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모든 생명에 보내는 우주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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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바람'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임형주, 그를 통해서 접한 <팝페라>라는 장르에서 활동하는 뮤지션 가운데 재미교포 출신의 스텔라 케이리(stella K Lee)가 있다. 현장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은 많은 분의 꼬리를 무는 한결 같은 칭찬, 즉 상처받은 마음에 대한 위로와 위안에 대한 신비한 입소문이 궁금했다.

   
▲ 문화뉴스와 인터뷰하는 스텔라 ⓒ 장소 협조 : 문화코디네이터 마정희 

그래서 2년 전, 영주권조차 포기하고 완전한 한국인 신분으로 국내와 외국을 오가면서 영혼을 담아 노래를 부르는 스텔라 케이리(이하 스텔라로 표기)를 <문화뉴스> 인근 혜화동에서 만났다. 화려해 보이는 외면과 달리 인터뷰 내내 솔직하고 꾸밈 없이 활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참고로 스텔라는 이태리어로 여자 별을 의미한다.

   
 

▶ 클래식 크로스오버 보컬리스트 <스텔라 케이리(stella K Lee)> 프로필
*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나 12살 때 독일로 이주.
* 뉴욕 Fiorello H. La Guardia High School of Music and Art and the Performing Arts, New York, New York 예술 고등학교 졸업
* 뉴욕 Manhattan School of Music. New York, New York 음대 졸업 (메조 소프라노)
* 뉴욕 The Folk Song's Night with the Festival Symphony Orchestra ( Performed at the Tilles Center in New York City) 뉴욕 가곡의밤
* 뉴욕 The Summer Opera - Asian production of La Cavalleria Rusticana in New York
* 뉴욕 The New York Singing Teachers Association of the International World of Songs (Performed at the Teachers College of Columbia University in New York City)
* 뉴욕 The Sixth Annual Christmas Festival of Music ( Performed at St. Martin's Church of Harlem in New York City) 크리스마스 음악 페스티발
* 뉴욕 The Concert of Mozart and Sacred Songs with the New York Harmonic Orchestra (Perormed in New York City as well as in Philadelphia,Pennsylvania) 가곡의 밤, 모자르트와 성가의 밤 등 다수 협연 뉴욕, 필라델피아, 펜실비아
* 뉴욕 NewYork Vocal Artists (Competition,Mezzo Soprano - Performed at the Carnegie Hall in New York ) 카네기 홀에서 성악 예술인대회- 대상
* 뉴욕 The Harmonia Opera- Legendary Classic Literature of Japan "Princess Kaguya"(Performed in Hunter College in New York City) 일본 오페라 "카쿠야 공주"

대단한 이력입니다!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네요. 
ㄴ (국내에서) 피아노를 세 살에 시작했어요. 미국에서는 예술 고등학교에서 피아노와 성악에 동시 같이 합격했는데 성악, 메조소프라노를 선택했어요. 어머니가 피아니스트였는데 저는 악기를 다루는 것보다 노래하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물론 피아노는 지금도 좋아하고 계속 연주합니다. 

팝페라와 메조소프라노는 영역이 완전히 다른 거로 알고 있는데, 왜 방향 전환을?
ㄴ 한국은 제가 태어난 곳으로서 10여 년 전에 잠깐 여행을 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오페라를 하게 됐습니다. 그냥 아는 선생님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오디션을 보고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오페라는 제가 생각하는 것과 너무 달랐습니다. 우선 한국에서는 홀을 빼고는 울리는 공간이 없어 거의 마이크를 사용하는데 오페라를 성악식으로 해서는 (여건상) 마이크랑 안 어울립니다. 페이 문제도 그렇고요. (웃음) 그 외에도 제가 문제아여서 그런지 이런저런 것들이 저랑 안 맞았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뮤지컬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를 하셨는데 제 영역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때 사실 저한테 아주 큰 기회가 왔었습니다. <OOO후>에서 OOO후역 제의를 받았는데 거절했거든요.

정말로요? 대단한데요. 혹시 그 제의를 거절한 걸 후회하지는 않을까요. 
ㄴ (단호하게) 전혀요. 

스텔라가 추구하는 팝페라를 설명해주세요. 
ㄴ 부드러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호소력이라고나 할까요?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인정받고 싶습니다. 외국의 유명 가수들을 흉내 내는 것으로 비치는 건 싫습니다. 개인적으로 굳이 롤모델이라고 하면 사라 브라이트만의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노래로서가 아니라 그녀의 무대, 즉 퍼포먼스가 초점입니다. 문제는 그런 걸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거죠. (웃음) 제작자들이 싫어하는 스타일입니다. 뮤지컬이나 연극처럼 스토리가 있는 걸 좋아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음악을 통해서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ㄴ 이런 표현이 음악의 가능성과 가치를 제한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염려되기는 하지만 굳이 표현한다면 음악치료사가 되고 싶어요. 한 마디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어요. 억울함과 한 때문에 기타 등등,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제 노래가 그분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어루만질 수 있다면 그래서 답답한 삶의 고통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하는 게 제 음악적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시(詩)는 잘 모르는데 미국에서 음악친구였던 '숀 강' (Shawn KANG, 에이미에서 작곡과 편곡 상을 5번 수상한 제이미 로렌스와 함께 활동) 음악 엔지니어가 미국으로 오기 전 친구한테서 받은 시집을 저한테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정현종이라는 분이 쓴 섬이라는 시가 있었어요.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아주 짧은 시였는데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음악으로, 노래로, 팝페라라는 장르로 사람과 사람 사이 대신 별과 별 사이를 꿈꿉니다. 제가 꿈꾸는 인터스텔라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물질에 기초한 현대 기계문명에 지치고 상처받은 모든 생명체에 가장 큰 자연인 우주가 보내는 위로와 용기 그리고 격려의 따뜻함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인터스텔라, 스텔라가 꿈꾸는 별과 별 사이에는 바로 유토피아가 있는 셈이로군요. 모든 대립과 갈등 그리고 분열에서 상처받고 소외된 자들을 영원히 보듬는 우주의 자비가 살 숨 쉬는 공간 같은 것 말입니다.
ㄴ (웃음) 와우,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비슷합니다. 저 자신도 그랬고 실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잠깐이나마 음악을 들으면서 하나가 될 수는 있으니까요. 그 순간 우주에 꽃이 피는 게 아닐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좀 공상적이죠? 

   
 

매우 철학적인데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ㄴ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가 모두 음악을 한 환경적인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는 음악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어려서부터 강하게 체험하고 자랐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지 않습니까? 지구 상의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특이한 상황도 그렇고 거기서 오는 정치적인 스트레스가 사회 각 분야에 연쇄반응을 일으켜 그 여파 중의 하나인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분들도 많고. 여기저기 사연은 다르지만 우리 주변에는 괴로워하는 분들이 참 많은데 그분들한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세상이 조금 더 환해지지 않을까 해요.

끓는 물에 찬물 한 바가지 붓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음악으로 잠시 하나가 될 수 있는 그 순간 누군가는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걸 교감과 소통이라고 믿어요. 그게 저의 기쁨과 행복이기도 합니다. 별과 별 사이의 유토피아는 쉽게 갈 수는 없는 세계지만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믿습니다. 적어도 꿈꿀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이미 그곳에 있다고 믿어요. 그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힘이 솟아납니다. 

음악 이외에 하고 싶으신 게 있다면? 
ㄴ  굳이 꼽는다면 음악을 하면서 병행한다고 할 때 프로듀서, 연출을 해보고 싶어요. 꼭 노래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살려서 음악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싶습니다. 실제로 팝페라가 갖는 대중성으로 현재 다양한 콜라보를 기획중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어서 관객들과 만나고 싶어요. 아시다시피 싸이의 미국 진출 성공 이후 많은 나라와 외국인들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호를 생각해서라도 좀 더 자유롭고 색다른 맛을 관객들한테 전해주고 싶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게 국가 경제에도 이바지하는 길이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외화벌이죠. (웃음) 

우리나라 말고 외국에서도 활동하신 거로 알고 있는데 각국 관객의 반응과 특징을 집어주세요
ㄴ 노래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제 목소리에 대한 평가는 (외국에서) 한국적인 목소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언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면 한글을 사용하잖아요? 나이 들면 점점 혀가 그 발음에 길들면서 굳어버리는데 한국에서 태어나서 독일로 갔다가 나중에 다시 미국으로 가서 생활하면서 외국의 언어 시스템에 저의 모국어가 고착되기 전 합류한 것이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하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원래 외국 관객들은 한국 사람이 오페라를 하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발음을 떠나서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외국인(한국인)이라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목소리가 한국인의 색깔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듣기에 따라서 장점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글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모아쓰기인데 비해 영어는 풀어쓰기 때문에 그 차이가 발음으로 노래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ㄴ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성악을 하지 않아도 목소리 자체가 뒤(언어의 발음 구조상 입안에서)에서 나오기 때문에 성악적인 발성입니다. 노래로 따지면 일본 사람들이 언어가 앞에서 발음이 나오기 때문에 성악을 할 때 제일 불리하고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 걸 보면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자랐는가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물론 타고난 것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유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발음은 어느 정도 원어민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목소리 톤 자체가 크게 변하지는 않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나라 사람과 외국인들 티칭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터득한 겁니다.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외국에서 생활하시다가 가족과 떨어져서 생활하시다 보면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그리움이라던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ㄴ 가족과 떨어져서 살아가는 건 큰 어려움이 없는데 정작 홀로 활동하다 보니 사업적으로 순수하게 접근하지 않고 이상한 뉘앙스를 풍기는 한국 특유의 향응과 접대 문화가 제일 힘듭니다. 연예계의 어둡고 탁한 면을 너무 많이 봐서 환멸을 느낄 때도 잦고 팝페라라는 장르가 한국 음악 시장에서 큰 비중이 없어서 협소한 시장에서 생존한다는 그 자체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같은 영역에 몸담은 분들끼리 할인 경쟁을 해서 몸값이 턱없이 낮아지는 현실도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입니다. 그리고 제 외모에 대한 선입견이 가져오는 오해도 조금 힘들었어요. (웃음) 상대적으로 계약문화가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지 제가 만나본 분들은 말이 앞서고 그래서 손해를 본 적도 많고요.

그래서 일 적인 것 외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제가 외부로 나다니기 시작한 것이 불과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대체 지금까지 뭐 하고 있었느냐고 걱정과 타박을 하시더군요. 아직도 한국 문화를 모르냐고 하시면서요. (웃음)

   
 

노래를 부르는 입장에서 움직이는 마이크와 스피커인 육체의 건강이 참 중요한데 뷰티와 다이어트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모 화장품 회사에서는 홍보대사를 하시던데요?
ㄴ 스트레스 때문에 한국에 처음 와서 15kg이 쪘어요.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안 먹었더니 더 나빠졌습니다. 혈액순환도 잘 안 되고 그래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고요. 지금은 좋아졌습니다. 주변에서 관심 가져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홍보대사 덕택으로 집에 마스크팩은 많습니다. 

한류의 목록에 팝페라도 들어가야 할 시점인데, 우리나라 팝폐라 가수들의 외국 진출 가능성은 어떻게 보세요?
ㄴ 우리나라 분들이 노래를 참 잘하시는데 거기에 마케팅이 뒷받침되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임형주 씨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외국어 구사 능력도 중요해요. 싸이의 경우를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미교포로서 영주권을 포기하신 거로 알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걸 갖고 계시면 활동하시는 데 더 유리한 것이 아닌가요?
ㄴ 제가 우리나라에 온 것은 음악을 통한 사명감 때문입니다. 앞에서 잠깐 말씀드렸다시피 전 지구 상에 유일한 분단국인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분의 아픔을 위로하고 싶어요. 저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깊이 모르지만 머지않아 정말 벼락처럼 통일될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럼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겠죠?

가족과 10년을 떨어져 있는 제 경우만 하더라도 쉽지가 않은데 생사도 모르면서 7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뎠다는 것이, 서로가 얼마나 큰 아픔을 간직한 것인가는 알 수가 있어요. 개인의 아픔을 넘어서는 사회와 그리고 국가의 아픔을 순차적으로 어루만지고 치유한다는 것은 단순한 힐링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란 뜻의 영어인 PEACE는 단순히 말뜻으로서가 아니라 제게는 People, Energy, Art, Culture, Eco의 첫 글자를 딴 조어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많은 뜻을 내포한 것이죠. 전 이 다섯 단어에 바로 우리나라의 비대칭 현실, 그러니까 분단 상황을 정말로 슬기롭고 멋지게 극복하고 그 힘으로 세계를 선도해 나갈 거라는 큰 의미를 담고 싶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제가 순간적으로 해석하기로는 People은 바로 한민족, Energy는 우리의 저력, Art와 Culture는 바로 한류, 그리고 Eco는 그것들이 하나가 된 세상, 이 모든 것이 통일을 전제로 한 것 같은데 결국 인터스텔라의 유토피아가 되는 셈이로군요? 심오합니다.
ㄴ 하하하, 저보다 앞서 가시네요. 어쨌든 지난 무명의 세월 동안 제가 그렇게 나름대로 갈고 닦은 것을 이제 세상에 내놓고 싶습니다. 많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노래를 하시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어느 때 느꼈나요? 한류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문화대사에 해당하는데요.
ㄴ 영주권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전 외국인도 한국인도 아니었습니다. 주민등록상 저는 한국에서 외국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생활하는 데 많은 불편을 느껴서 미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은 스트레스와 공황장애 비슷한 것 때문에 쓰러진 적도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면서 하지만 의식은 철저하게 한국인이었습니다. 그건 부모님의 영향이 큽니다. 외국에서 공연할 때 외국어 구사에 어려움이 없으므로 현지 관객들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 유리한 것이 한국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느낀 적이 많습니다. 그런 점이 아마도 저에게 뿌듯했던 것 같아요. 국적뿐만 아니라 의식까지 철저하게 한국인인 상태에서 민간외교 사절단이라는 소명감을 갖고 노래를 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비무장지대에서 콘서트도 하고 싶습니다. 한반도의 평화가 곧 세계의 평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거죠!

끝으로 스텔라 님을 성원하는 팬들한테 한 말씀 부탁합니다. 
ㄴ 저는 아이돌이 아니지만 그래서 외모적으로 어필할 수는 없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위로가 필요한 분들한테 제 음악이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떠나서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의 무대를 만들어서 접근하고 싶습니다. 클래식의 장점을 살린 음악적 재능으로 팝페라 가수 스텔라로서 기억되면 큰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끝) 

#문화뉴스 아띠에터 이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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