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조진웅, 황우슬혜, 윤여정, 박근형, 한지민, 찬열, 강제규 감독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강제규 감독이 한다고 해서, 폭탄 터뜨리는 사람이 이걸 찍나 걱정했었다."

윤여정 배우의 말처럼 이른바 '전투 전문' 강제규 감독이 2011년 '마이 웨이' 이후 돌아온 장편 작품은 로맨스 영화였다. 70살 연애 초보인 '성칠'(박근형)과 그의 마음을 뒤흔든 꽃집 여인 '금님'(윤여정).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연애를 응원하는 사람들까지, 영화 '장수상회'는 첫사랑보다 서툴고, 첫 고백보다 설레고, 첫 데이트보다 떨리는 러브스토리를 그린 작품이다.

강제규 감독은 과거 '은행나무 침대'로 판타지와 멜로의 절묘한 조화를 담기도 했다. 그리고 '쉬리'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이름과 함께 남과 북의 현실을 담으며 멜로를 녹여내기도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서도 역시 이데올로기 싸움에 희생되는 남녀를 그린 바 있다. 그리고 '마이 웨이' 후 지난해 개봉한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을 통해서도 이산가족의 문제로 고통받는 한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 이렇듯 그는 비록 전투 장면들이 들어가는 영화들을 만들어왔지만, 꾸준히 멜로 장르도 그 속 안에 넣었던 감독이다.

그가 준비한 '장수상회'는 어떤 의미였을까? 12일 오전 CGV 압구정에서 오는 4월 9일 개봉 예정인 '장수상회'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박경림의 사회로 열린 이 날 제작보고회에선 강제규 감독을 비롯해, '성칠' 역의 박근형, '금님' 역의 윤여정, '장수' 역의 조진웅, '민정' 역의 한지민, '박양' 역의 황우슬혜, '민성' 역의 EXO 찬열이 참석했다. 약 반세기 만에 커플 연기를 선보인 박근형과 윤여정, 그리고 첫 스크린 데뷔를 앞둔 EXO의 찬열을 비롯한 출연진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보자.

오랜만에 촬영했던 배우들을 만나니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ㄴ 윤여정 : 감회가 새로울 정도로 오랜만에 만나는 건 아니다. 자주 뵙진 않았지만, 회의차 몇 주 전에 봤다. (웃음) 박경림 말처럼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는데, 관객분들은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다.

현장 촬영 분위기는 어땠는가?
ㄴ 조진웅 : 기존에 해왔던 영화들처럼 거칠고, 찢어지고, 피를 보는 현장이 아니었다. (웃음) 가족들의 사랑이 있는 영화이다 보니, 실제 현장도 사랑이 넘쳤고, 행복했다.

한지민 : 옆에 계신 선생님만큼 많은 촬영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현장은 처음이었다. 따뜻한 현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두 분 선생님들과 다른 배우분들, 스태프분들이 최선의 촬영 현장을 만들어주셔서 잘 연기할 수 있었다.

   
▲ 강제규 감독

영화 제작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ㄴ 강제규 감독 :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저희 아버님이 86세이시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동안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이 같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영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올 때, 우리 같이 손을 꼭 잡고 나올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박근형과 윤여정의 사랑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다. 소감이 어떤지?
ㄴ 박근형 : 대본을 받는 순간 중·고등학교 시절 한 여인을 보고 설레던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의 아내는 아니다. (웃음)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멀리서 봐도 떨리고 울렁울렁 거리는 마음이었다. 대본이 그런 마음을 줬고 내가 반드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젊을 때 애정물을 많이 했어도, 이렇게 10대부터 70대까지의 사랑 이야기를 찍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두말할 것 없이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상대역에 윤여정 씨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윤여정 : 싫었겠죠. (웃음)) 윤여정 씨와 오랜 기간 같이 보고 연기했는데, 윤여정 씨도 나이를 먹었구나를 느꼈다. 늘 후배였고 거리가 좀 멀었는데 이번에 작업하면서 많이 이야기도 나눴다. 여기에 연기 플랜을 여유롭게 뒷짐 쥐고 세울 수 있던 것도 윤여정과 대본의 힘이 아닌가 싶다.

윤여정 : 처음엔 조금 오그라들었다. "저거 뭐하는 여자냐" 생각했는데 반전이 좋았다. 강제규 감독이 한다고 해서 "그 사람 폭탄 터뜨리는 영화만 하는 사람이 이걸 하나"해서 걱정도 했다. (웃음) 박근형 선생님이 하신다고 해서 로맨티시스트로 요즘 뜨고 계시니 하는 건 당연한 거 같았다. 우리 둘은 23살 무렵 '장희빈'과 '숙종'으로 만났다. 당시 비디오테이프를 다시 쓰던 시절이어서 지금은 사진 자료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장희빈' 찍을 당시 연기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꾸중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웃음) 그리고 2000년 KBS 드라마 '꼭지'를 통해 남편을 원수같이 보는 여자로 같이 찍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절절한 사랑 이야기로 찍은 것은 44년 만에 만나는 것이다. 역사적인 현장에 오셨다고 보시면 된다. (웃음) 부풀려 말하면 반세기 만에 만난 사랑이다.

연기 대선배들과 연기를 같이했는데 느낌이 어땠는지?
ㄴ 조진웅 : 역사와 같이했다. 몸 둘 바를 몰랐다. 지민 씨는 윤여정 선생님과 함께 호흡한 적이 있고, 저는 박근형 선생님과 같이했는데, 연세에 대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가 '젊다'보단 저 배우보다 확실히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좀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느꼈다.

찬열 : 우선 처음이니까 떨리고 긴장이 많이 됐다. 영화 촬영을 시작하기 전 대본 리딩을 하고 끝나고 회식을 했는데, 두 시간 정도 떨려서 말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선배님들이 오셔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셔서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편하게 촬영한 것 같다. 회식 때 고기를 먹고 있었는데, 고기를 먹을 때 한지민 선배님이 바로 앞에 있어서 긴장을 많이 풀어줬다. 여기에 한지민 선배님이 예뻐서 고기가 잘 안 넘어갔다. (웃음)

한지민 : 윤여정 선배님과의 호흡은(윤여정 : 자유롭게 말해라(웃음).) 신인 때부터 인터뷰할 때, 존경하는 선배님 이야기할 때 윤여정 선배님을 꼭 말씀 드렸다. 엄마가 있던 역할을 연기할 때 딱 한 작품이 있었다. 사실상 처음인데, 제가 꿈꿔온 선배님들이랑 여기를 같이 하니 호흡을 보는 것 만으로, 현장 나가는 것 자체로 공부가 많이 됐다.

황우슬혜 : 두 분께서 쳐다봐 주시는 눈빛만으로도 울컥울컥 했다. 진웅이 오빠 같은 경우는 같이 드라마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 편하게 해주셔서 인간적인 고마움을 느꼈다. 지민 씨도 착해서 깜짝 놀랐다. 찬열 씨도 더 착했다. 다 좋은 사람들의 모임이었던 것 같다.

촬영 중 힘들었던 장면이 있었다면?
ㄴ 윤여정 : 영화 속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이 나이에 타려니 정말 힘들었다. 롤러코스터는 중간에 멈추면 기계가 고장 나기 때문에 끝까지 타야 한다. 나중에 매스꺼워서 임신인가 할 정도로 놀랐다. (박근형 : 내 아기 아닙니다. (웃음)) 사실 강제규 감독이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편이다. 전쟁 영화를 많이 찍다 보니 폭탄 하나를 터뜨리면 몇천만 원인데 그래서인지 조사를 참 많이 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촬영 시간도 단축됐었다. 남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남자친구라도 있으면 불러냈을 것이다. (웃음)

   
▲ (왼쪽부터) 윤여정, 박근형

다른 배우들의 나이가 부러웠던 적이 있던가?
ㄴ 조진웅 : 아무래도 내공을 이길 수 없었다. 아무리 해도 어쩔 수 없었다. 20대 때 꿈이 중년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잘 안돼서 정말 슬펐는데, 이제는 주름이 멋있는 훈장이라는 것을 연기하면서 배웠고 앞으로 박근형 선배님처럼 꼭 되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촬영하면서 설렘을 느낀 적이 있는지?
ㄴ 박근형 : 극 중에 쓸데없는 투정과 까칠을 부리다 어느 골목에 앉아서 후회하고 있을 때, 윤여정이 손을 잡아주는 부분이 있었다. 40여 년 전, 장희빈 연기로 야단을 쳤는데 이제는 내가 사랑으로 감싸 안음을 받는구나 해서 설렘을 느꼈다.

윤여정 : 원래 아무하고나 손 잘 잡아요.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웃음)

완벽한 강제규 감독 때문에 피곤한 적이 있는지?
ㄴ 윤여정 : 질문이 이상하다. 진짜 피곤해도 감독님 옆에서 누가 손을 들겠나. (웃음) 다음 작품을 중국에서 촬영하는데 단역이라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박근형 : 20대에 연극을 할 때 여러 명이 모여서 합독과 토론을 하면서 연기 플랜을 세우던 시절이 있었다. 그걸 50년 만에 처음 느낀 기분이었다. 감독님께선 항상 놀이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줬다. 생각하고, 실천할 기회를 줬다. 몰입하는 정도가 어린 시절 연극을 할 때 느낌을 받은 것 같아 정말 고마웠다.

사랑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ㄴ 박근형 : 완전 밑으로 차이가 나면 문제가 될 것 같다.

윤여정 : 중요할 것 같다. 사랑이 상대방에 대해 눈이 머는 것이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결심하는 사람이라 나이도 중요할 것 같다. 찬열이 너 나랑 사랑할 수 있니? (박경림은 찬열에게 가능하다면 팻말을 들어 올리라고 했다. 그리고 찬열은 팻말을 들어 올렸다.) 너 미쳤니? 반대를 어떻게 이겨내려고 해?

찬열 : 꼭 사랑이라는 것이 남녀 간의 그런 걸로만 볼 수 없다. 우리 어머님이 날 사랑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된다.

윤여정 : 미안하다. 내가 저속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웃음)

드라마에선 주로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를 보여줬고, '꽃할배'에선 로맨티시스트였다. 실제 본인과 닮은 점이 있는지?
ㄴ 박근형 : 닮은 점은 그다지 없다. 나는 아주 촌스러운 사람이다. 평소에도 값싼 옷을 입고 다니고, 동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유별나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데, 이번에도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 기분이었는데, 이런 걸 작품을 잘 표현한 것 같다.

EXO의 도경수(디오)가 '카트'를 통해 먼저 스크린 데뷔를 했다. 조언이 될만한 이야기를 했는지?
ㄴ 찬열 : 제가 디오와 방을 같이 써서 이야기할 시간이 많다. 시나리오를 받고 혼자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디오가 "너가 평소에 하는 것처럼 하면 이쁨 받고 잘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그리고 연습할 때 많이 합을 맞췄다.

'아영' 역을 맡은 문가영과의 커플 캐미는 어떤지 궁금하다.
ㄴ 찬열 : 가영이라는 친구와 연기하면서, 사람들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감독님도 처음에 같이 있는 모습을 보시고 남매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이 많이 어울리지 않았나. 저와 그 친구 모두 키가 커서 비주얼 적으로 봤을 때 잘 어울린 것 같다.

   
▲ (왼쪽부터) 조진웅, 황우슬혜, 윤여정, 박근형, 한지민, 찬열, 강제규 감독

나에게 '장수상회'란?
ㄴ 찬열 : 처음 영화에 도전할 수 있게 해준 감사한 작품이다. 평소에도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데, 보고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먹먹해진다. 가슴이 따뜻한 영화라 생각한다.

황우슬혜 : 사랑하면서 나이를 먹고 싶은 생각이다.

조진웅 : 시나리오를 처음 받을 때부터 느꼈지만, 극장에 따뜻한 온국수같은 영화가 올 시기라고 생각한다. 관객분들에게 진한 육수를 우려낸 따뜻한 온국수로 소통하고 싶다.

한지민 :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나 친구분들, 할머니에게 선물로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박근형 : 연기하는 동안 다시는 없을 봄꽃같은 화사한 사랑 이야기다.

윤여정 : 좋은 인연으로 45년 만에 박근형 선생님과 연기했다. 새로운 작품 도전을 할 나이는 이미 지났다. 이젠 배우들과 감독님과의 인연이 생긴 것이 작품만큼 좋다.

강제규 : 박근형, 윤여정 선생님과 영화를 같이 작업할 기회가 있느냐는 생각이 있었는데 현실이 됐다. 이번에 정말 좋은 스태프분들과 연기자들과 연기를 한 것,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점들이 새롭고 설렜다. 보물 같은 존재다. 영화에 저희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어서, 돌아가신 저희 어머님께 헌사를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