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상우 / 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7월 2일 토요일. 대구문화창작소가 주최하는 ‘대구애서愛書 시리즈’의 다섯 번째 공연으로 놀무용단의 창단공연이 대구 퍼팩토리소극장에서 열렸다.

놀무용단은 이름에 ‘놀다’, ‘No.1’, ‘룩(Look)’ 등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무용단으로, 다른 길을 걸었던 이들이 모여 춤으로 신명 나게 놀면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서로 이해하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놀무용단 - '부채입춤' '진주검무' '한영숙류 태평무' ⓒ이재봉
놀무용단 - '부채입춤' '진주검무' '한영숙류 태평무' ⓒ이재봉

 

이날 공연에서는 1부 순서로 전통춤인 부채입춤, 진주검무, 한영숙류 태평무를 연이어 선보였고, 2부에서는 창작 안무인 <아싸인싸>(안무 장현진)를 무대에 올렸다.

2부가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길게 늘어져 있는 흰색의 사각형 판. 처음에는 기다란 판 두 개가 떨어진 채 놓여있는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정사각형의 판들이 길게 놓여서 만들어낸 하얀 길이었다.

어느새 나타난 네 명의 무용수. 하얀 판의 주변을 겉도는 것처럼 서성이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저 판들의 의미는 그저 무용수들의 동선을 이끄는 지표로만 추측했다. 하지만 단순한 오브젝트 이상의 의미와 활용성을 지니고 있었다.

 

놀무용단 - '아싸인싸' 안무 장현진 ⓒ이재봉.jpg
놀무용단 - '아싸인싸' 안무 장현진 ⓒ이재봉.jpg

 

모두 함께 춤을 추던 도중에 한 무용수가 무리에서 떨어져나왔다. 하얀 판 위에 홀로 선 무용수는 기다란 직사각형으로 하얀 길을 만들고 있던 판에서 몇 개를 떼어내어 길의 반대편 끄트머리로 옮기며 다른 길을 만들었다.

그녀는 잠깐 세 무용수와 합류했지만, 이내 다시 나와서는 한 차례 더 하얀 길을 재조립하더니, 아예 형태를 부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 의해 멀리 밀려난 판들은 다른 무용수들이 재차 밀어 그녀를 중심으로 모았고, 그녀는 다시 밀어내기를 반복했다.

두 개의 하얀 길을 모두 부수며 그녀에게 모인 판들은 정사각형의 공간을 만들며 그녀의 아래에 자리했고, 나머지 판들은 다른 세 명의 무용수가 들고 퇴장했다. 이로써 무대 위에 남은 것은 하얀 공간 위에 덩그러니 선 그녀 한 명.

 

놀무용단 - '아싸인싸' 안무 장현진 ⓒ이재봉.jpg
놀무용단 - '아싸인싸' 안무 장현진 ⓒ이재봉.jpg

 

발밑의 공간은 완전한 정사각형이 되기엔 한 조각이 부족했다. 그녀는 판을 조립하며 공간의 모양을 조금씩 바꾸었지만, 모퉁이건 중앙이건 하나가 비어버린 공간은 완성되지 못했다.

그렇게 공간을 조립하며 춤을 추는 동안, 판의 색은 조명의 색에 따라 변해갔다. 하얀색인 만큼 어떤 색이든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물들어가는 판의 모습이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혼자 괴로워하는 듯한 몸짓을 보이는 무용수. 다른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추며 무대를 넓게 활용하던 때와 대비되면서 어딘가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놀무용단 - '아싸인싸' 안무 장현진 ⓒ이재봉.jpg
놀무용단 - '아싸인싸' 안무 장현진 ⓒ이재봉.jpg

 

그 고독한 춤이 끝나고, 무대로 올라온 다른 무용수 한 명이 하얀 공간의 마지막 한 조각을 맞춰 넣으며 정사각형의 공간이 완성되었다.

두 무용수는 마주 보지는 않았지만, 함께 춤을 추며 서로의 삶을 교류하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긋났던 두 사람의 시선이 맞춰졌고, 다른 무용수들도 무대로 들어오면서 모두의 춤이 교차했다.

춤과 춤의 만남으로 하나가 된 듯한 무용수들은 입가에 미소를 만개한 채로 무대를 누비며 춤추었고, 정사각형의 공간이 되어있던 하얀 판들은 네 명의 무용수 각자의 아래에 놓여 그들이 설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놀무용단 - '아싸인싸' 안무 장현진 ⓒ이재봉.jpg
놀무용단 - '아싸인싸' 안무 장현진 ⓒ이재봉.jpg

 

공연명이기도 한 <아싸인싸>의 ‘아싸’와 ‘인싸’라는 단어는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신조어로, 각각 ‘아웃사이더’와 ‘인사이더’의 준말이다.

이는 무리를 겉도는 사람과 무리 안에서 중심이 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들인데, 놀무용단은 이를 색다르게 해석했다. ‘아싸’를 외로움을 넘어서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로, ‘인싸’를 모두와 함께 걸으며 나아가되 뒤처진 이를 보듬어주는 질서의 수호자로.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홀로 떨어지기도 하고, 등 돌려 떠나기도 했지만, 결국은 모두가 모임으로써 부족했던 조각을 채워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아싸든 인싸든 모두가 다른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그 누구도 틀리지 않았고 결국은 둘 다 함께 있어야 완성이 된다는 것을 이 공연을 통해 말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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