해성, 박근형 씨의 작품은 30스튜디오서 진행된다. 한편, 5월 부산 기장군에 가마골소극장이 개관된다.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개막작으로 공연된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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