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장동홍 감독, 이윤택 연출, 김소희 배우, 윤여성 배우, 고충길 대표가 포토타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국내 최초로 연극과 영화가 콜라보레이션 됐다. 영화계에서도 이미 오페라와 뮤지컬, 발레 등 고급예술을 접목한 콘텐츠들이 상영되고 있다.

공연을 영화화하는 것은 이미 외국에선 익숙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의 공연 실황을 담은 'The Met: Live in HD'가 있으며, 영국에선 국립극장 대표 연극을 세계 극장에 생중계하는 '국립극장 NT Live'가 있다. 지난겨울엔 드라마 '셜록'으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극 '프랑켄슈타인'이 국립극장에서 상영된 바 있다. 국내엔 '예술의 전당 SAC on Screen'이 있지만, 이렇게 연극을 본격적으로 영화적 연출 방식을 활용하여 영상으로 옮긴 뒤 극장 정식 상영은 이번 '혜경궁 홍씨(DnC Live)'가 처음이다. 'Drama & Cinema Live'의 약자인 'DnC Live'로 제작된 이번 영화는 연극을 영화 제작 프로세스에 맞춰 세부적인 촬영과 편집을 거쳐 제작됐다.

특히 원작인 연극 '혜경궁 홍씨'는 2013년 국립극단 레퍼토리 창작희곡 무대에서 초연과 지난해 재연 모두 모든 자리 매진을 기록한 바 있다. 여기에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오른 바 있다. '오구', '어머니' 등을 연출한 공연계 거장 이윤택 연출과 그의 페르소나인 연극배우 김소희의 열연으로 빛나는 작품이다. '혜경궁 홍씨'는 영조, 사도세자, 정조까지 3대에 걸쳐 기구한 운명을 겪은 여인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오는 6월 4일 개봉을 앞둔 가운데, 언론/배급 시사회가 22일 오후 대한극장에서 진행됐다. 영화 상영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엔 장동홍 영화감독, 이윤택 연극 연출가, 김소희 배우, 고충길 영화사 숨 대표가 참석했다. 연극을 영화로 옮기는데 어려운 과정, 연기 중 있던 에피소드 등에 대해 들어봤다.

작품을 본 소감을 들려달라.
ㄴ 장동홍 감독 : 촬영 현장의 오디오 조건이 문제가 됐는데, 스치는 소리와 발소리가 거슬려서 집중하면서 보기가 힘들었다. 정식 상영이 될 때는 그런 부분을 수정해서 관객들과 만나야 할 것 같다.

   
▲ 이윤택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윤택 연출 : 1987년 처음 쓴 시나리오인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가 대한극장에서 시사회를 한 적이 있다. 영화와 동시에 연극 시나리오를 했는데, 오늘 작품으로 두 번째로 대한극장에 오게 됐다. 지난 19일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 행사로 영화와 연극의 텍스트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몇백 명의 관객이 와서 두 시간 넘도록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영화가 지금 존재할 수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했다. 영화의 텍스트는 시나리오다. 연극의 텍스트는 그리스극부터 다양하다. 연극과 만난다는 것은 문학과 만난다는 것이고, 문학과 만난다는 것은 철학과 만나게 된다. 우리 영화가 이제 형이상학적인 문예 영화와 만나야 한다는 기대 섞인 이야기를 부산에서 했다. 지금 이 작품을 보는데 제가 만든 연극이 이렇게 장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우리 영화를 다양하게 하고, 우리 영화의 한 단계를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소희 배우 : 연극을 하면 이런 방식이 아니라 기록용으로 찍기도 한다. 찍은 걸 다시 보질 않는다. 연기를 다시 보면 부끄럽기 때문이다. 오늘도 사실은 오기가 싫었다. 이렇게 큰 화면에서 본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 작업을 고충길 대표님께서 하고 싶다고 제안했을 때, 예술과 예술인 연극과 영화의 사이에 있지만 어찌 보면 전혀 새로운 메커니즘을 실험하는 시도라 생각했다. 오늘 보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다. 연기가 늘 부끄러운 점도 있지만, 이걸 이틀 만에 2시간 10분 되는 분량을 찍었기 때문이다.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잘 찍어주셨다고 생각했다. 영국 국립극장에선 이걸 찍는 부서가 따로 있다. 요새는 마우스 클릭만 하면 되니 문화산업처럼 발달하고 있다. 우리는 예산 면의 문제로 급하게 하고, 이게 시작이지만 많은 관심과 격려가 있다면 계속해서 조금씩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ㄴ 고충길 대표 : 감동적인 공연을 보면 몇 분, 몇 시간, 몇 년, 나아가 평생을 감동의 여운 속에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좋은 공연을 보고 난 후 이 공연을 다시 볼 방법이 없을까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제대로 된 시스템 아래 다시 볼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데, 어떻게 접근하면 일반 영화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여서 산업 구조의 수익이 나올 수 있느냐는 취지 아래 기획을 시작하게 됐다. 지난여름 이윤택 연출 선생님 찾아뵙고 시작하겠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 흔쾌히 승낙해주셨고 더불어 '혜경궁 홍씨'라는 놀라운 작품을 추천해주셔서 오늘 이 자리에서 시사하게 됐다.

앞으로 계획은 적어도 한 달에 한 편은 좋은 공연을 지속해서 생산해 소비하는 것이 목표다. 이런 솔루션을 이용해 문화 접근성을 높여보는 것이 소원이다. 영화 관객들이 연 2억천만 명이다. 그 영화 관객들을 연극 관객으로 유입시키는 환경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연극 하시는 선생님들께선 연극을 이런 디지털 환경에서 보게 된다면 관객을 뺏길 것에 대해 우려를 하셨지만, 확신을 하고 그 반대의 생각을 해봤다.

촬영 중 애로 사항이 많았을 것 같다.
ㄴ 장동홍 감독 : 공연 중에 카메라가 필요로 하는 광량을 맞추기 위해, 연극의 진행 톤을 헤쳐가면서까지 찍지 말자는 기본 전제가 있었다. 무대에서 객석으로 이동할 땐 객석을 어둡게 처리해서 중립화시켰다.

'혜경궁 홍씨'의 1막에서 아들 '정조'와 '혜경궁 홍씨'가 25분간 계속 대화를 치는 장면이 있다. 영화로 따지면 그런 장면이 있을 수 없다. 무대에서 아무런 일 없이 대화로 이뤄진다. 동선도 움직임이 많이 없고, 주저앉았다 일어났다도 한 두 번 밖에 없는데 이 씬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25분이 연극에선 지루하지 않았다. 지루하지 않은 이유를 보니, 이윤택 선생님께서 만드신 극의 리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정조' 역할을 하신 분과 김소희 배우의 앙상블이 매우 좋았다.

그냥 클로즈업으로 쭉쭉 붙여도 연기의 힘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빨려 들어가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굉장히 빠른 시간에 배우들의 감정이 깨지지 않게 단기간에 찍은 것이다. 역시 보니까 잘했다고 생각한다. (웃음) 다시 한 번 느낀 것이 카메라가 하이앵글, 로우앵글로 뭘 하든 간에 피사체인 배우의 연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확실하게 중요한 것이 잘 잡힌 작품이기 때문에, 그것을 담고자 원칙에 임했다. 영상을 책임지는 감독으로서는 온갖 세팅을 다 두고 하면, 두 달을 찍어야 했는데 이틀이라는 시간 제약 때문에 더 해보고 싶은 것을 못 한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훌륭한 작품에 참가해서 기뻤다.

고충길 대표 : 장 감독님의 연출 의도도 동의가 된다. 영국의 '국립극장 NT Live'는 실제 공연 장면을 중계 방식으로 촬영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영화적인 접근을 할지 고민을 했다. 무대엔 배우가 있었지만, 관객은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관객의 관점도 있지만, 카메라가 무대 위로 올라와서 배우의 관점 샷으로 찍는 것을 주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 '혜경궁 홍씨'를 맡은 김소희가 포토타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소희 배우 : 첫 번째 장면은 새벽에 촬영했다. 공연을 다 마치고, 약속된 공연 장소의 시간이 한정되다 보니 늦은 시간에 촬영했다. 그래서 속으로 내가 빨리 연기를 마치지 않으면, 계속 촬영이 지체될 것 같다는 생각을 느꼈다. '혜경궁 홍씨'는 감흥을 주는 대사들이 많다. 그 대사들이 저한테 주는 느낌과 선생님이 쓴 느낌대로 말을 하는 편이다.

이윤택 연출 : 먼저 이런 장르가 없었다. 오늘 이 작품을 보고 새롭다고 느낀 것이, 이것은 영화다. 공연 실황 자체를 촬영한 미디어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영화에 불만이 두 가지 있는데, "왜 우리 영화는 형이상학적인 것을 다루지 못했나"다. 요즘은 문예영화(예술적 가치를 본위로 하기 위해 유명한 문예 작품을 영화화한 것)가 없다. 또 하나는 "왜 배우들을 프레임에 가두는가"다. 우리나라 영화감독들의 카메라, 편집 기술은 세계 최고급인데 배우들 숨을 쉬지 못한다. 미국 영화나 외국 영화 보면 오버액션(자연스럽지 못하고 과장된 연기)이 아니다. 연기를 과감하게 해야 하는데, 감독들이 자꾸 배우들을 프레임과 앵글에 가두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이 작품은 날 것으로 연극배우들이 돌진하는 연극이기 때문에 그대로 담은 것이다. 사실 감독을 만날 땐, 작품에 대한 신뢰감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다. 앞부분은 촌스러웠는데, 중반부부터 탄력을 받았다. 연극보다 더 강력하게 밀어붙이니 재밌었다. 김소희나 여러 배우의 힘줄까지 불끈거리는 장면은 정말 좋다. 그래서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고 본다.

   
▲ '혜경궁 홍씨(DnC Live)'의 한 장면.

영화에 대한 남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다.
ㄴ 이윤택 연출 : 민망한 이야기인데 원래 연극보다 영화가 꿈이었다. 네 살 때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는데, 현실의 '영화판'은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인들의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많았다. 영화가 연극보다 좀 더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철학, 미학, 종교를 다 포함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예술이다. 그래서 제가 하는 연극은 모두 '영화적'이다. 영화를 찍고 싶은 욕구를 연극 쪽에 쏟고 있다.

최근 연산군을 다룬 '간신'이 개봉했는데, 이윤택 연출의 작품 '문제적 인간 연산'도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ㄴ 이윤택 연출 : '문제적 인간 연산'이 오는 7월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12년 만에 무대에 올려진다. 이런 식으로 만드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장동홍 감독 : 공연 현장에서 배우의 열연을 지켜보는 강렬한 에너지와는 다른 것이다. 음악을 예로 들면, 우리가 음악을 항상 연주회장에서만 들을 수 없다. CD를 들어서도 얼마든지 감동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이런 작업도 연주회장에서 직접 듣는 것과 CD로 듣는 것의 다른 지점이 있다고 본다.

이윤택 연출 : 장 감독께서 고민하셨던 것 같다. 중반쯤 가면서 대단히 연극적인 영상이 만들어졌다고 느꼈다. 영화의 강점은 거리 두기다. 프레임에 가둬두는 것이다. 미적인 거리가 생기고 사유적이 된다. 연극의 강점은 강력한 느낌이다. 배우의 살이 떨리는 것이다. 배우들의 침과 땀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선 연극의 강점을 잘 살렸다고 본다. 배우들의 연기가 동력적으로 움직였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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