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고독함에 대한 얼마나 고독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송수진 artietor@mhns.co.kr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연극인, 연출 송수진입니다. 극단 묘화 대표.

[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송수진] 고독함이란 엄청나게 뜨거웠다가 밍밍하게 식어버린 차 같은 외로움보다 훨씬 더 무거운 질감의 그 무엇으로 진득하게 졸여진 그것이 액체가 되어 숨 쉴 때마다 나올 듯 딸려 올라왔다 다시 내려가는 가래 낀 폐 속의 그르렁거림 같다. 내 안에서 끄집어내려 나 자신을 생채기 내지만 결국 그 진득거림은 거미줄처럼 손가락 구석구석 엉켜서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야 만다. 

아마도 각자 다른 시기에 다른 모습으로 다른 방법으로 고독함은 스멀스멀 올라올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가장 인간은, 그리고 나는 고독해지는가? 외로움이 지나간 자리? 쓸쓸함이 머물러 아스팔트에 굳어버린 껌처럼 변했을 때? 

그리고 고독함을 이야기하기엔 진정 고독함을 알아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고 특히나 무대 위에서 고독함을 이야기할 때 자신의 고독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한 채 텍스트에 의존해 고독함을 목이 터져라 외치기만 한다면……

그 배우가 얼마나 발음이 좋고 화술이 좋아도 그 연출이 얼마나 연출력이 뛰어나다고 이야기해도 관객이 기억하는 것은 시끄러운 외침과 자신감 없이 허영에 들뜬 몸짓, 다만 텍스트의 의미만 무대 위에 덩그러니 남아있을 것이다. 

정말 비참한 것은 그렇게 외적으로 노력해도 관객의 심장엔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고독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각자의 고독에 몸부림치다 옆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에너지를 쏟을 대로 다 쏟고 나니 나도 피투성이더라. 결국 내 상처는 내가 핥는다. 나는 내 고독에 키스한다.

 

 

미친 키스는 비극적인 결말도 아니고 슬픈 사랑 이야기도 아니고 불륜 이야기도 아니었다. 단순히 죽음이 나온다고 해서 비극적인 결말이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모두 죽음만큼 깊은 고독 속 에서 지속적인 피폐함을 겪을테니 말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남녀관계 속의 외로움으로 비롯된 고독함이 아닌 인간 본성의 고독감을 이야기 하려는 미친 키스. 과하지 않아도 우린 이미 그 고독에 대해 알고 있고 그 고독을 쥐어짜지 않아도 이미 그 고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줄 알고 있다. 

많은 것들이 변했고 시간도 많이 지났다. 이제 조금 다른 방법을 찾아도 좋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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