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스틸러(Scene Stealer)'.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장면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배우들을 말한다. 이들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연처럼 주목받는 조연배우들이다. 문화뉴스의 [대한민국 탑 아트스틸러]는 대중적인 주류는 아니더라도 각자의 분야에서 큰 인정을 받으며 My way'를 걷고 있는, 우리 문화예술계를 빛내고 있는 소중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무대의 백댄서나 거리의 춤으로 여겨졌던 비보이가 최근 주류 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한국의 비보이 1세대이자, 세계대회 1위를 석권한 비보이 티아이피 크루의 황대균 단장이 서있다. 세계 최강의 실력으로 한국 비보이의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는 황대균 단장. 그는 최근 비보이에 넌버벌 퍼포먼스를 접목한 '댄스컬'을 공연계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만들었다. 오로지 '춤'하나로만 외길 인생을 걸어온 황대균 단장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 황대균 단장

본인소개를 부탁드립니다. 

ㄴ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 비보이 <T.I.P CREW>(티아이피 크루)의 단장, 그리고 현재 호서예술전문학교 실용무용학부 댄스컬 전공을 담당하고 있는 황대균입니다. 

저는 춤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영화, 드라마, 뮤지컬, 콘서트 등의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가수 <박효신 콘서트>의 안무감독을 맡았고요. 또 한국문화콘텐츠를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로 댄스넌버벌 퍼포먼스 <B-SCHOOL>(비스쿨)"을 제작해 현재 업그레이드 작업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 비스쿨 포스터, 배틀 오브 더 이어 대회 모습 (기사 하단에 영상)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춤'이라는 장르에서 굉장히 다양하게 일을 하고 있는데?
ㄴ14살때 어린 나이에 춤을 시작한 이후, 고등학교 시절 함께 춤추던 친구들과 'T.I.P'(Teamwork Is Perfect) 라는 팀을 만들었는데, 그 멤버와 명칭을 그대로 이어와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운동 신경이 특출났던 저는 당시의 브레이킹이 굉장히 쉽다고 느껴졌어요. 그 후 춤은 저의 전부가 되었죠. 그러던 중, '비보이 올림픽'라고 부를 수 있는 <배틀 오브 더 이어>라는 세계 대회에 '비주얼 쇼크'라는 팀원으로 출전하게 됩니다. 관중 2만 명이 넘는 엄청난 규모의 대회였습니다. 저희 팀 퍼포먼스의 중점은 부채를 이용한 '한국'의 이미지였습니다. 마지막은 대형 태극기를 펼치는 퍼포먼스(사진 오른쪽)를 보였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고 '베스트 쇼'라는 최고의 퍼포먼스 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수상 이후 다양한 기회가 생겼습니다. 길거리 춤에서 당당히 무대 중심에 서기까지 하루 10여 시간에 이르는 고된 훈련이 오늘의 밑바탕이 됐습니다.

사실 세계챔피언이후 20대 후반까지 춤에만 몰두하다 보니 다른 일을 생각한 적이 없는데, '춤'이라는 일관된 장르에서 꾸준히 일을 하다 보니까 러브콜이 자연스레 찾아왔습니다.

   
 

새롭게 공연콘텐츠를 기획하신 목적과 배경은
ㄴ 20대 중반이 넘어서든 즈음, 춤과 관련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006년 여름 우연한 계기로 <THE CODE>(더 코드)라는 작품에서 안무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 작품은 제게 첫 경험인 만큼 공부하는 마음가짐과 도전의 의미가 컸던 작품이었습니다. 당시 그렇게 한 달 반 정도의 작업을 거쳐 완성된 작품은 제작사의 자본력 등의 문제로 단 2주라는 시간만 백암아트홀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더 코드'는 동아시아 무용가 백향주 씨와 호흡을 맞춘 댄스 퍼포먼스였습니다. 관음보살무, 고구려무희, 공작새 춤, 몽골춤 등의 동아시아 춤과 비보잉을 접목시킨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그렇게 아쉬운 마지막 공연이 끝이 나고 얼마후 예상치 못한 반가운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THE CODE>가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2006 대한민국 6대 문화상품'으로 선정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언젠가 이런 공연을 '직접' 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유는 공연콘텐츠 개발이야말로 나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자 큰 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07년 가을, 드디어 직접 제작에 성공해 "비보이사관학교"라는 제목의 30분짜리 짧은 공연을 '경주 EXPO'에서 선보이게 되었고 그 후 꾸준히 업그레이드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5년 후인 2012년에 실력을 인정받아 공연 제작사인 'WAYSBE'라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 "B-SCHOOL"(비스쿨)이란 이름으로 공식런칭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현재 직종에 대한 현황과 전망
ㄴ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대사나 노래가 아닌 춤, 마임 등인 이른바 '넌버벌 퍼포먼스'를 꾸미는 일련의 무대 콘텐츠들을 일컫는 용어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을 타깃으로 한 <쇼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류열풍에 힘입어 외국인 관광객의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고 한국 비보이, 스트릿댄서들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뜨거운 만큼 새로운 시장 개척이 가능할 거라 예상해 '난타', '점프' 뿐만 아니라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페인터즈' 등의 성공사례를 비춰볼 때 공연콘텐츠의 질과 공연 외적인 경영이 잘 어우러진다면 앞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공연개발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공연완성 후에도 저작권 분쟁과 경영실패 등 수많은 위험이 존재합니다. 경제력이 받침이 된다고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이 불충분하더라도 뜨거운 열정과 부단한 노력이 뒷받친된다면 충분히 비전이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
ㄴ 2010년까지의 목표가 '댄서로서' 세계챔피언이었다면, 2020년의 목표는 '공연콘텐츠기획자'로서 제가 개발한 공연콘텐츠가 한국을 대표하고 세계가 인정하는 공연콘텐츠가 되는 것입니다. 또 선배 댄서로서 그리고 기획자로서 다음 세대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행복한 춤을 출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저의 또 하나의 목표입니다.

현재 직종을 꿈꾸는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하고싶은 말
ㄴ 가끔 후배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무슨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까요?" 그래서 저는 "세상에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없어 하지만 적게 버는 일도 없어"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 더욱 어떻게 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선택할 때 그 이유가 단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라서…라면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돈 버는 일을 찾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돈이 벌릴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이 좀 더 행복하게 해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후배들에게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돈이 안 되는 일을 젊을 때 많이 경험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쌓인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인맥으로 인해 더 많은 좋은 기회가 찾아올 거라 확신합니다.

문화뉴스 이밀란 기자 pd@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