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이 선보이는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인상적인 군무의 연출, 성공적인 무대화
소설 원작 느낌을 그대로 반영하긴 아쉬워
17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서 공연

[문화뉴스 문수인 기자] 서울예술단에서 선보인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작가 박지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을 극작으로 옮기는 작업이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된다. 소설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아이러니와 물음, 쉽사리 단정 지을 수 없는 소설의 주제, 목에 걸린 작은 가시처럼 남은 이물감이 무대화가 되어서도 객석에 전달될 수 있을까 싶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라는 작품이 가진 서늘함과 뭉클함이 무대가 선사할 수 있는 음악과 군무로 더 웅장하게 드러나는 점은 인상 깊었다. 하지만 그 방대한 양을 가져오기는 쉽지 않았음을 넘버와 대사의 연결이 툭 끊기는 점에서 드러났다. 소설에서 이 작품을 관통하는 인상적인 대사들이 인물을 통해 다양하게 구현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가무극이라는 장르인 것을 유념했을 때, 특히 군무의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곡선의 움직임보다는 각이 나 있고 안무진들이 일직선으로 선 동선을 많이 구현한 느낌이었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어느 인물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기보다 그 인물을 통해 주어지는 차가운 질문에 답을 내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라고 내준 시간이었다.

‘완벽한 인간의 역사는 악마의 농담이었다’

작품의 세계관은 상위계급 1지구부터 하위계급 9지구까지 분리된 계급사회이다. 그중 가장 꼭대기에 속해있는 다윈 영. 문교부 장관인 그의 아버지 덕인지는 몰라도 최고 중에서 최고들만 모인 명문 학교 프라임스쿨 모범생이다. 

그곳에선 1지구인 자신들이 지배하는 계층이라는 인식을 굳게 하고 관련된 이념을 가르친다. 심화하는 우리 사회의 계층구조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번외로,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에 갇혀있는 한국 사회를 부정하며, 기어코 위에 선 자들은 딱히 연극을 찾아보진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다. 

다윈 영의 아버지 니스 영, 그의 아버지 러너 영은 모두 살인자이다. 다윈 영은 자신의 아버지가 과거 그의 학교 친구 제이 헌터를 죽였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우상이었던 아버지의 죄를 알고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결국 아버지의 죄가 세상에 드러날 증거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친구 레오 마샬을 죽이게 된다. 이 가문의 악의 유전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불완전한 인류는 죄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죄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작품에서처럼 생존을 위해서였다고 말하는 ‘악’의 시발점과 그 유전은, 어리석게도 인류가 수습하고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언제나 ‘새벽이 오면 나는 나의 세계와 결별한다. 난 어른이 된다. 용서받을 수 없는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지은 그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된다’ 

서구권에서는 열여섯 살을 어린아이와 어른의 기로 사이에 서는 기점이라고 한다. 공연만을 보았다고 했을 때 다윈의 사건은 ‘어떤’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하고 싶지 않다. 짓밟고 죽여서라도 살아가려는 다윈만이 있다.

이 아이는 어른들이 만든 세계에서 보고 들은 것들, 깨닫고 충격받은 것들을 나름대로 파생시키고 조립시켜 자신의 세계를 만들 것이다. 본질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사진=서울예술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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