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형 연출(가장 왼쪽)과 조재현 수현재씨어터 대표(왼쪽에서 두번째)를 비롯한 배우들이 포토타임을 가졌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6·25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가족을 버리고 혼자 피난길에 나선 경숙 아버지. 남편에게 버림받았지만 남편에게 사랑받는 것이 소원이던 경숙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싫지만 그만큼 그리운 경숙이. 이들의 인생이 펼쳐질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가 올해 다시 돌아온다.

2006년 초연 당시 올해의 예술상, 대산문학상 희곡상,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주인영), 한국연극평론가협회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3, 동아연극상 작품상·희곡상·연기상(고수희)·신인연기상(주인영)을 받은 작품이다. 그 후 여러 차례 재공연과 드라마 제작을 거쳤고 5년 만에 수현재컴퍼니와 수현재씨어터 1주년 기념작으로 선정됐다. 3월 6일부터 4월 26일까지 수현재씨어터에서 다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25일 오후 수현재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제작발표회를 통해 이번 작품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박근형 연출, 조재현 수현재컴퍼니 대표, 김영필, 고수희, 주인영, 황영희 등 출연 배우들이 참석했다. 조재현 수현재컴퍼니 대표는 "수현재를 만든 지 1년이 됐다"며 "작년엔 개관 기념행사를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이 많아서,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1주년 행사로 대체하게 됐다. 이번 연극을 해서 기쁘다"고 소감을 남겼다. 지금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경숙이, 경숙 아버지'를 1주년 기념작으로 선택한 이유는?
ㄴ 조재현 대표 : "'경숙이, 경숙 아버지'를 2006년 소극장에서 보게 됐다. 작품이 좋아 그 당시 박근형 연출가께 제안했다. 이 공연을 이 팀 그대로 하면서, 저도 출연하고 싶다고 제안했고 받아들여 주셔서 연극을 하게 됐다. 굉장히 많은 관객이 좋아해 하셨다. 개인적으로 연극을 하면서 자극을 줬거나, 머리에 남는 연극 다섯 작품을 꼽으라면 이 작품이 생각난다. 6·25 전쟁 후 정상적인 아버지가 아닌 한량 같은 아버지 밑에 가난한 엄마, 딸, 첩이 등장한다. 그래서 요즘 관객들이 공감할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모든 나잇대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연극 같지 않은 연극들이 조금 많은 것 같다. 연극적인 연극이면서도 보기 편한 작품이 이 작품인 것 같아 선택했다.

2006년 초연 당시 많은 상을 휩쓸었고, 2007년 평균 객석 점유율 110%를 기록했다. 그리고 2010년 예술의 전당에 오른 바 있다. 많은 호응을 받은 이 작품의 강점은?
ㄴ 박근형 연출 : 좋은 평을 받고 관객들한테 사랑받은 작품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큰 요인은 배우들이라고 생각한다. 워낙 기본기가 튼튼한 배우들을 만났고, 서로의 앙상블이 좋아 연습 때나 공연 때나 스트레스 없이 작업을 하다 보니 공연이 좋아지고 풍성해졌다. 또 하나는 이야기 자체가 심오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모두 겪었거나, 들어봄 직한 우리 주변의 말썽꾸러기, 사고뭉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서운함도 있지만, 아버지로 상징되는 시대에 대한 그리움들이 젊은 관객이나, 나이 드신 관객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라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사는 것은 굉장히 풍요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 우리가 모르면서 느낀 향기와 그 시절의 때 묻은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 '경숙아베' 역을 맡은 김영필

극에 등장하는 '경숙아베'는 최근 흥행한 영화 '인터스텔라', '국제시장'과 드라마 '가족끼리 왜이래'의 아버지들이 모든 걸 다 내려놓는 것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다.
ㄴ 김영필 :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아버지는 아닌데, 우리 주변에 찾아볼 수 있는 아버지라 생각한다. 전쟁이라는 경험을 막연하게 우리가 TV로 보는 것에 국한되어 있어서 그게 어떤 것인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아버지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그 전쟁의 한가운데를 경험하면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 같다. 그런 경험을 겪은 아버지이기 이전의 인간이라 많은 풍파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가족이랑 헤어질 수밖에 없고, 방황하고, 그 가운데 다시 꿈을 좇고 이런 것은 우리가 흔히 보는 가족만 먼저 생각하는 아버지가 아닌, 철저하게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는 아버지다. 그래서 더 극적이고, 연민이 느껴지는 것 같다. 잘 살아보려고 하지만 잘 안되는 인간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때, 그런 사람이 아버지라면 많이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엄마나 할머니를 많이 했는데 이번 연극엔 두 남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ㄴ 황영희 : 미모로 본다면 당연한 결과다. (웃음) '자야' 역할은 나이가 들수록 재밌어 질 것 같다. "'자야'가 네 살 위네"라는 대사가 있다. 올해로 나이가 마흔일곱인데, 이번 작품에선 스무 살 정도의 역할을 맡았다. '자야'가 나이를 속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요즘 마사지를 많이 하려고 한다. (웃음)

지난해 연극 '반신'에선 10살도 되지 않은 쌍둥이를 맡았고, 이번엔 소녀 '경숙'을 맡았다.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ㄴ 주인영 : 노하우는 없다. 경숙이도 그렇고 지난해 했던 반신도 어린 역할이지만, 괴물 같은 아이라는 전제 때문에 부담감이 없었다. 경숙이도 연출님께서 아이를 연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깔고 가라"는 말이 있으셨다. 그래서 아이 같은 모습은 있겠지만, 아이 같게만 하려는 부담은 크지 않았다. 물론 전에 했을 때보다 양심적으로 걸리긴 했다. (웃음) 연출 선생님이 하자고 했을 때, 사실 망설여지기도 했다. "이젠 후배가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움직여질까"라는 생각도 했다. 몸이 나이를 들었다. (웃음) 그래서 열심히 하고 보약도 먹고 있다.
 

   
▲ '경숙' 역을 맡은 주인영

2007년과 2010년 '경숙어메' 역을 계속 맡았다. '경숙어매'를 새롭게 발견하는 면이 있을 것 같다.
ㄴ 고수희 : 꽤 어린 나이부터 엄마, 할머니 역할을 했다. 감정들이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풍성해지는 것 같다. 지금은 경숙이 엄마의 나이가 됐다. 지금 표현하는 엄마의 역할이 7~8년 전에 했던 엄마와는 깊이가 다르지 않을까 본다. "표현되는 것이 나아도 모르게 달라졌네"하는 기대가 든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는 역할인데 외울 때 어려웠을 것 같다.
ㄴ 권지숙 : 조재현 선배님과 2007년 동숭아트센터에서 했을 때하고, 8년 만에 다시 '경숙어메'를 맡았다. 영어를 20년 동안 배워도 못하는 것처럼 사투리도 그런 것 같다. 자나 깨나 사투리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

수현재컴퍼니를 이끌어 가면서 어떤 원칙과 철학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ㄴ 조재현 대표 : 이 공연장을 지으며, 제작 프로덕션을 만들어도 내 연극의 철학이 바뀐 것 같지 않다. 예전과 변함없이 연극을 위해 돈을 쓰지 않겠다가 기본 방침이다. 연극을 통해 돈을 벌 생각도 없다. 선배님 중에 연극을 통해 전셋집도 날린 분들이 많았다. 가정과 연극계, 관객들 모두 만족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재벌이 아닌 이상, 내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려고 했고, 어느 정도 맞춰가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돈을 쓰지 않으면서 시스템을 돌린다고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공연들과 작년에 했던 대학로 연극인 지원 기획 시리즈 '위드 수현재'의 '더 로스트', 그리고 앞으로 할 공연들이 나를 충족시킬 계기가 될 것 같다.

예능에 얼마 전 출연하면서 화제가 됐다. 소감을 듣고 싶다.
ㄴ 조재현 대표 : 예능 프로는 작년 여름부터 제안을 해 와서 꾸준히 거절했다. 예능 작가와 PD는 드라마 작가, PD와 다르게 질긴 것 같다. 틈만 나면 계속 제의를 했다. 그때 한가지 몰랐던 것은 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아빠와의 추억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배우 조재현이 아닌 사람 조재현으로 들어주고 싶었다. 개인 시간을 통해선 하기 어려워서 이런 시간을 통해서 해주고 싶었다.
 

   
▲ 조재현 수현재씨어터 대표(왼쪽)과 박근형 연출(오른쪽)

이 작품이 과거 작품과 어떻게 차별화됐는지 듣고 싶다.
ㄴ 박근형 연출 : 이번에 다시 하면서, 연극의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연출이 작품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의 눈이 다양하므로 그런 시각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올해 관객들이 "진부하지 않나?", "너무 신파로 흐르지 않나?"라는 의견을 낼 것에 대해 경계했다. 지금 관객의 눈으로 뭔가 가슴 속에 담아갈 수 있는 작업을 준비했다. 그리고 몇몇 새로운 배우들과 호흡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이번 연극의 가장 막내로 알고 있다. 연습하면서 무섭거나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ㄴ 이시훈 :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고 뵙고 싶었던 선생님들을 뵈어서 좋았다. 하지만 솔직히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웠다. 좋은 기회가 되어서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하고 있다.

신사랑 : 선배님들이 굉장히 잘해주신다. (웃음)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시고, 항상 밝은 미소로 연습실에서 맞아주시는 것에 감사드린다. (웃음)

극 중 '할베'와 '사위'를 맡았다. '할베'가 장구를 아들한테 건네주면서 "네 인생에 장단을 두드리라"는 말을 남긴다. 어떤 의미인지?
ㄴ 서동갑 : 장구가 '할베'보다 더 의미가 있으면 안 되는데(웃음), '경숙아베'가 계속 장구를 매고 다닌다. 대사 중에 "우리 집 전 재산이 소가 아니라 장손인 너다. 내가 죽으면 네가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저의 분신 같은 마음이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방송에서 조재현 대표가 몇 년 후에 뜰 거다고 예언을 했다. 선배 조재현의 어떤 매력이 있는지 알고 싶다. 특히 배우와 제작자의 차이점은 어떤지?
ㄴ 황영희 : 일화가 하나 있다. 지금 공연하고 있는 '민들레 바람되어' 연습 중에 옷을 막 갈아입으시는 것이 신나 보였다. 연습 중이라 갈아입는 것이 귀찮을 것 같아서 "나중에 입어보세요"했는데, "아니야. 재밌어. 입어 봐야 해"하시는 것이 연극이 정말 재밌게 하고 있구나 느끼게 했다. 이번 연극을 하면서 드라마 '펀치'를 동시에 했는데, 사실 드라마에서 저 정도 분량이면 연극을 동시에 하기가 힘들다. 연기를 정말 좋아한다는 느낌을 들었다. 연기를 떠나서 평소 이야기를 한다면, 동네 오빠 중에 장난 좋아하는 사람 꼭 한 명 있는데 그런 재밌는 분이다. 제작은 별로 말씀드리고 싶지 않다. (웃음) 사실 그 부분은 저도 잘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공연 기회를 만들어주신다는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다.

'경숙이, 경숙아버지'를 배우로도 출연했고, 제작으로도 참여한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ㄴ 조재현 대표 : 별로 말씀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는데, '경숙이, 경숙아버지' 같은 연극을 일반 제작사가 하기는 힘들다. 작품은 좋지만, 출연진도 많이 나오고 이런 공연을 대학로에 흔히 다니는 관객들에게 쉽게 접할 수 있나 싶었다.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 기획 공연 같은 국공립단체가 해야 하고, 민간단체가 하긴 쉽지 않다. 이 프로덕션에 배우, 스태프가 모두 응해줘서 가능했다. 대다수가 흔쾌히 했지만, 황영희 씨만 흔쾌히 안 해줬기 때문인 것 같다. (웃음) 주인영 배우가 괴물 같은 소녀라고 했는데, 경숙이 아버지 연기했을 때 '극단 골목길' 분들 모두가 괴물 같았다. 누구나 흉내 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가진 색깔을 연기로 다 내지 못했다. 그런 독특함이 있었다. 이런 좋은 연극을 출연한 재미도 있지만, 제작할 때는 관객들과 같이 볼 수 있다는 점이 재미가 있는 것 같다.

극 중 '청요리', '의사', '예수', '아들'까지 네 배역을 해야 한다.
ㄴ 이호열 : 빨리 갈아입고, 준비할 수 있도록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기 중이다. (웃음)

사투리를 굉장히 잘한다. 조언도 아낌없이 주는 것 같은데, 가르치는 노하우가 있다면?
ㄴ 강말금 : 부산 사람인데, 이 연극의 사투리는 경북 쪽 사투리어서 저도 정확하지 않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하나 봤는데, 여성적이라고 느꼈다. 그 느낌을 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경상도 쪽이다 보니 약간 이상한 억양이 들릴 때 선배님들과 후배들한테 "그 억양을 살짝 수정해도 구수한 느낌이 날 것 같다"고 말씀드린다.
 

   
▲ 박근형 연출(가장 왼쪽)과 조재현 수현재씨어터 대표(왼쪽에서 두번째)를 비롯한 배우들이 포토타임을 가졌다.

'꺽꺽'이 캐릭터를 맡았다. 김상규 배우가 아니면 대체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ㄴ 김상규 : 전라도 사람이어서 경상도 말을 하다 보니 많이 헤맸다. 근형 선배님이 저한테도 작품을 보시고 욕하면서 만들었던 것이 '꺽꺽'이 캐릭터다.

박근형 연출 : 연습 과정에서 배우와 연습하면서 창조한 인물이다. 김상규 배우를 통해 노력하고 인내하는 여러 과정을 거쳐 창의적으로 만든 캐릭터다.

최근 연극계에 중년층 관객이 늘었다. 수현재컴퍼니의 공연이 그 흐름에 기여를 많이 했다. 제작자로 그런 변화를 실감하고 있는지?
ㄴ 조재현 대표 : 외국에 가면 연극을 보는 관객들이 젊은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에 분포돼있다. 우리 대학로는 언제부터인가 20대 초반과 중반의 여성들이 주로 찾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우리 콘텐츠에 대한 문제가 아닌가?" 싶어서 중장년층에 공감 가는 연극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 하는 '민들레 바람되어', '황금연못'도 예매처에서 보는 집계 비율보다 실제 관람 비율을 보면 확실히 중년층 관객이 높다. 20~30대 자녀가 구매해서 60~70대 관객들이 있어서, 훨씬 높다는 것이 보람 있다. 특히 교육, 태도를 통해서 관람 문화가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 처음 관람하는 분들로 인해 공연 자체가 깨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핸드폰 사용, 주변 사람과의 대화 등이 그런 예다. 그분들이 관람을 많이 하시면 성숙하실 거라 믿는다. 이런 좋은 현상을 어떻게 발전시키는 몫도 저희한테 달린 것 같다.

어떤 분들이 이 연극을 봤으면 좋겠는가?
ㄴ 박근형 : 관객층은 누구라도 상관없다. 객석이 가득 차면 배우들이 힘이 난다. "내 인생은 왜 이래"하신 분이 이 작품을 보고 "사는 데 있어서 결핍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하면서 힘내며, 이 행복한 나라를 잘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사진 ⓒ 문화뉴스 홍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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