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정윤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소장

2020년 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건축주가 화상으로 미팅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연락이 왔다. 집에 있던 중이라 회의를 시작하기 전, 주변 조명 때문에 얼굴에 그림자가 지지는 않는지, 뒤 공간은 정돈이 잘 되었는지, 소리는 잘 들리는지 등을 확인하며 화상 회의를 위한 미팅 공간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일상이 되어버린 비대면 미팅들이라 크게 괘념치 않지만 당시에는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이처럼 코로나 19가 시작되고 무언가 크게 바뀔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들도 이제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자리를 잡아나가는 단계인 듯하다.

건축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있으리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기존의 일상과 새로워진 삶을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할 것인지, 우리가 마주한 작은 변화들을 공간에 어떻게 담아낼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설계를 막 시작한 집이 한 채 있다. 학교 선생님인 건축주는 설계가 거의 마무리 되어 갈 무렵, 안방에 작은 서재를 만들고 싶다고 하였다.

거창한 공간은 아니고 침실 한 곁에 1인용 작은 책상과 의자가 들어가는,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공간 정도의 미팅룸이면 된다고 하였다.

비대면 수업들이 많아지면서 거실이나 다른 방에서 보다는 다른 가족 구성원을 신경 쓰지 않고 안방 한편에서 수업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는 집이 가장 사적이고 편안한 쉼의 공간이었다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은 ‘우리 집에 있는 나의 공간’의 소중함이 절실해진 것이다. 

 

D주택 안방 평면도. 작고 간결한 독립공간이 있는 안방/사진=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제공
D주택 안방 평면도. 작고 간결한 독립공간이 있는 안방/사진=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제공

“주택을 지으며 가장 꿈꾸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설계 시작 전 건축주에게 설문지를 보낼 때 묻는 공통적인 질문이다.

예전엔 커다란 아일랜드, 팬트리와 같이 가족들이 모이는 부엌과  식사 공간, 툇마루가 있는 마당, 꽃과 나무를 가꿀 수 있는 정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와 더불어 나만의 작은 서재, 욕조를 넘어선 목욕탕,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수영장, 풍경을 보며 달릴 수 있는 운동실 등 새롭고 다양한 공간들을 소망한다.

밖에서 하기 어려워진 것들을 혼자 또는 지인들과 소규모로 즐기고 싶어 하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집이 물리적으로 커지기도 하지만 심리적 크기 또한 커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H주택 계획 이미지. 목욕을 즐기는 건축주를 위한 목욕탕/사진=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제공
H주택 계획 이미지. 목욕을 즐기는 건축주를 위한 목욕탕/사진=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제공

또 하나 달라진 점은 바로 작업실이다. 요즘 TV를 보다 보면 쉬는 날, 집에서 자신만의 작업실로 향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예전에는 예술가들, 전문가들이 사용하던 작업실이 이제는 여유 시간에 취미를 즐기고, 친구들과 조촐하게 모임을 갖는 일상의 공간으로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집이 아닌 ‘자신만의 외부공간’을 갖게 된 것이다. 개인 사무실, 공유 오피스와는 살짝 결이 다른 개념이다.

땅값과 집값이 오르며 큰 집을 소유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합리적인 공간에서 생활하고 혼자 또는 함께 사용하는 사회적인 공간을 두어 마치 사적이고 안온한 안채를 걸어 나와, 일상을 향유하고 마음에 맞는 지인과 교류하는 활기찬 사랑채로 향하는 것처럼 생활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렇게 공간을 새롭고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구체화하는 시각이 반가우나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앞서 말한 공간을 바로 그리고 직접 만들고 가질 수 있지만 우리나라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 허탈함을 느끼는 변화가 아닐는지, 공간에서마저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직접 마주한 현상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 팀은 작년 제주의 공공건축가들의 생각을 담은 ‘행복한 도시공간 만들기-제주 공공성지도 2021’ 전시에서 ‘적층된 도시, 보행의 도시, 소소한 도시’라는 개념을 소개하였다.

그 중 ‘소소(小少)한 도시’는 도시에서 사용하지 않는 쉼터나 빈집들, 공공건물에서 사용하지 않는 작은 실들을 조사하고 바꾸어 그 근처에서 사는 시민들이 필요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고 30분 단위로 예약하여 사용 할 수 있는 작은 작업실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하고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실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코로나 19가 가져온 변화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고 행복 할 수 있는 공간은 어떤 것이 있을지 다양한 대안들을 고민하고 시민들과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제주의 공공건축가 (총괄 건축가, 김용미) 들이 모여 제안한 행복한 도시공간 만들기-제주 공공성지도 2021 전시중 에이루트의 제안/사진=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제공  ©훅스미 이상훈
제주의 공공건축가 (총괄 건축가, 김용미) 들이 모여 제안한 행복한 도시공간 만들기-제주 공공성지도 2021 전시중 에이루트의 제안/사진=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제공 ©훅스미 이상훈

나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변화가 결국엔 많은 것을 바꾼다는 것을 몸소 겪는 요즘이다.

건축에서도 순식간에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부작 사부작거리며 변화되는 공간들이 많아지고, 그 공간들이 모이고 모여 어느 순간 돌아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공간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지금 우리의 일상이 생각보다 아주 크게 변화했다고 느끼지 않지만 코로나 19 이전의 시대는 너무 아득한 기억처럼 느껴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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