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아띠에터 칼럼그룹] 조기폐경일 수 있다는 선고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던 '민정'에게 임신이라는 의사의 말은 어쩌면 기적일 수 있었다…그러나 아이의 아빠는 정기적인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관계의, 심지어 마흔을 코앞에 둔 그녀를 이십대로 속아 알고 있는 남자인걸.

 

그에게 임신했다는 그리고 그녀의 정체를 이야기할 수 없는 그녀에게 임신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이 복잡한 심경을 10여 년 함께 일해 온 동료이자 상사인 '주연'에게 말하려는 순간 그녀는 '그런 사적인 얘기를 굳이 내가 들을 필요는 없잖아'라는 냉정한 말을 듣고 만다.

사람이니까, 이렇게 매몰차게 말하고 돌아선 '주연'도 이 상황이, 자신의 행동이 내내 찝찝하고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해결해줄 수도, 책임져 줄 수도 없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냐고 그녀가 물었을 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인 '완'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들어달라는, 같이 있어달라는 말이라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주길 너에게 바라는 것이 아닌 걸 모르겠냐고. 그리고 이 한마디를 해 주면 된다고.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당신의 그 선택을 응원한다" 이건 척박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으며 메말라버린 '주연'에게 '완'이 건넨 조언이지만, 사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실생활에서 이러한 대화와 다툼은 남녀 간에도 흔히 벌어진다.

연애, 사랑, 그리고 남녀가 왜 서로 소통할 수 없고 근본적으로 다른 지를 다루었던 책들이 한참 유행할 때에도 이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적 있었다. 가령 여자는 자신의 힘든 점, 서운한 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남자는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건지 당황이 되고, 급기야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해결해줄 수도 없는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온 여자가 원망스러워진다고.

그냥 들어달라는 거잖아. 내가 지금 이런 마음이라고.

이렇게 애원하는 여자의 말은 이기적이고 소모적인 것일까. 서로 이해받지 못하고 이어지는 대화에 지쳐갈 때쯤 여자도 어쩌면 끄덕일지 모른다. 그래, 어차피 상황은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왜 내가 이 이야기를 한 거지. 피곤하다. 

 

이 순간이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위험한 지점이다.
사람은 경험에 의해 학습한다.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의 '학습 이론'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간단한 생쥐를 통한 실험에서, 버튼 A를 눌러 간식이 나오는 것을 알게 된 생쥐는 A를 의도해 누르지만, 버튼 B를 눌러 전기충격이 가해지는 벌이 반복되면, B를 회피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회피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닌 '상대와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시도'가 될 때, 관계의 적신호가 켜지게 된다.

상담 장면에서 사람들이 가장 위로받고 치유 받는다고 느끼는 것은 다른 순간이 아니다. 타인에게 공감 받았을 때. 어떠한 상황에서 내가 행동하고 느낀 것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그래도 괜찮은 것이라는 것을 상대가 내 마음과 같이 공감하고 이해해 줄 때, 우리는 안심하게 되고, 과거에 이해받지 못해 비틀리고 상처받았던 마음을 치유 받게 된다.

하물며 타인이 아닌, 내 곁의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이러한 경험이 얼마나 더 중요할까.
그러니 속에 담아두고 앓지 말고 이야기하라, 들어달라고 내 이야기를. 하지만, 그 전에 내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굴거나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상대를 비난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체크하는 것은 필수. 일단 상대가 내 이야기에 오롯이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돕는 것도 반은 내 몫이니까.

[글] 아띠에떠 미오 artietor@mhns.co.kr 

미오(迷悟):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심리학,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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