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 순수의 시대가 아니라 그냥 섹스의 시대
  • 아띠에터 이형석
  • 승인 2015.04.0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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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자들의 술래잡기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신화의 시대에는 신이 있었다. 영웅의 시대에는 영웅이 있었다. 그렇다면 순수의 시대에는?

신하균이 처음 사극영화에 출연한 그 자체만으로 화제를 모은 <순수의 시대>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이런 희망 사항을 갖고 접근하지 않으면 사실 이 영화는 가벼움에 큰 족적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뻔했다.

​농담이 아니다. 투톱이라 할 수 있는 이방원 역의 장혁에게서라면 그런 희롱이 어울리겠지만 여진족 어미의 핏줄을 물려받은 김민재 역의 신하균에게는 그것은 차라리 견강부회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천한 계집(?) 하나에 목숨을 거는​, 괴상한 선택을 말이다. 여자들의 두 눈이 커지는 이유지만 왠지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그건 절대로 낭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 정도전의 사위로 등장하는 김민재역의 신하균

사극에 스릴러적인 요소가 가미된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은 이것이 진짜 역사적인 사실인지 아닌지를 궁금해한다. 소위 팩션이라는 불리는 장르에 적합한 이 영화는 논란 부를 떠나서 일단 수작이다. 웰 메이드가 맞다. 빅히트와는 거리가 있지만 완성도 측면에서 드라마가 안정적이다. 그리고 중량감 있는 두 배우, 신하균과 장혁의 앙상블 또한 일품이다.

   
 

그 두 남자를 섬겨야 하는 얄궂은 운명에 내맡긴 가희역의 강한나 역시 2013년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노출 드레스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노이즈 마케팅의 배우라는 오명을 떨쳐버리고 제법 장렬한 눈빛 연기를 선보였는데 가히 성공작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노출에 대해 몸을 사리지 않았기에 자칫 거기에 매몰될 수 있었는데 용케도 그런 혐의에서는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여배우에게 있어서 노출은 필름 안에서나 필름 밖에서나 영화계 밥을 먹는 날까지 벗어나기 어려운 족쇄가 아니던가.

<강남, 1970>과 같은 현대극에서도 그랬지만 <순수의 시대>와 같은 사극에서도 요즘 여배우들은 과감하다 못해 누가 누가 잘 벗나를 경쟁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이런 경쟁이 남자 관객들한테는 눈요깃거리로서 즐거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쩌면 정 반대의 부작용을 낳는지도 모른다. 순수의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이 되바라진 작태는 결국 육욕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허망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건, 시선 몰이를 위한 미끼로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여자배우들이 시대와 맞지 않는 몸매 대결에 승부를 건다면 남자배우들은 한결같이 근육질의 방탄장갑 같은 상반신을 과시하는 쪽으로 열을 올린다. 동안과 몸짱에 식객의 열풍이 삼위일체가 된 우리의 남다른 세태 때문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리고 이것을 프로 정신 철두철미한 배우들의 서비스라고 누군가 '간증'한다면 ​특별히 더 할 말은 없지만 우리가 감동을 하고 재미를 느끼는 것은 사실상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본질이 아닌 것이 눈길을 끄는 것은 결국 영혼 없는 호객 행위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장진 사단의 황태자인 신하균의, <300>에 출연한 배우들 그 이상 혹은 버금​ 가는 몸매와 적나라한 두 남녀의 끈적한 교접은 제목에 대한 의문부호를 하나 만든다.

순수의 시대가 아니라 그냥 섹스의 시대가 맞는 것 같다. 

   
▲ 가희역을 맡아 열연한 강한나

감독이 의도하고자 한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는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이 다 눈치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순수하다. 하지만 위험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평범은 구태의연 혹은 식상하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운 조선이라는 나라, 개국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렸기에 그 역사적 정통성에 있어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왕조 창업의 초창기에 벌어진 궁중 내 권력 투쟁은 김민재의 장인으로 등장하는 정도전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도 남는다. 사극 정도전의 열풍 때문인지 뇌리에 각인한 정도전과는 거리가 먼 노회한 권모술수가의 몰락에 대해서 동정이 가지 않을 정도다.

그뿐이 아니다. 억불숭유의 정책으로 유교 사상에 입각해 아버지와 아들의 ​위계질서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던, 과장과 호도(糊塗)의 시대에 한 여자를 두고 아비와 자식이 서로 취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상놈의 짓거리를 넘어서는 대역죄로 다스려야 할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적을 제거하기 위해 이토록 빼도 박도 못할 명분이 어디 있겠는가? 천하의 이성계라 할지라도 차후에 태종이 될 방원의 이 농간 앞에서는 굳게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면전에서 칼을 휘두르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을 그러나 이 영화는 묘사하지 않는다. 어차피 권력이란 순수한 것이 아니기에 600년 전의 '순수'는 오직 하나, 버림 받은 자와 그것을 견딘 자, 그리고 다시 버림받은 자들의 사랑이 될 수 밖에 없다. ​

역할을 강한나가 맡은 가희가 이방원의 사주를 받아 수행했다는 발상은 참신하다.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런데 왜 결말이 고스란히 도식적인 것인지 불만스럽다. 상상력의 불꽃이 시들어가는 이 패잔병적인 결말에서 가희를 떠나보내고 김민재가 홀로 일당백의 싸움을 벌이는 나루가 불타버리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모든 것을 그렇게 불태워버릴 요량이라면 관객이 넌지시 앞지른 그 뻔한 결말에 대해서도 전복의 미소를 날려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그것이 21세기, 높아질 대로 높아진 우리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두 남녀는 결국 물속에서 하나가 된다. 지옥이나 마찬가지인, 피가 난무하고 살이 찢어지는 지상의 불 에서 이탈해 더 낮은 세계로 던져지거나 버림받은 자들은 그 속에서 새롭게 눈을 뜬다.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그렇게 믿는 그 마음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여전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마음의 미로를 관통해 시공을 초월한 사랑의 행위가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닐까?

   
▲ 또 다른 근육미의 강자, 여성들의 시선강탈자로 서비스를 톡톡히 한 신하균의 수련 장면​
   
 

영화, 조금 늦게 나왔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드라마와 스크린 모두, 사극 열풍이다. 몸값이 높을 수 없는 불리한 개봉 스케줄 때문에 조용히 스러진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도 하나 건진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잠시나마 순수함을 되새겨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많이 오염되어 있으니까 이런 기교 없는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 같은 것을 통해서라도 가끔은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순수의 시대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관객들의 몫으로 남긴다. ​#문화뉴스 아띠에터 이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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