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목란언니' 리뷰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화려했던 꽃가루는 날리는 순간에만 반짝였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순간, 볼품없고 보잘것없는 부스러기가 되었다. 극 말미 무대에 흩날려진 꽃가루는 마치 목란(김정민)의 삶 같았다.

부유하는 목란. 남한 땅에서 북한을 그리워하는, 북한을 향하기 위하여 열심히 남한에서 살아내는, 그리하여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서 외면을 받는 목란. 생애의 젊고 아름답고 화려한 순간은 짧았다. 가슴시리도록 짧았다.

 

   
 

무대는 앞과 뒤를 구분 짓지 않았다. 두 기둥과 두 스크린이 네 개의 꼭지점을 만들면, 꼭지점과 꼭지점 사이마다 객석이 자리를 잡고 있다. 네 면의 객석,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중앙에 위치한 무대. 배우들은 입퇴장과 동선, 모션 하나하나의 다면을 관객들에게 숨김없이 보여줘야 한다.

이 입체적인 무대는 정신없이 뒤척여진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배우들은 쉴 새 없이 이 세계를 복잡다단하게 운용해나간다. 그러나 곰곰이 파악해보면, 이 세계는 단순하다. 돈(5000만원)이 필요한 세상. 5000만원으로 울고 웃는 상황이 대비되는 세상. 목란은 5000만원이 간절히 필요하다. 무척이나 그리운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금이다. 그리고 태양(이지혜)은 5000만원 때문에 연인과 꿈을 모두 잃었다. 대자(강지은)는 기울어가는 가세에도 비자금 5000만원을 마련했고, 태산(안병식)은 5000만원에 실성한 목란에 상심했다. 그리고 태강(김주완)은 5000만원으로 목란과의 새 출발을 꿈꾼다.

 

   
 

기자의 시선과 사유가 머문 곳은 목란과 긴밀한 관계로 그려지는 태산, 태강, 태양 삼남매의 존재 의미다. 마치 자본에 기생하지 않고는 존재가 불가능해져버린 인문학을 상징하는 것 같달까. 첫째 태산은 한국사 박사까지 공부했지만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고, 대학교 철학 강사로 일하는 태강은 학과 통폐합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막내 태양은 소설가이지만 시나리오 작가를 거쳐 자서전 대필 작가로까지 전락한다. 이들은 엄마(조대자)와 그가 이룩한 세계를 냉대하면서도, 그 돈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대자의 지원 없는 독립적인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존재들. 따라서 대자의 몰락에 함께 고꾸라지고 만다.

김은성 작가는 '어떻게 해야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과 우리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전인철 연출가는 이 연극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이들과 남한 생활이 힘들어 다시 북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는 노래가 되기'를 소망했다.

 

   
 

연극은 절망의 연속을 그린다. 남한을 찾은 이들의 부적응, 이에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쓰라린 마음들, 그마저도 쉽사리 전개되지 않는 비참한 여정. 극 초반 목란은 남한에서 당한 사기로 몸져눕는다. 북에 있는 부모를 서울로 데려와 준다는 브로커에게 속아 정착금과 임대아파트의 보증금까지 사기 당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회의를 느껴 북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럼에도 역시 사기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귀향 자비까지 빼앗기고 만다. 북한 엘리트 예술가 조목란이 새터민이 됐다가, 중국의 홍등가로 떠밀려오기까지. 그의 삶의 서사는 본인의 의지에 의해 진행되지 않았다.

마음대로, 마음껏 살 수 있는 인생이 어디 있겠냐만, 목란의 삶의 전개는 관객을 너무도 무기력하게 만든다. 목란이 낙천적인 의지를 가질수록 그의 삶은 처절한 고통을 향해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고통의 서사에 집중하는 이유는, 목란의 삶이 곧 우리의 과제이기 때문. 목란의 삶에는 이방인의 고통만 깃들어 있지 않다. 목란이란 존재와 맞물린 개개인들의 통증이 곳곳에 산재돼 있다.

 

   
 

그러나 이 비극적 세계관은 결코 관객들의 목을 답답하게 조이기만 하지 않는다. 앞과 뒤, 좌와 우 등의 고정된 방향성을 해체한 탁 트인 무대구조와 노래, 안무 등 이곳을 역동적이고 기운차게 채워가는 배우들의 다채로운 에너지가 혼합되어 경쾌한 공연을 만들어낸다. 더욱이 얽히고설킨 관계를 배우들의 스피디한 동선과 몸짓, 코믹한 대사들의 적절한 조합으로 풀어내어 관객들이 답답함을 느낄 새가 없게 만든다. 무엇보다 안정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의 합은 더할 나위 없었다. 연극 '목란언니'는 오는 2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key000@mhns.co.kr 사진ⓒ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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