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 세계의 축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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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존 롤즈와 마이클 샌델부터 떠오려야 할 것 같은 이 질문은 그러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가 작품 전반에서 관람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위해, 유명한 '트롤리의 문제'를 예시로 들어 보자. 열차의 방향을 바꾸면 1명이,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5명이 죽는다고 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예시를 바꾸어 보겠다. 70억 명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2천만 명을 죽여야 한다면, 당신은 어떠한 결론을 내리겠는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해 이 영화에 나오던 쉴드의 수장은 2천만 명을 죽이기로 결정한다. 당신은 현실주의자, 혹은 공리주의자인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답은 어떠한가?

   
 

이제 다시 질문을 바꾸어 보겠다. 70억 명을 위해 2천만 명이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당신이 제비뽑기 운이 나빠 그 2천만 명에 들어가게 되었다. 2천만 명이 죽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이 전제 하에서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당신은 아까와 동일한 답을 유지했는가? 여기서 나올 답은 너무 간명하다. 당신이 '아니다'라고 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통상적인 상황에서 아무도 죽기를 원치는 않는다. 그것도 살아남은 68억 8천만 명에 들어갈 경우 지상낙원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그러나 이 영화 내에서 현실주의와 공리주의, 인간에 대한 허무주의의 결합은 그것을 강요한다.

혹자는 단순명쾌하게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 막으면 되잖아?" 그러나 과연 반대편에, 인본주의의 선두에 서서 이러한 것을 막을 존재가 있는가? 적어도 이 영화 내에서는 어떤가?

   
 

캡틴, 오 마이 캡틴

캡틴 아메리카는 지극히 인간적인 히어로다. 적어도 수십 년에 걸쳐 힘의 인플레이션이 몇 차례고 일어난 DC, 혹은 마블의 세계관에서는 그렇다. 그나마 DC의 배트맨이 돈으로 여러 무기와 장치를 마련하고, 지능과 신체를 극도로 단련하여 인간성을 극복한다면 캡틴 아메리카에게는 그러한 것들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캡틴은 지극히 약하며, 혼자 힘으로 싸움을 막거나 정의를 지키는 것은 그에게 힘에 겨운 일이다(이 영화에서는 동료의 도움으로 어떻게 해냈지만, 대신 목숨을 잃을 뻔했다).

칸트의 민주 평화론(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의 가장 큰 한계는, 설령 그 가정대로 민주주의 국가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에는 민주주의 국가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도, 타국가가 전쟁을 선포한다면 자기 보호를 위해서 군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원리로 폭력에 대응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은 결국 폭력이 되며, 모든 주체, 집단, 혹은 국가는 상대의 도발에 대처하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을 상비한다. 결국, 상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행위 주체들이 평화를 원하는 의사에 반하여 '자기 보호'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무장을 해야만 하는, 일종의 루징 게임 상황인 셈이다.

이러한 힘 대 힘의 루징 게임을 막을 장치는 존재하는가? 혹설은 압도적인 세계 관리자를 두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적어도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 내에 이러한 존재는 없다. <왓치맨>의 히어로들이 대개 그랬듯이, 캡틴은 히어로로서 전쟁을 막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강하지 않다. 그런가 하면 전쟁을 막을 정도의 압도적인 힘을 가진 공조체제(실드)는 이러한 공조체제에 단일한 관리자가 존재하고 그 관리자가 철인이 아닐 경우(즉, 자신이 속한 개인적인 집단(하이드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경우) 어떻게 망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의의 수호자와 정의의 파괴자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실드건, 캡틴이건 이런 공조체제와 같이 압도적인 힘을 가진 관리자는 애초에 신뢰를 받지도 못한다. 그것은 힘이 있는 집단은 언제건, 실드가 그러했듯이 수호자가 아니라 파괴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직 자신이 있는 공간의 원리를 공조가 아닌 경쟁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도 이러한 믿음에 한몫할 것이다. 이 때문에 실드는 한 번의 의심을 받자마자 해체되어야 했다. 그렇다고 공조체제가 없어지면 말 그대로 완전한 자연 상태가 되니 각 국가 또는 집단은 또 다른 안보 체제를 만들 것이고, 경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세계는 공조체제를 포기하지 못한다.

결국, 세상은 딜레마와 불안 속에서 얼마 되지 않는 평화를 누리는 셈이다. 마지막 나타샤의 인터뷰를 생각해 보자. "당신들은 우리를 필요로 할 테니까요." 세계는 압도적인 힘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제약하고자 하면서도 그것이 아예 없을 때의 위협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공조체제와 아슬아슬한 공존을 계속하고 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는 히어로 영화로서 본의건, 본의가 아니건 이러한 세계의 모습을 스크린 속에 축약하여 드러내고 있다.

#문화뉴스 아띠에터 이호양

덧붙임.

이 영화는 다른 흥미로운 주제, 예를 들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라는 주제와 같은 것들까지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A.I.로 복원된 하이드라의 과학자는 인간성을 지니고 있는가? 한 팔이 사이보그나 다름없는 윈터 솔저는? 외양은 인간처럼 보이지만 신체 강화 실험을 받은 캡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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