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홍일(음악칼럼니스트)

서울 클래식 고어들이 오스모 벤스케의 서울시향 상임지휘자 취임이후에 서울시향 연주회에서 가장 많이들은 연주곡들의 작곡가중 한명이 다른 여타의 국내 오케스트라들과 달리 바로 쟌 시벨리우스의 연주곡들이 아닐까 한다.

오스모 벤스케가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것들 중에서 평단의 호평을 받은 것이 다름 아닌 베토벤과 시벨리우스 음반들이었고 서울시향과의 오스모 벤스케 연주곡들이 베토벤과 시벨리우스 연주곡들이 압도적으로 많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런 연유에서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기억으로는 오스모 벤스케는 재임 3년 가까이 베토벤 교향곡 1번과 연말의 베토벤교향곡 제9번 ‘합창’의 베토벤 곡들의 지휘 외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의 두 번의 연주,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1번과 3번의 2020년과 2021년의 서울시향과의 잇따른 지휘,

그리고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과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들의 연주인상이 짙은 반면 상대적으론 벤스케가 서울시향과의 연주곡들 중에서 지휘봉을 잡은 말러 교향곡은 취임 연주회로 선택한 말러교향곡 제2번 ‘부활’과 소프라노 임선혜와 협연한 실내악버전의 말러교향곡 제4번, 올해 2022년 지난 5월12-13일 연주한 말러교향곡 제10번 교향곡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뿐이다. 

 

오스모 벤스케가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부각시킨 2022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4번 연주회. (사진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가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부각시킨 2022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4번 연주회. (사진=서울시향)

 

벤스케가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라는 사실, 다시 한 번 부각

그럼에도 오스모 벤스케 자국 핀란드의 작곡가이기도 하고 미네소타심포니와 연주한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4번이나 제7번 연주를 다시 듣다 보면 시벨리우스 역시 Symphonic Giants의 한명에 속하는 위대한 작곡가였다는 생각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성과 풍토성을 기반으로 유럽풍의 스타일로 발전해 나간 시벨리우스의 작풍은 오스모 벤스케가 교향곡 7번에서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며 음악평론가들로부터 진정한 시벨리우스 애호가를 위한 음반이라는 찬사를 받는 음반이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1번 음반도 고음질의 SACD와 원숙한 벤스카의 지휘 아래 미네소타 오케스트라가 풀어내는 풍성한 양감의 현 파트와 화려하고 뛰어난 관악 파트는 이전 라티 심포니와의 레코딩과는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평을 들어왔다.

특히 곳곳에 차이코프스키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선율이 매혹적인 제 1번은 화려한 울림과 통쾌한 속도감 그리고 박진감이 넘치며 2003년 벤스카가 음악 감독으로 임명된 이후 급 발전한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음악평론가들의 중론이었다. 

이런 사전 지식 배경 하에 서울시향과 오스모 벤스케가 지난 5월20일 금요일 저녁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가진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4번은 교향악단 연주회의 기존 프레임인 서곡 연주, 협연곡 연주,

그리고 후반부에 교향곡 연주의 판에 박힌 틀을 깨는 신선한 시도의 의미에서 전반부에 시벨리우스 교향곡 4번의 연주로 강수(强手)를 둔 오스모 벤스케가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는데 성공한 연주회로 기억될 듯하다.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로서 오스모 벤스캬의 연주는 기존 핀란드 지휘자들의 시벨리우스 해석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서유럽적인 구조적 탄탄함을 덧붙였음은 물론, 에너지감 넘치는 탄력성과 색채에 대한 까다로운 감수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음이 특징으로 회자돼왔다.

시벨리우스 특유의 싱그러우면서도 이국적인 느낌, 교향곡 특유의 강건한 구축력도 대단하다는 벤스케의 이러한 이미지는 일상회복의 의미를 담아 관객이 희망을 담고 공연장을 떠났으면 한다는 그의 의중대로 이날 연주회 순서가 전반부에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4번, 후반부에 일본계 미국인 작곡가 폴 치하라의 ‘비올라 협주곡: 젊은 예술가의 영웅적 초상(2022)-세계 초연’, 그리고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으로 관객들의 심성에 정확히 전달되었다. 종잡을 수 없는 곡이지만,

역시 시벨리우스 전문가인 벤스케는 확고한 자신감으로 서울시향을 이끌었고 명쾌하고 호연지기 넘치는 해석에 힘입어 서울시향의 모든 악기군은 제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는 다수 블로거들의 평이 많았다.

 

폴 치하라의 비올라 협주곡은 매우 높은 음역대에서 고독하면서도 소박하게 시작하는 것이었다.
폴 치하라의 비올라 협주곡은 매우 높은 음역대에서 고독하면서도 소박하게 시작하는 것이었다.

 

폴 치하라의 비올라 협주곡, 매우 높은 음역 대에서 고독하면서도 소박하게 시작

내게 이번 서울시향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4번 연주에서 특히 이목을 끌었던 것은 전반부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4번이 섬세한 poetry를 이해하기 위해선 여러 번 들어봐야 할 듣기 적응하기에 힘든 작품이라는 작품속성을 대변하듯,

1악장에서 시작되는 무겁고 어두운 연주의 다소 어두움 대비 후반부 연주곡들인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의 폴 치하라 비올라 협주곡과 그 유명한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몰다우 연주곡들에서 관객이 받을 수 있었던 평화와 안식의 대비로 볼 수 있겠다.

일상회복의 의미를 담아 관객이 희망을 담고 공연장을 떠났으면 한다는 오스모 벤스케의 의중은 용재 오닐이 협연한 폴 치하라의 비올라 협주곡에서 명확히 표현되었다고 본다.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내가 위대한 아티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그린 음악적 초상화이다. 이 곡은 매우 높은 음역 대에서 고독하면서도 소박하게 시작되며, 그 선율은 마음아린 고독과 개인적인 갈망을 노래한다. 이 주선율은 단순한 노래로 발전해-마치 어둠속에 부는 휘파람처럼-침묵과 고통을 물리치며 위안을 찾는다”는 작곡가 폴 치하라의 내성(內聲)을 듣는 듯한 연주곡이었다.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중 ‘몰다우(Moldau)’의 서울시향 연주는 30여 년 전 넘게 1991년 11월 체코필이 이지 벨라흘라베크와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했던 체코필의 첫 내한공연의 당시 객석에서의 추억과 색다른 감흥을 내게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서울시향의 몰다우 연주는 한편으론 2013년 5월 서울시향이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연주했을 당시 느꼈던 실제 바그너의 모든 서곡과 전주곡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곡이 탄호이저 서곡이었음에 비춰 연주 내내 시종 눈을 감고 지휘하는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탄호이저 서곡 연주를 기억하는 청중들에게 서울시향의 연주는 일말의 아쉬움을 주었다는 예전의 공연에 대한 생각을 내게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선 일상회복의 의미를 담아 관객이 희망을 담고 공연장을 떠났으면 한다는 오스모 벤스케의 의중대로 이날의 연주회에 참석한 관객들이 현의 유려한 선율이 그 자체로 몰다우 전체를 상징하는 평화와 안식의 기운을 담고 공연장을 떠나기에 적절한 연주곡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6월에 서울시향이 티에리 피셔 전 수석객원지휘자와 함께 프렌치 클래식 여행을 떠나는 여정, 6월 10-11일의 티에르 피셔의 라벨 ‘다프니스와 클로에, 그리고 6월 16-17일의 티에르 피셔의 생상스 교향곡 2번에선 서울시향 교향곡연주의 색채감과 섬세함이 ’몰다우(Moldau)에서의 여세를 몰아 어떻게 펼쳐질지 자못 기대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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