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現存), 부재와 존재의 충돌 혹은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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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숙, 어딘가 모르게 시골스러운 분위기 물씬 나는 주인공 이름은 한 마디로 촌스러웠다. 제목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 위대한 연극이 앞으로, 한국 연극 전체의 필모그래피가 영원히 소유하게 될 적자(嫡子)의 계보에 당당히 그 이름을 아로새길 것을 확신했다. 개관한 지 1주년이 된 250석 규모의 세련되고 화려한 극장을 거의 메운 관객들의 가식 없는 환호와 호응은 그것의 반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연극의 극작과 연출을 책임진 자가 박근형이다. 동명이인인 배우 박근형이 아닌 우리 연극계의 중진으로 어느덧 후임들한테 거목으로 그늘을 마련해주는 보물. 박해일과 고수희, 그리고 윤제문과 엄효섭 등을 길러냈다면 흥미를 느낄만하지 않는가? 대체 그가 누구인지 말이다.
1999년부터 받은 상만 몇십 개다.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도 2006년 초연작으로, 당시 올해의 예술상, 대산문학상 희곡 상, 히서연극상, 평론가협회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3, 동아 연극상 등을 휩쓸었다. 말 다했다. 너무 잘 나가는 나머지 막 나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다른 작가와 연출가는 기가 죽어서 명함도 못 내밀겠다. 후광효과 때문일까? 2007년에는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초연 배우들에다 조재현, 이한위, 박철민, 장영남 등이 합류해 평균 객석 점유율 110%를 기록하기도 했다.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2009년에는 KBS2에서 4부작 드라마로 제작하기까지 했다. 이런 사례가 매우 드물다.

 
 
 

그 스테디셀러의 성공 도식을 이어가기 위해 수현재 씨어터 개관 1주년 기념 공연에 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2012년도 MBC에서 방영한 <무신>이라는 작품에 박송비 역으로 출연해 그 존재감을 과시한 김영필!. '박해일 도플갱어'의 발견은 관람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뿐 아니라 우리의 출구 전략 없는 연극 지형도에 유목민적인 야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난 태어나서 경상도 말이 시(詩)처럼 들린 건 처음이었다. 희곡은 연극 대본이 아닌 산문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연극계는 늘 좋은 희곡에 대한 갈증이 '공급자'를 물색하는데 거기서 박근형은 단연 눈에 띄는 극작가다.

거칠고 투박하게만 알고 있던 경상도 사투리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었다니 듣는 내내 나는 무엇에 홀린 것만 같았다. 외계어와 같은 혹은 아직 인간이 연주한 적이 없는 악기에서 나는 것 같은 '소리'에 홀린 나머지 드라마를 내버려두기까지 했다. 그 일등공신이 바로 박근형의 희곡이다. 한국형 언어의 마술사이자 거장의 평가를 받아도 부족함이 없는 그의 육화된 작품이 미성이면서 잡티 없는 맑고 깨끗한 김영필의 성대로 필터링 되어 관객에게 전달될 때의 울림은 경숙이가 마지막에 아버지를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에 모두를 젖게 만들어 버리는 위력을 발휘한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있어서 아버지란 삶이 막다른 곳에 처했을 때 흘리는 눈물이다.

 
 

국권의 강탈과 식민지로 전락, 그리고 분단과 동족상잔의 세월은 한때 우리의 아버지를 애비로 만들었고 그 애비는 다시 쌍놈 소리 절로 나는 천덕꾸러기처럼 조국의 산하를 정처 없이 떠돌아야만 했었다. 나라를 빼앗겼는데, 형제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데, 처자식과 안방을 내주어야 했던 이 땅의 아버지가 설 곳이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어느 자식인들 아내와 자식을 돌보지 않고 무정하게도 장구 하나 메고 소식 없이 집 나간 아버지를 좋아하겠는가? 차라리 무위도식이었다면 한은 남지 않았을 세월에 늘 부재(不在)하던 우리의 중심은, 이 땅의 기둥은 그렇게 빗나간 사랑으로 삶을 깨닫게 했다. 그게 벌써 얼마의 세월이던가?

극 중에서 아베는 '사랑'으로 전이되어 가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갈망하는 경숙에게 말한다.깝깝한 년이라고. 정작 경숙의 아베는 더 깝깝한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가 그걸 진작부터 너무 잘 알고 있다. 답이 없는 인생의 묘미를 처절한 독학으로 깨닫게 하는 이 이상한 교사(敎師)의 유일한 낙은 자신의 소리를 흠모하는 화류계의 작부에 대한 헌신이지만 그것조차 일장춘몽으로 어린 경숙에게 해괴한 트라우마를 선사한다. 외간남자와 어메가 살을 섞고 그 출산을 돌보기 위해 도망간 곳까지 딸년의 땀 냄새를 맡고 쫓아온 아버지 손에 이끌린 작부 출신의 넘버 2와의 동거는 전통과 관습에 대한 반란을 넘어선다. 유머코드를 내포한 돈오(頓悟)지향적 작의가 솔직히 말해서 처절하기까지 하다.

이 오밀조밀한 얼개의 연출은 고만고만한 세속적 질서가 거느린 음지에 빛을 넣어 기존 세계와 접붙이는 연출자의 '악행' 덕에 가히 문명(文明)에 침을 뱉게 한다. 잡념에 불을 붙이는 이 충돌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조롱과 우롱에 편승해 과거의 불편한 삶의 진실에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라면 가히 나쁘지 않다. 분명한 건 보면 볼수록 이상하리만치 잔혹을 탈색해버린 동화처럼 사람을 쑥 빨아들인다는 것이다. 분노와 증오를 잠재우는 마력은 경숙이의 일기로 포장한 박근형식 줄거리의 테크닉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쟁이 터졌단다. 천둥소리만큼 크고 무서운 소리가 난다. 이제 진짜 죽는갑다 싶어 짐을 쌀라카는데 아베가 내한테 너거 어메하고 집을 지키라 카신다. “전쟁 끝날 때까지는 각자 알아서 살아남는 기다. 알긋제?“ 하면서 아베는 저 멀리 가셨뿟다.

어찌어찌 삼 년이 지나고 아베가 살아 돌아왔다. 수용소 동지라나…꺽꺽이 삼촌을 델꼬 왔다. 하지만 아베는 또 어메랑 나를 놔두고 떠나뿥다. 꿈을 펼칠라꼬 간다나 어쩐다나…. 나는 울 아베가 싫다. 아베 얼굴도 가물가물한 게, 완전이 이자뿟으면 좋겠다.

클났다. 아베도 없는데 어메 뱃속에 아가 생겨뿌딴다. 꺽꺽이 삼촌 때문이란다. 아베가 집에 왔다가 이 사실을 알고 집을 또 나가뿟다. 이번에는 돈가방까지 챙겨가지고 갔다. 꺽꺽이 삼촌이 도저히 못산다고 떠나자고 해서 새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근데 아베가 우예 알았는지 새집에 찾아왔다! 자야라 카는 새어메까지 델꼬! 이제 우짜면 좋노!" 

위와 같은 1인칭 시점의 줄거리만 놓고 보면 일반론의 윤리와 도덕은 애당초 개입할 여지가 없다. 우리 연극계 최고의 극작가라 할 수 있는 이강백의 냄새가 나는 건 우연인지 몰라도 이 발칙한 상상과 반전이 아닌 가치의 전복을 폭력이 아닌 웃음으로 유도해낸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가공할 내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재주꾼과 거장이 어떻게 다른가가 바로 이런 것일까. 

이 작품이 수현재 씨어터에서 재공연하게 된 데는 수현재 컴퍼니 대표인 조재현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2007년 공연 당시 주인공이었던 것과 달리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의 이름 석 자가 관객몰이에 큰 힘이다. 아울러 대학로를 사수하는 스타 배우인 김영필 외에 경숙을 맡아 호연한 주인영을 놓쳐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 공연 내내 한국의 젤소미나가 떠오른 것은 오버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길(La Strada)>에서 잠파노와 짝을 이루던 작고 가냘프고 약간 모자란 듯한 젤소미나, 정말 그녀의 도플갱어 같은 경숙이를 과연 주인영 만큼 소화할 배우가 또 있을까? 그래서 더 관객들의 감정이입이 증폭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디 그뿐이랴, 조재현이 괴물들이라고 표현한 대로 극단 골목길 배우인 경숙 어메와 순정파 남자인 꺽꺽 그리고 자야에서 희야로 살짝 변신하는 화류계를 비롯해 할베와 간호사 의사 그리고 청요리까지 모든 배우, 어느 하나 처지고 밑지는 것이 없다. 박근형이 보물이라면 이들은 보석이다.

 
극의 시작과 중반은 아버지의 부재와 존재의 충돌이지만 말미에 이르러서는 봄 눈 녹듯이 화해가 된다. 관객의 가슴이 벅찼던 것은 그리고 박수가 아낌없었던 것은 그 순간에 현존(現存)하는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워도 다시 한 번이 우리의 속정이기에 불가피한 세상살이의 그 모든 것을 끌어안는 힘으로 아베는 장구 하나 둘러메고 노래를 불렀던 것이리라. 박근형, 끝까지 관객의 여운에 뭉클한 뒷심을 실어준다.고맙데이.
#문화뉴스 아띠에터 이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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