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의 베르톨트 브레히트 원작 정의신 극본 연출의 '코카서스의 백묵원(白墨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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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1898년 바이에른주 아우크스부르크 출생. 뮌헨대학 의학부 재학 중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위생병으로 소집되어 육군병원에서 근무했다.

반전적이며 비사회적 경향을 보이면서, 제대군인의 혁명 체험의 좌절을 묘사한 <밤의 북소리 Trommeln in der Nach>》(1922)로 클라이스트상(賞)을 수상했다.

희곡 <바알 신 Baal>(1919)과 <도시의 정글>(1923) 등이나, 풍부한 환상과 냉정한 객관성, 그리고 시민사회에 대한 도발을 곁들인 서정시 <가정용 설교집 Die Hauspostille>(1926)으로 주목을 받았다. 정서적이며 환상적인 연극과 오페라의 부정을 목적으로 한 스캔들에 찬 오페라 <마하고니시(市)의 흥망>(1929)과 음악극 <서푼짜리 오페라 Die Dreigroschenoper>(1928)를 시도하는 한편, 서사적 연극의 발상을 발전시켜, 사회 기구를 비판하는 희곡에 많이 반영시켰다.

1920년대 후반부터 마르크스주의에 접근하여, 교화(敎化)를 목적으로 하는 일련의 교육극과 고리키의 작품을 각색한 <어머니 Die Mutter>(1930)와 <도살장의 성(聖) 요한나 Die heilige Johonna der Schlachth>(1932)를 썼다. 1933년 나치스가 정권을 잡자 그는 덴마크로 망명하여, 반(反)파시즘 활동을 계속하면서 <제3제국의 공포와 빈곤 Furcht und Elend des Dritten Reiches>(1938)과 <카라르 부인의 소총 Die Gewehre der Frau Carrar>(1939) 등의 희곡을 집필했고 동시에 많은 정치시(政治詩)를 썼다.

이 시기의 작품에는 종전의 사실주의 수법으로의 접근이 다소 보이며, 다음 완성기의 여러 작품으로 계승되어 갔다. 1940년에는 핀란드로 옮겼고, 1년 뒤 다시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정착하였는데, 대표작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1939) <푼틸라씨와 그의 하인 마티 Herr Puntila und sein Knecht Matti>(1941)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생애 Das Leben des Galileo Galilei>(1943), 그리고 <코카서스 백묵원 Der Kaukasische Kreidekreis>(1945) 등은 극장과의 관계가 모두 단절되었던 망명 중에 완성하였다. 또한 <루쿨루스의 심문 Das Verhr des Lukullus>(1941)<시몬 마샤르의 환각 Die Gesichte der Simone Machard>(1943),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슈베이크 Schweyk in zweiten Weltkrieg>(1943) 등도 이 시기의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비미(非美)활동위원회의 ‘빨갱이잡기’가 시작된 1948년, 그는 일단 스위스로 갔다가 그 곳에서 <안티고네 Antigone>(1948)와 <파리 코뮌의 나날 Die Tage der Commune>(1948)을 썼으며, 당시까지의 그의 연극론을 <소사고 원리(小思考原理)>라는 책으로 간추렸는데, 이때 동독으로부터의 초청을 받고 동베를린으로 옮겼다. 1949년에는 아내인 여배우 헬레네 바이겔을 중심으로 극단 ‘베를리너 앙상블’을 결성하여, 그의 망명 중의 여러 작품과 고전을 개작한 <가정교사><북과 나팔> 등을 연출하면서 실천 활동에 정력을 쏟았다. 만년에는 더욱 자기의 연극 체계를 발전시켜 ‘변증법의 연극’을 창도(唱導)하면서 연극인을 양성하던 중 1956년에 사망했다.

<코카서스의 백묵원(Der Kaukasische Kreidekreis)>은 원나라의 '석필이야기'를 1944년 브레히트가 번안한 작품이다. 기독경전 솔로몬 왕 편에도 흡사한 내용이 있다. 1948년 미국에서 첫 공연이 이루어졌고, 1954년에 베를린에서 브레히트 자신이 연출해 공연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이상우, 채윤일, 유중렬 채승훈, 정진수 등 연출가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각기 특성을 발휘해 연출했고, 1999년 학전소극장에서 이재진 교수의 번역, 김석만 연출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이 성공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코카서스의 백묵원>의 시대적 배경이 된 그루지아는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 위치한 흑해주변 국이다. 10여개의 소수민족이 끊임없이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분쟁이 이어졌고, 한 때 소비에트 연방국이 되기도 했다가 러시아로 바뀐 후 독립하여 조지아라는 나라로 되었으나, 그 분쟁은 21세기까지 이어져 내전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분쟁 중 영주가 사망하자 영주부인은 황망히 피란을 하면서 유아를 버리고 떠난다. 그 집 하녀가 그 아이를 발견해 자신이 데려다 키운다. 하녀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청년이 있지만, 청년은 전쟁터로 끌려간다. 하녀가 온갖 고생을 하며 자식을 기르는 것을 본 오라비가 누이를, 병들어 남자구실도 못하고 누워 지내는 부농청년에게 시집을 보낸다. 10년 만에 내전이 종결되고 영주부인이 돌아온다. 그런데 사망한 영주의 재산상속을 하려니, 상속권이 버리고 간 아이에게 있는 것을 알고,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 하녀가 데려다 기른 것을 알게 된다. 영주부인이 아이를 강제로 아이를 빼앗아 오면서 소송이 벌어진다. 판사는 이 지역 서기노릇을 한 인물로, 이권 차리기는 물론 뇌물 받기를 좋아하는 부패공무원의 표상이다. 거기에 전쟁터로 간 하녀와 결혼 약속을 한 청년이 돌아오고, 전쟁이 끝난 것을 안 하녀의 불구남편이 언제 아팠느냐는 듯 멀쩡한 몸으로 벌떡 일어난다. 농부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불치병환자행세를 한 것이라는 게 드러난다.

드디어 재판이 열리고, 판사는 법정에 커다란 백묵원을 그려놓고, 그 안에 아이를 세우고, 그 양쪽에 친모와 양모를 세워 각기 어린아이의 팔을 끌어당겨 이기는 쪽에게 친권을 부여하겠노라는 이야기를 한다. 끌어당기기에서 양모인 하녀가 아이의 비명소리에 참지 못하고 그만 아이의 손을 놔 줌으로써 친모에게 아이를 빼앗기지만, 판사와 참관인 모두가 양모인 하녀의 모성애를 긍정적으로 평하고, 아이의 친권을 양모에게 부여하는 감동적인 귀결로 연극은 끝이 난다.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각 극단에서 변형된 제목이나 축소시켜 공연을 해 왔는데, 창극으로는 이번이 초연이다. 창극은 원작내용 중 1인의 오라비는 2인으로 바꾸고, 하녀를 추적하는 병사의 수를 늘리고, 1인의 변호인을 3인으로 늘리고, 판사를 여인으로 바꾸고, 남녀등장인물을 성별을 바꿔 출연시키고, 극 줄거리를 생략한 부분도 있지만, 극 진전과 전개는 원작에 충실하고, 원작을 뛰어넘는 부분도 눈에 띈다.

무대는 국립극장 대극장의 무대 3면에 객석을 마련해, 지난번 마당놀이 심청에서처럼 둘러앉아 관극을 하도록 좌석배치를 했다.

배경 정면에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이층 오른쪽에 연주석을 마련해, 관현악기와 타악기 건반악기를 연주하고,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헛간이 나타난다. 그 앞으로 높은 사각의 무대를 마련해 재판정의 판사석이나 증인석이 되기도 하고, 객석 가까이에도 지하에서 단이 솟아오르거나 내려가 장면변화에 사용된다. 천정에서 좁은 나무발판으로 연결된 줄다리가 내려와 천길 계곡을 건널 때 사용되고, 1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천정에서 줄다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함박눈은 관객의 탄성과 더불어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1, 2부 모두 출연자들의 합창과 율동, 그리고 의상변화와 가발착용이 인상적이고, 법정장면에서 서민들이 무대바닥에 그리는 백묵원 역시 명장면이고, 대단원에서 상의를 벗은 백색내복차림의 출연자 전원의 합창과 윤무는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유수정, 서정금, 조유아, 최용석, 허중열, 김미진, 남태웅, 이소연, 김유경, 최호성, 김준수, 이광원, 이광복 그 외 국립창극단원의 호연과 열창은 국립창극단의 발전적 앞날을 예측키에 충분하다.

예술감독 김성녀, 작창 작곡 김성국, 안무 이경은, 무술지도 쿠리하라 나오키, 무대디자인 이터섭, 조명디자인 김창기, 의상디자인 김지연, 소품디자인 강민숙, 분장디자인 김종한, 무대협력디자인 박은혜, 조연출 강현주, 연출통역 오유리 등 스텝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국립창극단의 베르톨트 브레히트 원작, 정의신 극본 연출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걸작창극으로 창출시켰다. #문화뉴스 공연칼럼니스트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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