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 1, 박민성, 유승현, 정원영, 유희제, 김바다, 홍승안, 김준영, 도지한
ver 2, 서이숙, 정재은, 배종옥, 황영희. 손지윤. 우정원. 이상아, 지우

[문화뉴스 문수인 기자] 연극 분장실 ver 1이 8월 7일부터 9월 12일까지 성료했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분장실 남자버전을 선보인 ver 2가 9월 19일에 개막했다.

원제는 ‘楽屋-流れ去るものはやがてなつかしき.’, ‘분장실-흘러가는 것은 머지않아 그립다’로 시미즈 쿠니오는 희곡 첫 장에 어둠 속 거울들이 쨍쨍 빛나며 이 시가 관객들에게 닿길 바랐다.

어둠 속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고 믿어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 속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프고, 모든 것은 순간적이고 지나가는 것이나, 그러나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연극 분장실 버전 2는 1과 달리 원작의 대본대로 1장을 꾸렸다. 배우들이 손거울을 들고 어둠 속에서 말했다.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될 것이라며 주문처럼 읊는 말은 연극의 주제를 관통한다.

(왼쪽부터}A역에 박민성, B역에 유희제/사진=더웨이브 제공
(왼쪽부터}A역에 박민성, B역에 유희제/사진=더웨이브 제공

전 버전에서 A와 B가 유령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니, 버전 2에서 반전은 있을 수 없었다. A와 B가 분장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유령임을 처음부터 보여주고 시작한다. 다만 그들의 사연 사연에 더욱 초점을 맞춰 깊은 이야기를 건넨다.

연극 <분장실>은 배우들의 욕구와 쉽게 해소되지 않는 갈망을 시대적 배경과 함께 엮어 다루는데, 남자버전에서는 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버전2의 A는 일제강점기 시대 친일파 집안에서 자라 그것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유학생이었고 B는 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 이념 격분의 시대인 1950-60년대를 외줄타기 한 듯 지내온 인물이었다.

(왼쪽부터)A역에 유승현, B역에 정원영/사진=더웨이브 제공
(왼쪽부터)A역에 유승현, B역에 정원영/사진=더웨이브 제공

그 시대의 주체적인 행동과 결정은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이 유리했고 그럼으로 전쟁터에 떠밀려 가 자신의 올곧은 남성성을 과시해야 했던 일부를 조명한 것 같았다. 

두 인물은 ‘남자’가 할 수 있는 ‘분장실’을 보여주었고, 역사적 시대적 한계 속 갇혔던 실존할 것 같은 인물의 처절한 독백을 재치있게 풀어냈다.

그렇게 A와 B의 연기 인생은 비극처럼 끝나있어 보였다. 혼란의 연속과 불안의 열거였고 그것은 예나 지금의 C와 D에게나 불변의 법칙이었고 결국 삶에선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려준다.

A와 B역을 맡은 배우들을 비롯해 개개인 연기력은 좋았지만 대사들이 자꾸 맞물렸다. 끝까지 듣지 못한 대사들도 꽤 있어 아쉬웠다. 서로의 호흡을 알고 지금 내 앞에서 내게 이 말을 건네는, 저 말을 던지는 사람을 인식하며 듣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B역할을 맡은 정원영 배우의 재간이 특히 인상 깊었다. 다른 배역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관객들을 웃음 터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나만의 축적을 담는 그릇 

(왼쪽부터)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C역에 김바다, D역에 김준영/사진=더웨이브 제공
(왼쪽부터)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C역에 김바다, D역에 김준영/사진=더웨이브 제공

버전1과 같이 ‘세 자매’의 공연, 그 뒤 분장실.

‘니나’역할을 소화해내고 있던 C에게 무대공포증으로 공연에 서지 못했던 D가 찾아와 이제 자신의 배역이었던 ‘니나’를 달라고 말한다. 이론은 그렇게 잘 알면서, 대사는 다 외웠으면서 실전에선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는 D. 

C는 원래도 자신의 것이었기에 줄 수 없다며 ‘'축적'에 대해 네가 알아?’라고 묻는다. 

(왼쪽부터)C역에 홍승안, D역에 도지한/사진=더웨이브 제공
(왼쪽부터)C역에 홍승안, D역에 도지한/사진=더웨이브 제공

A,B,C,D의 캐릭터는 각각 자신이 축적한 무언가를 재료로 극 속에서 연기한다. 

혼란과 불안은 축적되어 언젠가는 재료가 될 거라는 믿음. 정착되지 못하고 늘 빗겨나가는 내게도 연륜이라는 것이 쌓여가고 있다는 게 착각이 아니었으면 하는.

연극 <분장실>은 끝없이 떠오르는 삶의 불신이 작은 거울 조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 조각을 마주할 때면 나를 반사하고 있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은 의심이 피어오르지만. 사실 다른 어떤 것과 이미 부딪쳐 나아가던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반사한 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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