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흥보씨' 리뷰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로 국립창극단과의 견고한 호흡을 보여준 바 있는 고선웅 연출가가 이번에는 창극 '흥보씨'로 그 견고함을 공고하게 다지고자 했다.

고선웅은 이번 작품의 연출 뿐 아니라 극본까지 맡았다. 기존 판소리 '흥보가'를 현대적인 해석의 창극 '흥보씨'로 탈바꿈했는데,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은 단연 파격적 변화를 보여준 서사이다. 이 변화의 굵은 축은 서사의 개연성이 담당했다. 한 뱃속에서 난 두 형제가 어쩜 그리 다른 성격을 가질 수 있는지, 또한 가족을 철저히 외면할 수 있는, 상식에서 벗어나는 놀보의 악한 언행들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택한 서사는 두 형제의 출생의 비밀이었다. 

 

 

놀보(최호성)는 연생원(김학용)이 출타한 틈에 황씨(김차경)가 건달과 동침해 낳은 혼외자식이고, 흥보(김준수)는 연생원이 친척 문상을 다녀오던 길에 데리고 온 양자다. 놀보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은 알지 못한 채, 흥보의 출생을 알게 되자 흥보를 내쫓으며 더 이상 대놓고 미워할 수 없는 '형제'가 아닌, 마음껏 미워해도 되는 '남'으로 여길 수 있게 된다. 또한 형과 아우였던 둘의 관계는 흥보의 착하고도 어리석은 선택에 의해 역전 관계가 성립된다. 아우를 위하고 돌봐야 하는 형과 철없는 동생의 관계가 역전되며, 흥보의 삶이 앞으로 얼마나 고단해질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며 예고해주기도 한다. 

여기서 관객들은 놀보를 향한 미움의 감정의 정당성을 더욱 확고히 보장받는다. 유교적으로 가장 옳지 못한 관계에서부터 탄생된 놀부라는 존재가, 흥보를 부정한 출생이라며 단죄하는 어불성설, 또한 원래는 형이었던 흥보가 인위적인 계약에 의해 동생이 되어 온갖 수모를 당한다는 점은 이 역전관계의 비정상성을 부각시킨다.

 

 

또한 흥보 가족의 구성이 흥미롭다. 그동안 궁핍한 형편에도 아이를 줄줄이 낳아 12명의 대가족을 이뤘다는 흥보에게는 늘 '무책임하다'는 평이 뒤따르곤 했다. 그러나 창극 '흥보씨'에서는 흥보가 불우한 아이 10명을 거둬 자식으로 삼고, 아이를 낳지 못해 시댁에서 쫓겨나 자살하려는 정씨를 아내로 맞이하며 대가족을 이룬다. 흥보의 선한 성격을 일관적이고 공고하게 뒷받침해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현대적 방식으로 흥보와 놀보를 이해하려고 했던 고선웅의 노력은 문제점에 봉착한다. 흥보의 고운 심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기 때문이다. 놀보가 부당한 방식으로 흥보 가족들의 노동력을 착취해도, 쫓겨나고 매 맞아도, 놀보의 악행에 의한 처벌을 대신 받으러 가서도 흥보는 여전히 놀보 걱정뿐이다. 또한 현실과 동떨어진 흥보의 문제 해결방식은 현대적 해석으로 잘 각색돼온 그동안의 서사 구조를 의아하게 만든다. 

 

 

2부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흥보에게 '욕심을 버리면 지상의 감옥을 떠나갈 수 있다'고 얘기한다. 흥보 가족의 궁핍함이 '무소유'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생계 보장이 힘든 흥보에게 '욕심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흥보는 그것에 감명 받아 위기에 처한 제비(춤꾼)를 도우며 그 무소유의 진리를 전파한다.

이에 대해 고 연출은 '흥보가 박씨로 말미암아 물질적인 부를 얻는 과정이 없어진 대신 이를 넘어서는 무소유의 자유를 얻게 된다'고 설명하지만, 그것은 흥보의 선함을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그리지 않는 작업에서 적합해질 수 있는 생각이 아닐까. 지속되는 선행에도 온갖 불행을 맞이하는 흥보를 보며, 노력해도 개선되지 않는 개개인의 좌절의 역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선한 흥보가 거듭된 불행에 대한 타개책으로 '무소유'의 진리를 깨닫는 것은, 앞서 다양한 생각을 교차시킬 수 있게 전개했던 서사에 비해 다소 진부하고 허무한 결말로 귀결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편, 병풍의 골격을 취하고 있는 무대 배경과 다채로운 이미지의 결합은 고선웅 식의 어렵지 않은 이미지 중심의 추상적 무대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또한 개별 인물에게 부여된 감각적인 부채는 다양한 디자인과 사용 방식을 통해 각 캐릭터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줘 시그니처 오브제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작창과 작곡, 음악감독을 맡은 이자람은 국립창극단과의 협업이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락을 통해 인물의 세계관을 더욱 명확하고 신명나게 묘사하며, 국립창극단 배우들의 각 개성과 매력을 극대화시켰다. 

김준수, 최호성, 최용석, 이소연, 유태평양 등 국립창극단 단원들의 열창과 흥겨운 소리, 또한 새로운 흥보와 놀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창극 '흥보씨'는 지난 5일부터 1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됐다.

key000@mhns.co.kr 사진ⓒ문화뉴스 MHN 이현지 기자,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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