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고전극장 창작집단 LAS의 에우리피데스 원작 이기쁨 각색 연출의 헤카베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MHN 박정기] 헤카베(Hekabe,Εκάβη)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왕비이다. 트로이 전쟁으로 남편과 자식들을 잃자 분노와 슬픔으로 개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트로이의 마지막 왕비로 남편 프리아모스(Priamos)와의 사이에서 많은 자녀를 두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그녀는 트로이 함락으로 남편과 아들들이 목숨을 잃고 딸들이 희생제물이나 노예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 때문에 서양 문화권에서는 헤카베는 비극적인 어머니상으로 자주 묘사된다.

그리스어 표기에 따라 헤카베(Hekabe, Εκάβη) 또는 라틴어 표기에 따라 헤쿠바(Hecuba)로도 불린다. 그녀의 출생이나 부모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며 이는 오랜 기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저승의 여신 페르세포네의 딸 에우노에(Eunoë)와 소아시아 중부 프리기아(Phrygia) 왕 디마스(Dymas)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헤카베를 프리기아 왕국을 흐르는 사카리아 강(Sakarya River)의 신 상가리우스(Sangarius)와 요정인 메토페(Metope)의 딸이라 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문헌에 따르면 헤카베는 트로이 전쟁으로 인해 자식들을 잃는 큰 슬픔을 겪어야 했다.

《일리아스》에 따르면 헤카베의 장남인 헥토르(Hector)는 트로이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전쟁을 진두지휘하며 파트로클로스(Patroklos)를 비롯한 많은 적들을 물리친 영웅이었다. 그러나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다짐한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며 그 시체는 마차에 매달려 끌려 다녔다. 그녀의 또 다른 아들 파리스(Paris)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Menelaos)의 아내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와 그리스 동맹군과 트로이 사이의 전쟁을 일으켰다. 파리스는 아킬레우스를 죽였으나 그리스 연합군 필록테테스(Philoctetes)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헤카베의 딸 카산드라(Cassandra)는 목마(木馬)를 성 안으로 들이지 말 것을 간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트로이 함락 후 카산드라는 전리품으로 아가멤논의 포로가 되었으나 결국 아가멤논의 아내에게 살해당했다.

   
 

호메로스의《일리아스》에서 헤카베는 주변인물로 다루어졌으나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4∼BC 406)의 작품 《헤카베》와 《트로이의 여인들》에서부터는 비극적인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포로가 되어 그리스 군에게 끌려가던 헤카베는 막내 딸 폴리크세나(Polyxena)가 아킬레우스의 망령을 달래기 위한 제물로 희생당하자 절망한다.

그러던 중 헤카베는 트라키아 왕 폴뤼메스토르(Polymestor)에게 피난 보내 양육을 부탁한 막내 아들 폴리도로스(Polydorus) 마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복수를 다짐한 헤카베는 폴리메스토르를 유인해 두 눈을 뽑아 장님으로 만들고 그의 아들들을 죽였다. 헤카베가 자식들의 시체를 보고 실성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헤카베는 특히 개 전설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폴리메스토르에게 복수를 한 헤카베는 개로 변해 트리키아를 떠돌았다고 한다. 노예가 된 헤카베가 오디세우스(Odysseus)를 향해 분노와 저주의 말을 부르짖자 불쌍히 여긴 신들이 그녀를 개로 만들어 탈출을 도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개로 변한 헤카베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그녀가 묻혀 있다고 알려진 헬레스폰트 해협의 퀴노스세마(Kynossema, 개의 무덤)가 있는데 그 곳은 뱃사람들이 항로를 찾을 때 유용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수난 당하는 어머니이자 비극적인 여주인공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헤카베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중세를 거쳐 오늘날까지 시, 연극, 문학, 음악 등에서 다양하게 등장해 왔다.

이기쁨(1984~)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의 연출가로 창작집단 LAS의 상임연출이다. 연출작으로는 <정옥이> <장례의 기술> <호랑이를 부탁해!> <서울 사람들> <성은이 망국하옵니다> <운현궁 로맨스> <대한민국 난투극> <경성스케이터>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손> <용의자X의 헌신>등을 연출한 앞날이 발전적으로 예측되는 여성연출가다.

창작집단 LAS의 <헤카베>는 법정에서의 재판과정 연극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남편과 자식을 잃은 <헤카베>가 자식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아들을 죽인 폴뤼메스토르의 두 눈을 찔러 멀게 했기에 피고인으로 등장한다. 트라케의 왕이자 <헤카베>의 사위인 폴뤼메스토르가 피해자이자 원고다. 재판장은 트로이 정복을 위한 그리스 원정군의 총대장인 아가멤논이다. 기원전 12세기가 시대적 배경이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과 일맥상통한다.

무대는 1m 높이의 사각의 단이 법정이고, 벽에는 좁고 넓은 구멍의 그물모양의 천 여러 개 늘어뜨려 놓았다. 용도에 따라 의자를 이동배치하고, 조명으로 장면전환을 이룬다. 남녀 6인의 등장인물이 1인 다 역으로 출연하고, 법정에서의 원고와 피고인의 공방으로 역사적 배경과 사건의 전모가 들어난다. 내용은 에우리피데스의 원작을 따랐으나, 법정장면으로 함축시켜 각색 연출되고, 마치 현재 국정농단사건의 법정공방을 예견한 듯싶은 연극이라 관객의 공감대가 극의 도입부터 형성된다.

   
 

트로이 원정에서부터 10여 년 간의 전쟁과 아킬레우스의 사망,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목마로 전쟁을 승리로 바꾸고,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장남 헥토르가 전사하자, 그의 부인 <헤카베>는 포로로 그리스로 끌려온다. 막대한 트로이의 보물저장 장소를 아는 헤카베의 아들 폴리도로스를 처형한 폴뤼메스트로, 그것을 알고 폴뤼메스트로의 두 눈을 찔러 멀게 한 <헤카베>의 법정공방이 사건의 진위를 놓고 벌어진다. 대단원에서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헤카베>는 포뤼메스트로를 감추고 있던 단검으로 찌르고 자신도 자결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곽지숙, 윤성원, 김정훈, 이새롬, 조하나, 조용경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갈채를 받는다.

프로듀서 정하린, 조연출 이다빈, 무대 서지영, 조명 정유석, 음악 윤지예, 음향 윤찬호, 의상 분장 김선화, 영상 고동욱, 사진 발일호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창작집단 LAS의 에우리피데스 원작, 이기쁨 각색 연출의 <헤카베>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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